지난 번 포스트에서 의견이 상충되는 현상인 '모순', '반대', '소반대'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중 '모순'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두 개의 명제(혹은 주장) 중에서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때 필요한 분석이 바로 '결정적 분석(Crucial Analysis)'입니다.

결정적 분석이란 말은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Crucial Experiment)'라는 용어에서 제가 따온 것입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행하는 실증이 분석이고 과학에서 행하는 실증은 실험이므로, 결정적 실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결정적 분석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분석?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결정적 실험이란 말은 17세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뉘앙스를 지닌 말인 듯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 외로 단순합니다. 결정적 실험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꼼짝 마!" 실험을 일컫습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일시에 정리해버리는 실험이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물든 당시 대중의 사고를 깨뜨리기 위해 갈릴레이가 행했던 물체낙하실험을 가지고 결정적 실험이 뭔지 개념을 잡아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대중의 고정관념)과 갈릴레이의 주장(즉 가설)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
갈릴레이          :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

        * '무거운 물체보다 가벼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는 제3의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이 이미 증명됐다고 가정함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참이라면, 갈릴레이의 가설은 거짓입니다. 반대로, 갈릴레이가 맞다면 아리스트텔레스는 틀립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가설은 서로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깨려면 결정적 실험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 실험이 바로 지난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갈릴레이의 물체낙하실험입니다. 직접 100파운드 짜리와 1파운드 짜리 금속공을 피사의 사탑에서 떨어뜨리면 두 개의 명제 중 어느 것이 참인지(반대로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려내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실험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1단계 :  첫번째 가설(H1)이 맞으면 → A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두번째 가설(H2)가 맞으면 → B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 결과가 A와 B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판단

4단계 : 만일 A라면, H1이 참이고 H2는 거짓
           만일 B라면, H2가 참이고 H1은 거짓

4단계에 걸쳐 결정적 실험의 구조를 기술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심플합니다. 이 구조에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1단계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맞으면
                  → 무거운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에 가벼운 물체는 낙하 중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맞으면
                  →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해보니 무게가 다른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혔다

4단계 : 그러므로, 갈릴레이의 주장은 참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거짓

혹여 '결정적 실험은 뭐 별것 아니네'라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군요. 사실 갈릴레이의 실험은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자명합니다. 그 이유는 1단계 때문입니다. 각 가설로부터 결과가 쉽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고 거기서 나올 만한 결과를 논리적으로(그리고 머리 속으로) 예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에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할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가 예상되는 결과라고 말하면 가설을 한번 더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빛이 중력 때문에 휜다는 걸 실험할 수 있습니까? 

가설로부터 예상되는 결과는 '실험가능성(experimentability)'이 커야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라는 결과 예상은 실험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실험해야 하는가?'란 의문만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반면에 갈릴레이의 가설에서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는 결과 예상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가능성이 아주 크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일식일 때 태양 뒤 편에 있는 별은 실제 위치에서 잘못된 곳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 예상 결과는 실험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란 영국의 실험물리학자는 실제로 일식이 일어난 1919년에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별의 위치가 달라짐을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가설이 옳음을 증명했습니다. 

(* 이 증명은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의해 '반증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다'라고 공격 받았습니다. 이 글은 과학철학을 논하는 글이 아니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문제해결을 논하는 중임을 잊지 마십시오.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 분석'을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조금은 장황하게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자,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해보니 다음과 같이 상충되는 두 개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가정해보죠.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의견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아주 많다
두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많지 않다

예상컨데 첫번째 의견은 부하직원들이, 두번째 의견은 팀장이나 임원들이 제기한 주장인데요,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두 의견은 서로 모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명백히 참임을 증명하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거짓이 됩니다. 이런 "꼼짝마" 판단을 얻으려면 결정적 분석을 시행해야 합니다. 

결정적 분석의 단계도 결정적 실험과 거의 동일합니다. 1단계가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겠습니까? 아마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퇴근시간을 넘겨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정상시간에 퇴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평균적으로 밤 9시에 퇴근한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 실험은 결정적 실험인가요, 아니면 비결정적 실험인가요? 실험 결과를 누군가에게 제시하면 아마도 "인터넷이나 하면서 빈둥거리면서 밤 9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직원들의 업무량은 얼마 안된다구!" 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할 여지를 주었으니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1시간 미만의 여유시간을 가진 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가지며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여유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이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것은 결정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유시간이 1시간 이상이냐 아니냐가 '업무량의 많음'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분석하기 전에 서로 합의가 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은 결정적 분석이 됩니다. 측정된 여유시간은 1시간 이상이거나 1시간 미만, 둘 중 하나이므로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갈립니다.

그런데, 결정적 실험에서 실험가능성이 높아야 하듯이, 결정적 분석에서는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 역시 높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유시간 측정은 분석가능성이 높습니까?" 라는 의문이 제기할지 모르겠군요. 직원들의 동태를 일일이 살피면서 그들이 노는지 일하는지를 판단할 때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유시간이 40분 나왔다해도 '직원들의 업무량이 아주 많다'는 주장이 명백히 옳다고 선언하기 어렵습니다. 이 예시 역시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가 여지가 있으므로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도대체 결정적 분석을 어떻게 설계하란 말인가요?" 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달리 문제해결 과정이 목표로 하는 문제는 사회 현상이므로 '완벽한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고 실
시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항상 논란의 여지가 숨어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결정적 분석의 조건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이런 행동들은 업무가 아니라 사적 용뮤라고 보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사전에 합의를 해두면 측정의 오류를 상당 부분 줄여서 분석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반론을 차단함으로써 해결책 마련에 힘을 집중할 수 있지요. 반론을 막는 데에 힘을 소진하면 문제해결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문제해결사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에 따라 분석을 실시하기 바랍니다.

1.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구상한다
2. 가설별로 예상되는 결과의 '분석가능성'을 살핀다
3. 분석가능성이 높은 예상 결과를 취한다
4. 완성된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사전적으로 혹은 사후적으로 이해관계자에게 이해시킨다

문제해결기법을 논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과학의 방법론을 살피고 차용하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 역시 문제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과학 이야기를 언급할 텐데요, 그때마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참에 문제해결기법을 과학적인 기반으로 탄탄하게 익히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해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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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잠정적인 원인들을 이슈 트리(issue tree) 형태의 가설 목록으로 만든 후에 관찰과 분석을 통해 가설을 증명(실증)해야 합니다. 지난 글에서 계속 논의해왔던 내용이라 이제는 숙지돼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가설들 중에서 옳은지 그른지 실증하기가 어려운 가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A 때문에 B가 발생한다'라는 가설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A가 과연 B의 원인인지를 알아내기가 힘든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물리적으로 원인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문제해결사가 "CEO의 공공연한 비리가 직원들의 나태한 근무태도를 야기했다"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듣고 이를 가설로 설정했다고 하겠습니다. 문제해결사가 이 가설의 진위 여부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CEO'라는 물리적인 벽에 봉착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공공연하다고는 하지만 CEO의 비리를 캐려면 CEO 자신이나 측근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들이 조사를완강히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의뢰인이 CEO라면 감히 "의뢰인인 바로 당신 때문에 직원들이 근무를 게을리하게 된 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문제해결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요. 문제해결사가 내부직원이라면 해고를, 외부 컨설턴트라면 계약 파기(혹은 Fee지급 거부)라는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겠지요. 직원들 사이에서 CEO의 비리를 소리 높여 외치는데, 막상 조사하기가 불가능하니 문제해결사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을 겁니다.

문제의 바다로 나갑시다


자료와 근거가 부족하여 가설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해결사가 심심찮게 봉착하는 어려움입니다. 이것은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라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경쟁사의 '저가 마케팅'으로 우리의 고객들이 많이 이탈했다"라는 가설이라고 가정해보죠. 고객 이탈의 원인 중 하나가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라는 소리인데, 경쟁사가 정말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한다는 증거와 그것이 고객들을 유인한다는 인과관계를 밝혀야 합니다.

문제해결사가 자신만의 조사 채널을 가동하거나 "요원'들을 풀어서 경쟁사의 마케팅 실태를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여도 경쟁사(혹은 경쟁사로부터 서비스 받은 고객들이)가 비밀을 꽁꽁 감추는 바람에 마케팅 전략의 세부 내용은커녕 신문에 나올 법한 피상적인 데이터만 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정도로 조사를 끝낼 수밖에 없다면 가설 실증은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가설의 검증이 난항에 봉착한다면 문제해결사는 어떻게 이를 타개해야 할까요?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지만(오히려 논리적인 허점이 존재하지만), 가설을 우회적으로 검증하는 차선의 방법을 적용하면 어떨까요? 서론이 좀 길었지만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 방법의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설] A 때문에 B가 발생한다
[미궁] A가 B의 원인인지 알기 어렵다

[가정] A가 사실이라면, 반드시 C가 나타나야 한다
[실증] C가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결론] C가 나타나면, A가 B의 원인이다

'어, 이상하네?'라며 눈치 빠른 독자분들은 이 흐름에서 논리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겁니다. "C의 원인이 A라고 해서, A가 B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는 못하잖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아래의 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설] 비 때문에 옷이 젖었다
[미궁] 비 때문에 옷이 젖었는지 알기 어렵다

[가정] 비가 오면, 반드시 땅이 젖는다
[실증] 땅이 젖었는가 살펴보자. 맞다. 땅이 젖었다

[결론] 땅이 젖었다면, 비 때문에 옷이 젖은 것이다

옷이 젖은 이유가 반드시 비 때문일까요? 일상에서는 '그렇겠지'라고 말하겠지만, 논리적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옷이 방안에 곱게 놓여있다가 젖었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그 이유를 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방안에 있던 사람이 물을 먹다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옷이 젖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요. 따라서 이런 흐름의 가설 실증은 잘못된 결론을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비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에 차선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비가 오는 동안 다른 일에 몰두해 있어서 비가 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면, 그리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면, 대체 왜 옷이 젖었는지도 알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이럴 때 땅이 젖었는지를 살펴보고서 옷이 젖은 이유가 바로 비 때문이구나, 라는 결론을 낸다면 '뭐, 그렇겠지'라는 반응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옷이 집안이 아니라 마당에 설치한 빨래줄에 걸려 있을 때에만 이런 흐름의 증명은 용인됩니다. 이 말은 위의 박스에서 실증과 결론 사이에 한정된 상황이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전제(premise)를 만족할 때만 결론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 예에서의 전제는 '옷이 (지붕이 없는) 마당의 빨래줄에 걸려 있다'입니다.

[가설] 비 때문에 옷이 젓었다
[미궁] 비 때문에 옷이 젖었는지 알기 어렵다

[가정] 비가 오면, 반드시 땅이 젖는다
[실증] 땅이 젖었는가 살펴보자. 맞다. 땅이 젖었다

[전제] 옷은 마당의 빨래줄에 걸려 있다
[결론] 땅이 젖었다면, 비 때문에 옷이 젖은 것이다

이렇게 전제를 여러 개 두면 논리적 허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도 논리의 결점을 완벽히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누군가가 옷에 물을 끼얹었다면 옷이 젖은 최초의 원인은 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증명하기 어려울 때 문제해결사가 차선책으로 택할 수 있고, 보고 받는 사람을 충분히 납득시키기에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성공 포인트는 어떤 전제를 두느냐에 달렸습니다. 실무적으로 전제는 하나보다는 2~3개 정도가 설득력을 높이는 데 좋습니다. 그리고, 누구나(혹은 대부분이) 참이라고 여기는 사실이 전제로 채용될 때만 이 방법은 설득력을 얻습니다. 전제 그 자체가 별도의 실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 문제해결사가 할일도 많아질 뿐더러 문제해결의 흐름도 복잡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어렵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이 방법대로 "경쟁사의 '저가 마케팅'으로 우리 고객들이 많이 이탈했다"라는 가설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노파심이지만 어디까지나 예시이니 실제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내용이 다를 거라는 점을 언급해 둡니다.

[가설] 경쟁사의 저가 마케팅 때문에 우리 고객들이 많이 이탈했다
[미궁] 경쟁사가 정말로 저가 마케팅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가정] 저가 마케팅을 한다면, 보통 부품회사에게 낮은 납품단가를 요구한다
[실증] 부품회사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지 살펴보자. 맞다. 사실이다

[전제 1] 우리 업계의 비용구조는 재료비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전제 2] 우리회사는 가격을 내릴 때 재료비 절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전제 3] 경쟁사도 우리와 입장이 같을 것이다 

[결론] 부품회사에게 낮은 납품단가를 요구하고 있으니, 경쟁사의 저가 마케팅은 사실이다

이 예는 경쟁사가 저가 마케팅을 시도하는지 알기 어렵고, 대신에 부품회사의 납품단가 정보는 비교적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를 가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문제해결사라고 생각하고 문제해결사로부터 이렇게 보고를 받는다면 '아, 정말 그렇군'이라고 동의하겠습니까? 논리를 일일이 따지는 깐깐한 사람이라면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자리를 파할지도 모르겠군요. "재료비를 깎지 않고 운영비용(임금, 광열비 등)을 절감해서 가격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누차 언급했듯이 이 방법은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목적은 완벽한 논리 체계를 갖추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최대한 논리적이려고 노력해야겠지만, 해결책을 통해 조직(혹은 개인)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위에서 설명한 방법은 상당히 유용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문제해결 과정에서 미궁에 빠져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최후의 카드로 선택해야 함을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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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듯이 실증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실험'이 실증이라면, 문제해결과정에서는 '분석'이 실증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문제해결사가 어떻게 분석을 진행할까를 고민할 때 과학의 실험 설계 방법을 응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과학에서의 실험 설계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A라는 가설이 이미 수립된 상태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과학이라고 말하면 굉장히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는데요, 실험 설계 과정 자체는 매우 간단합니다.

1) 실험 대상을 선정한다
2) 실험 방법을 정한다
3) 결과 측정 방법을 정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실시했다고 알려진 '물체 낙하 실험'은 근대 과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과학에서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일화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갈릴레오는 '물체의 무게가 달라도 동일한 속도로 낙하한다'라는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낙하 실험을 통해 실증하려 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신봉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우주에서 정당한 자기 위치를 찾아가기 때문이고, 물체가 하늘로 날아가는 이유는 물체 앞에 있던 공기가 물체 뒤로 순식간에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 없는 주장을 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00파운드 짜리 공이 100큐빗(약 53미터)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다면 1파운드 짜리 공은 1큐빗(약 53센티미터)의 거리를 낙하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실험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론은 그가 죽은 후 2천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중세인들의 사고를 지배했습니다.

갈릴레오가 실제로 낙하 실험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실험 설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는 게 목적이므로 논란 여부는 무시하겠습니다. 비비아니가 쓴 전기에 나온 갈릴레오의 실험 내용을 실험 설계 과정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1) 실험 대상을 선정한다
알다시피 갈릴레오는 모양이 똑같지만 무게가 다른 금속공 2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조수들이 탑의 꼭대기까지 공을 들고 가느라 낑낑댔다고 비비아니의 전기는 말합니다.

2) 실험 방법을 정한다
동시에 떨어지는지, 아니면 시차를 가지고 떨어지는지 육안으로 관찰하려면 충분히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야 했습니다. 그때는 정밀한 측정 장치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피사의 사탑을 선택했죠. 사람들의 관심을 주목시키는 효과도 얻기 위해 피사에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개의 금속공을 낙하시키기로 한 것이죠.

3) 결과 측정 방법을 정한다
두 개의 금속공이 정말로 동시에 떨어졌는지를 측정해야 가설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겠죠. 언급했듯이, 측정 도구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육안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릴레오는 군중의 '눈'들이 결과를 측정하는 방법이라 여겼던 게 분명합니다. 실험을 하기 전에 관중들을 끌어모았으니까요. "자, 여러분이 직접 관찰해 보십시오!"

물체 낙하 실험은 간단한 실험이라서 실험 설계 방법도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실험도 이 3단계 실험 설계 과정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침대는 과학이다'는 가설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제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분석 설계 과정을 논의하겠습니다. 위의 실험 설계 과정을 차용하면, 분석 설계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분석 대상을 선정한다
2) 분석 방법을 정한다
3) 분석 결과에 대한 표현 방법을 정한다

'실험과 분석이 엄연히 다른데 왜 차용을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질지도 모르겠군요. 맞습니다. 실험과 분석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실험에서는 실험자가 실험 대상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실험군에게는 뭔가의 조치를 취하고, 대조군에는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쪽에서 나온 결과가 확연히 다름을 보임으로써 가설을 증명합니다. "조치를 취하니까 이렇게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가설은 참(혹은 거짓)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분석이 실험이 아닌 이유는 분석 대상을 '분석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지 않을 뿐더러 분석군에게 조치를 취하지도 않습니다. 실험처럼 행해지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자주 벌어지지 않습니다. '급여가 작아 직원들이 불만이 크다'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분석군에는 급여를 올려주고 대조군은 그대로 유지한 후에 불만의 크기를 비교 조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모험을 감행할 조직은 드뭅니다. 만약 급여가 직원들의 불만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이미 올려준 급여를 다시 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죠.

따라서 분석은 실험을 통한 가설 실증이라기보다, 관찰과 측정을 통한 실증이라고 말해야 정확합니다. 분석과 실험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 어렵지만, 분석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실증의 과정이므로 과학에서의 실증 과정인 실험과 동일한 위상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험 설계 과정을 차용하여 분석 설계 과정을 알아보자는 겁니다.

위의 3번째 단계가 실험 설계 과정과 다르다는 것을 유의하십시오. 측정 방법이 아니라 '표현 방법'입니다. 문제해결의 세계에서는 분석 절차와 방법을 정할 때 측정 방법도 동시에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해결책이 의뢰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최종목적이므로 분석 결과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따라서 분석을 설계할 때부터 결과를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표현할지 고려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을 실증하기 위해 분석을 실시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위의 3단계 분석 설계 과정을 자동적으로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합니다. 무엇을(분석 대상) 어떻게(절차/방법) 분석하고 어떻게 표현할지를 구상해야 합니다. 여러 형태로 분석을 설계할 수 있겠지요. 다음의 예가 그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분석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1) 분석 대상을 선정한다
회사 내에도 여러 단위조직이 있습니다. 이 가설을 어느 조직을 대상으로 검증할지를 선정합니다. 분석 대상의 범위는 문제 정의시에 의뢰인에 의해 이미 정해지지만 경우에 따라서 각 가설에 따라 다르게 지정할 경우도 있습니다.

2) 분석 방법을 정한다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직원들의 '태만함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태만함의 정도는 경우에 따라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되므로 분석하는 방법을 정하기가 녹록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요, 스톱워치를 가지고 직접 체크하는 분석, 업무량 조사서를 작성하게 하는 분석, 직원들이 산출하는 아웃풋의 질과 양을 따져보는 분석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분석 결과에 대한 표현 방법을 정한다
어떤 분석 방법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만일 업무량 조사서를 가지고 하루 동안 어떤 업무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요하는지 분석했다면, 근무시간(8시간)과 대비하여 실제업무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워터폴(waterfall) 차트 형태의 그래프가 무난합니다. 또는 직원별로 유휴율 데이터를 표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즉각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도록 분석 결과를 표현했는지가 관건입니다. 분석을 실시하기 전에 분석결과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미리 구상하기 바랍니다.

위의 '2) 분석 방법을 정한다'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좋은 분석'이 되려면 첫째, 반증가능성을 꼭 따져봐야 합니다. 지난 글에서 좋은 가설이 되려면 가설 그 자체가 반증가능하도록 설정되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분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정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분석 방법이 가설의 입증과 반증이 동시에 가능한지의 여부를 따져봐야 합니다. 만일 그 분석 방법이 오로지 가설을 입증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반증하기 위한 또다른 분석 방법을 찾아내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잡담 시간'을 측정하는 분석 방법으로 직원들의 태만함 여부를 가리겠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이 높은 직원들도 잡담을 어느 정도 하기 마련이고 또 잡담 속에서 업무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잡담 시간을 측정하면 오로지 '직원들이 태만하구나'라는 생각만 들게 됩니다. 잡담 그 자체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기 때문입니다. 측정하는 자가 잡담을 부정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잡담을 많이 하더라도 저건 직원들의 태만함과는 무관해'라는 반증으로 생각을 전환하기 어렵겠죠. 그리므로 '잡담 시간 측정'이라는 분석 방법은 폐기되거나 반증가능한 다른 분석 방법으로 보완돼야 합니다.

둘째, 가설을 '한 방에' 입증하는 분석이 좋은 분석입니다. 분석을 했는데 뭔가 미진해서 남들에게 공격 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좋은 분석 방법이 아닙니다. 팀장들과 인터뷰를 해서 직원들의 태만한지를 알아보는 분석 방법을 취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팀장들은 항상 직원들의 동태를 살피고 아웃풋을 점검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태만함을 어느 정도 감지할 겁니다. 하지만 팀장들의 말을 토대로 보고서를 썼다가는 직원들의 원성에 직면합니다. 직원 입장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겠죠. 

이렇게 분석 결과가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좋은 해결책이 나와도 수용되기 어렵습니다. 분석 방법을 택할 때는 '한 방에 하나씩'이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해당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분석 방법들을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 본 다음에, 가설을 한방에 실증할 만한 방법 1~2가지를 골라내서 구체적인 분석 절차를 수립하기 바랍니다.

셋째, 동일하게 분석 결과가 재현되어야 좋은 분석입니다. 과학자가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면 자신이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실험을 수행했는지 기록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구가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똑같이 실험을 재현해보니까 엉뚱한 결과가 나오거나 아예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의 연구는 의심의 대상이 되거나 급기야 논문 수록이 취소되기까지 합니다(황우석 사태를 떠올려 보세요).

분석은 문제해결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실험이므로, 절차에 따라 분석을 반복하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석할 때마다 오차의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를 얻는 분석 방법이라면 당초에 가설을 증명했더라도 폐기해야 마땅합니다. 예를 들어 '스톱워치를 가지고 직원들의 잡담시간을 측정'하는 분석 방법은 측정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해석('아 저건 잡담인가 아닌가')이 크게 반영되므로 비슷한 분석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분석 방법을 최초 선택할 때 머리 속으로 가상의 분석을 해봄으로써 분석 결과가 재현될지를 충분히 따져봐야 하고, 분석을 하고 나서는 한두 차례의 검증을 꼭 거쳐서 이론의 여지를 차단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좋은 분석의 조건은 다음과 같이 3가지입니다.

1) 반증가능성을 지닌다
2) 가설을 한방에 입증한다
3) 동일한 결과를 재현한다

지금까지 과학의 실험 설계 과정을 참고해서 바람직한 분석 설계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자, 봐라. 꼼짝 못하지?'라고 '적확한' 결과를 보이는 실험이 좋은 실험이듯이, 문제해결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감히 반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분석이 좋은 분석입니다. 문제해결사 여러분들은 부디 갈릴레오도 울고 갈 분석 방법을 선택해서 의뢰인에게 '꼼짝마!'라고 외치는 희열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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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에 이어 인터뷰 때 지켜야 할 원칙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번부터 6번이 오늘 설명할 부분입니다.

인터뷰 원칙
1) 사전에 문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
2) 가설 목록을 반드시 준비한다
3) 간단명료하게 질문한 후 듣는다
4) 가설 하나에 '왜'를 세 번 묻는다
5) 인터뷰를 계속 진화시킨다
6) 인터뷰를 반드시 기록한다

문제해결도, 인터뷰도 충분한 연습이 열쇠입니다.


세번째 원칙, '간단명료하게 질문한 후 듣는다'. 인터뷰 시간을 100으로 본다면 인터뷰어가 말하는 시간은 5% 미만이어야 합니다.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는 95%이상의 시간을 인터뷰이가 이야기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몇몇 어설픈 문제해결사들은 인터뷰이보다 오히려 더 많이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50% 이상 혼자서 인터뷰 시간을 잡아먹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혼자 떠드는'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뷰이가 "이런 프로젝트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을 토하면 어설픈 문제해결사들은 100% 말려들고 맙니다. 간단하게 프로젝트의 목적을 언급하고 넘어가면 충분한데도, 프로젝트가 시작된 배경부터 시작해서 절차와 방법, 기대되는 아웃풋 이미지, 협조를 꼭 해야만 하는 이유 등등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면 인터뷰이가 만족한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잘 이해했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지만, 이런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습니다. 인터뷰 시간은 인터뷰이를 위해 마련한 무대입니다. 그를 무대 위에 세워두고 그냥 인터뷰어의 장황한 설명만을 듣도록 놔두면 어떻겠습니까? 겉으로는 잘 이해했다고 말할지는 몰라도 말할 기회를 빼앗겨서 불만이 더 쌓이고 맙니다.

그가 프로젝트에 관해 불평을 던지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답변을 듣고서 계속 질문을 이어가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인터뷰이가 질문에 답하면서 스스로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인지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비록 불평불만이더라도 인터뷰이에게 충분하게 발언 시간을 줘야 합니다. '불평 들어주다가 인터뷰 질문을 하나도 못하겠네'라는 생각에 인터뷰이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고 '그건 이러저러 해서'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터뷰어는 질문을 하고 듣는 사람이지 답변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기존에 수립한 가설을 검증하고 새로운 가설을 관찰하기 위한 기회로만 인터뷰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싶다면, 사전에 인터뷰어들을 모두 모아놓고 프로젝트의 배경과 목적, 과정, 아웃풋 등을 공지하고 협조도 요청하는 설명회 시간을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말없이 무턱대고 인터뷰를 시작하면, 위에 언급했듯이 인터뷰어가 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마니까요.

질문도 너무 길면 곤란합니다. 하나의 질문에 10초를 넘기지 마십시오. 가령 하나의 질문을 던질 때마다 질문의 배경부터 시작해서 예상되는 효과나 리스크까지 총망라해서 질문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100분 토론 같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쓰이는 전술이지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지양해야 할 질문 형식입니다. 인터뷰는 상대방을 추궁하고 공격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문장 하나에는 한 가지 내용만 질문하십시오. '이것에 대해 답변해 주시고요, 또 저것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식의 질문은 토론이나 심포지움에나 어울리는 질문 형식입니다. 하나의 질문을 오래 하는 것보다 질문을 여러 번 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또한 인터뷰이가 질문과는 다른 내용의 말을 하더라도 제지하지 말고 일단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터뷰이가 평소에 꼭 하고싶은 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타 질문할 때의 Tip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니, 충분히 숙지하기 바랍니다.

1) 질문을 하는 데에 10초를 넘기지 않는다
2) 질문 하나엔 한 가지 주제만 담는다
3) 어떤 경우에도 답변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4)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냐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5) 추궁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6) 질문 후에 인터뷰이가 생각할 시간을 준다
7) 답변이 틀렸다고 생각돼도 절대 교정하지 않는다
8) 답변을 들으면서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는다

네번째 원칙, '가설 하나에 '왜'를 세 번 묻는다'. 문제의 근본원인을 충분히 탐색하려면 이 원칙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질문을 받으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표면적인 원인과 이유만을 답변하게 됩니다. 게다가 인터뷰는 사실 관계를 밝히는 과정이라서 때때로 인터뷰이가 방어적인 입장에서 답변에 응합니다. 속으로 '이런 답변을 해도 되나?'는 걱정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고의 한계와 우려를 깨뜨리려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저는 가설 하나에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것을 권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 그것이 발생했다고 보는가, 왜 그것이 가능/불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이어가야만 가설 속에 내재된 근본원인으로 다가갈 수 있고 해결책의 실마리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무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연속적으로 '왜'를 세 번 이상 질문해야 합니다.

- 문제해결사 : 업무량이 적다는 말이 오고 가는데요,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 인터뷰이    : 팀장이 우리에게 일을 별로 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문제해결사 : 왜 팀장이 일을 주지 않습니까?
- 인터뷰이    : 인력이 갑자기 늘었는데 팀장이 자기 일에 바빠 신경을 안 씁니다.
- 문제해결사 : 왜 팀장이 바쁩니까?
- 인터뷰이    : CEO가 팀장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비밀사항이라 알 길이 없네요.

이런 방식으로 '왜'를 파고 들면 직원들이 태만한 근무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팀장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고, CEO가 팀장에게 팀 관리 업무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겼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팀장에게 맡긴 임무가 중차대하다면 팀 관리를 맡을 사람을 새로 영입하고 기존 팀장은 프로젝트에 전념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잠정적인 해결책일 겁니다.

하나의 가설에 너무나 많이 '왜'를 질문하면 인터뷰이의 짜증을 유발할지도 모르니 유의해야 합니다. '왜'를 여러 번 하면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서너 번 정도 '왜'를 질문하고서도 더 궁금하다면, 일단 다른 가설로 넘어갔다가 '아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제 생각엔 중요한 것 같아서 좀더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라고 질문해야 좋습니다.

다섯번째 원칙, '인터뷰를 계속 진화시킨다'. 조직의 규모와 프로젝트(문제해결 과정)의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명에서 50명 정도로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는데요, 보통 3~4명 인터뷰를 하다보면 모든 인터뷰이들이 동일하게 답변하는 질문(즉 가설)들이 발견됩니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인터뷰가 모두 끝날 때까지 똑같은 질문들을 반복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인터뷰이 모두가 동일하게 답변하는 질문(가설)은 참/거짓 여부가 일단 증명됐다고 보고, 다른 가설에 초점을 맞춘 질문들을 위주로 뒤에 이어질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새로운 가설을 파악하는 데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짧은 인터뷰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인터뷰에 임하기 전에 이슈 트리 형태로 가설 목록을 꾸며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가설 목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거짓이라 생각되는 가설은 날려버리고인터뷰이가 새롭게 제기한 가설이 있다면 추가해서 다음 인터뷰이에게 질문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팀장이 CEO가 시키는 중요한 일 때문에 팀원들에게 신경을 못쓴다'라는 답변을 얻기 위해 위에서 제시한 '3 Why 질문'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건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 하나의 가설 목록(질문서)을 끝까지 고수하는 건 설문지에서나 통용되는 방법입니다. 인터뷰를 계속 진화시켜야 폭넓은 관점에서 문제의 근본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섯번째 원칙, '인터뷰를 반드시 기록한다'. 이 원칙은 매우 당연한데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인터뷰 결과가 머리 속에 다 있는데 굳이 기록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문제해결사가 있다면, 그 말은 그가 표면적인 질문을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만한 답변만을 얻었다는 뜻이니까요.

인터뷰 기록의 목적은 단지 문제해결사 본인의 기억을 돕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첫째, 인터뷰 기록을 다른 이와 공유하려면 반드시 문서 형태로 정리된 기록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렇게 기록된 문서는 가설 검증의 증거가 됩니다. 셋째, 해결책을 수립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됩니다. 인터뷰를 하고서도 기록하지 않는 것은 과학자가 실험을 하고서도 실험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실험기록이 없는 연구 결과는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죠.

한 사람의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인터뷰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메모를 하지만 대개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필체로 적혀서 기록으로서는 적절치 못합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인터뷰 기록을 정리하고 가설 목록(이슈 트리)을 업데이트한 후에 다음 인터뷰에 임해야 합니다.

인터뷰 기록 작성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기록하는 사람(보통 노트북 PC로)을 대동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이가 꼭 취조 당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습니다. 나중에 인터뷰 기록이 윗사람에게 보고되면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피해를 줄까 우려하기도 하죠. 물론 손으로 적거나 PC로 적거나 근거로 남게 되지만, 딸각거리는 키보드 소리는 그런 우려를 확대시키는 역효과를 일으킵니다.

인터뷰 장소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둘만 참여하고 노트북 PC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냥 백지에 인터뷰이의 답변을 키워드 중심으로 적으면 충분합니다. 토씨 하나까지 모두 적겠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인터뷰이의 눈을 맞추기도 힘들고 교감을 이끌어 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문제해결 과정에서 관찰의 도구, 가설 실증의 도구로 필수적으로 쓰이는 인터뷰의 원칙 6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원칙 이외에 인터뷰어가 준수해야 할 사항이 더 있겠지만, 대부분 지엽적이고 이 원칙들에서 파생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인터뷰 역시 경험이 중요합니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바람직한 인터뷰 방법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겠지만, 이 원칙들을 염두에 둔다면 시행착오의 수를 줄이고 문제해결력도 키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실증의 일종인 '분석'의 내용을 다룰까 생각 중입니다. 지금까지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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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터뷰의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뷰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과학에서 행해지는 여러 실험이 문제의 답을 알아내기 위한 과정이듯이 인터뷰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탐색하기 위한 결정적인 '실험도구'입니다.

여러분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인터뷰를 해왔을 겁니다. 그러나 인터뷰의 목적과 절차, 방법 등을 숙지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뭔가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감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하기 전에 철저하게 실험을 설계합니다. 특히 여러번 되풀이하기 힘들다면 실험이 잘못되지 않도록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문제가 참 많기도 합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문제해결사들은 한정된 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기를 요청받기 때문에 인터뷰를 여러 번 반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인터뷰는 필연적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시간을 빼앗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흉흉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지요. 문제해결이 지체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해결책이 나왔다 해도 구성원들이 수용하기를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괴롭히더니 고작 그런 해결책이냐?"고 말입니다. 사전에 인터뷰를 잘 설계해서 진행해야 가설을 검증할 수 있고 바람직한 해결책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인터뷰는 관찰의 일종이라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즉 인터뷰의 목적은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죠.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문제의 잠정적인 원인, 해결책의 실마리를 관찰하는 도구가 인터뷰입니다. 컨설턴트들은 프로젝트 초기에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거의 자동적으로 인터뷰를 실시합니다. 문제해결에 부여된 기간이 3개월이라면 1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인터뷰에 공을 들입니다. 

'전문가라면 척 보면 알 텐데 왜 귀찮게 인터뷰를 하지? 빨리 해결책이나 내놓지 그래'라며 짜증을 내는 의뢰인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가 신이 아닌 한 의뢰인의 말만 듣고서는 현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노련한 문제해결사들은 가설을 빨리 내놓은 데에는 '선수'로서의 능력을 보이지만, 인터뷰를 통한 관찰 없이는 절대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문제 같지만, 조직에 내재된 독특한 특징은 제각각이므로 문제의 잠정적 원인과 해결책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에 기반을 둔(Fact-Based) 문제해결을 추구한다면 인터뷰는 빼먹지 말아야 할 필수 과정입니다. 문제가 벌어지는 현장을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의뢰인 입맛에만 맞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터뷰는 실증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미리 설정한 가설이 실제로 그러한지의 여부를 인터뷰를 통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많이 뽑아 놓고는 아직까지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권한이 모두 윗사람에게 집중되어 그 밑의 직원들은 허드렛일만 한다' 등의 답변을 통해 '업무량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이 참인지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터뷰도 사람의 일인지라 인터뷰이가 거짓으로 답변하면 가설의 참/거짓 판단이 왜곡될 위험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게으름을 피워놓고 엉뚱하게 회사 탓, 관리자 탓으로 돌릴 가능성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노련한 문제해결사라면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부여된 공식적인 업무는 무엇입니까?", "그 업무는 아주 중요한 임무인데 수행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정리해 보면, 인터뷰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관찰의 도구이자,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실증의 도구입니다.

인터뷰는
1) 관찰의 도구
2) 실증의 도구

그렇다면 인터뷰를 실행할 때 문제해결사가 지켜야 할 원칙을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뷰 스킬의 세부적인 사항(질문하는 태도, 표정, 말투, 분위기 조성 등)은 여러 책에서 이미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여기서 굳이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뷰이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문제해결에 열의를 가지고 임한다면 손동작이나 억양과 같이 세세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6가지 사항은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문제해결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1) 사전에 문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
2) 가설 목록을 반드시 준비한다
3) 간단명료하게 질문한 후 듣는다
4) 가설 하나에 '왜'를 세번 묻는다
5) 인터뷰를 계속 진화시킨다
6) 인터뷰를 반드시 기록한다

첫번째 원칙 '사전에 문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제해결사가 조직 내부의 사람이라 해도 문제를 둘러싼 배경지식에는 종종 무지합니다. 경영기획 파트에 근무하는 문제해결사는 예전에 근무를 해본 경험이 없으면 영업 일선의 업무 프로세스와 공장에서 운영되는 생산/물류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합니다. 문제해결사는 반드시 배경지식을 공부해야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함입니다. 때론 인터뷰인지 수업 시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에게 자기네 업무 프로세스와 용어를 일일이 가르치는 데 귀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곤란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로 찍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라며 콧방귀를 뀌기 마련입니다. 이런 첫인상이 박히면 성의 없고 정보도 없는 답변 밖에는 얻지 못하죠. 일단 인터뷰이들이 '아, 이 사람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좀 아네?'라고 인식시키려면 완벽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배경지식을 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심층적인 질문을 통해 관찰과 실증의 질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질문을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인터뷰이가 A라고 답변하면 '혹시 그것은 B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C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재차 질문을 날려야 하지만,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런 심층적인 질문은 불가능합니다. 변죽만 울리는 질문에 그쳐서 문제해결사를 통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배경지식을 학습하는 데에 일주일 정도 투자하기 바랍니다. 먼저 문서로 된 자료를 살펴본 후에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의뢰인이나 전문가에게 물어서 꼭 숙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급박하다 해도 배경지식 습득에 쏟는 일주일의 기간은 문제해결의 완료시간을 이주일 이상 앞당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번째 원칙, '가설 목록을 반드시 준비한다'. 이는 지난 글에서 수차례 강조했던 사항입니다. 관찰과 실증에 임하기 전에 가설을 먼저 설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잘 작성된 가설 목록은 인터뷰 질문지를 대신합니다. 굳이 질문지를 따로 만드는 수고를 덜 수 있지요. 질문지가 필요한 경우라도 가설 목록을 질문으로 전환하면 그만입니다.

가설 목록은 계층을 갖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가설들을 체계없이 죽 나열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트리(tree)' 형태로 목록을 구성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모양을 '이슈 트리(issue tree)'라고 부릅니다.

가설 1  - 가설 1.1  - 가설 1.1.1
             가설 1.2  - 가설 1.2.1
                             가설 1.2.1

가설 2 - 가설 2.1
            가설 2.2

가설 3 - 가설 3.1  - 가설 3.1.1
                            가설 3.1.2

예를 들어, '업무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걸 가설 1로 본다면, 그 밑단에 놓일 세부 가설들은 다음과 같을 겁니다. 

 가설 1 : 업무량이 적다

가설 1.1 : 팀장이 직원들에게 충분한 업무량을 부여하지 않는다
가설 1.1.1 : 팀장이 중요업무를 모두 혼자 수행한다
가설 1.1.2 : 직원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뽑았다

가설 1.2 :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가설 1.2.1 : 타사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가설 1.2.2 :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중이다

....

이렇게 이슈 트리로 가설 목록을 만들면 3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가설이 포괄적이고 어떤 가설이 더 심층적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의 원인으로 파고 들어가면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원인(root cause)과 만나게 됩니다. 이슈 트리는 그 자체가 근본원인을 탐색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둘째, 옳지 않은 가설을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인터뷰를 하다가(또는 자료를 분석하다가) '가설 1.2'이 거짓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얻었다면, 그것에 딸린 가지는 모두 제거됩니다. 그러면 후속 인터뷰에서는 가설 1.1을 입증하기 위한 심층적인 질문에 집중하거나 이슈 트리를 더 '깊은 수준'으로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가설 1.2에 해당하는 질문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이슈 트리를 통해 입증된 가설과 거짓으로 판명된 가설, 그리고 입증이 완료되지 않은 가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 가설은 참(또는 거짓)이니까 이제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돼' 혹은 '인터뷰만 가지고 아직 참/거짓을 판단하기엔 곤란해. 심도 깊은 분석을 해봐야겠어'라며 향후의 문제해결 과정을 계획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슈 트리를 만들 때는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austive)라는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MECE는 그 의미는 아주 간단하지만 훈련이 안되면 실제로 준수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원칙 3번~6번은 내일 포스트에서 다루기로 하지요.오늘도 문제 없는, 아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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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설을 실증하는 단계로 넘어오겠습니다. 실증(proof)이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이고, 관찰을 행할 때 설정되는 가설은 문제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좋은 가설임을 지금까지의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실증은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이란,
1)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
2)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

그렇다면 인과관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인다는 뜻입니다. 아주 자명해서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흠결 없는 실증을 위해서 인과관계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과관계 성립조건
1)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먼저여야 한다.
2) 원인과 결과가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
3)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

머리가 어지러우시죠? ^^


첫번째 조건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야 결과의 사건이 벌어지지, 결과가 먼저 생겨난 다음에 원인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문제해결사가 처음 문제를 접할 때는 결과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첫번째 조건을 제시하면 많은 분들이 '당연한 말을 왜 해?'라며 약간은 빈정거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직면하여 실증을 행할 때, 이토록 자명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마음대로 인과관계란 표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량이 주어지지 않아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원인이고, 직원들의 태만함이 결과라고 제시된 가설이죠. 수학에서 쓰는 형식으로 이 가설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

일할거리를 많이 주지 않으면 남아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 쉽죠. 허나 '당연함'에 도사린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이나 타 사례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러한 인과관계를 옳다고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명하다는 본능적 판단을 억제하고,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직원들의 태만함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다른 이유(예:월급이 짜서)로 태만하게 일하니까 관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어차피 일을 많이 줘 봤자 안할 테니 이 정도의 일만 시키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업무량이 점차 적어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태만함이 먼저 발생했다면 위의 가설을 참이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조건인 '원인과 결과는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를 살펴보죠. 이 조건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문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말을 상관관계란 의미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상관관계란 두 개의 사건 사이에 규칙적인 관계가 존재함을 일컫는데, 인과관계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면 상관관계도 성립합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일화는 실제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의 저서 '풀 하우스(Full House)'에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향을 비꼬기 위해 쓴 글입니다.

유명한 통계학자가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술주정꾼 검거 건수와 침례교 목사 수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져서 그들을 계도하려고 목사들이 많아졌다." 목사가 많아진 원인이 술주정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마디로 그의 결론은 엉터리입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진 사건이나 침례교 목사가 늘어난 현상이나 모두미국 인구의 증가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술주정꾼과 목사 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바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가 있으나 인과관계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목사 수가 많아진 시대상황을 개탄(?)하느라 술주정꾼도 많아졌다"는 말도 우스꽝스럽게 성립돼 버립니다.

두번째 조건에서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말은 '원인이 발생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결과가 일어난다', 혹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원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반드시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업무량이 적을 리 없다'는 뜻이죠. 상관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세번째 조건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좀 어렵습니다. 천천히따져보겠습니다. '업무량이 충분치 않으니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동시에 월급도 줄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다뤄야 할 사건은 1) 충분치 않은 업무량, 2) 줄어든 월급, 3) 직원들의 태만함, 등 3개가 됩니다.

'충분치 않은 업무량이 반드시 직원들의 태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실증할 가설임을 다시 상기하기 바랍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업무량은 태만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월급이 줄어들어서 직원들이 태만해졌다'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인과적 관계를 배제해야 합니다. 

'줄어든 월급'이라는 인과적 설명을 배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원인)에서 월급이 줄어들지 않았을 경우(배제할 인과관계)에 직원들이 태만(결과)해졌는가?'를 증명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월급이야 줄든 늘든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확고하다면 인과관계가 성립되고 가설도 실증됩니다.

그러나 '충분치 않은 업무량'만으로 '직원들의 태만함'을 설명할 수 없다면, 즉 '줄어든 월급'이라는 또다른 원인이 가미되어야 직원들이 태만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이라는 가설은 기각되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야 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and (줄어든 월급)  →  직원들의 태만함

반증(Disproof)이란, 가설이 거짓임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위에서 실증이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했으므로, 반증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증의 실행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증의 실행방법
1) 원인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거꾸로임을 증명한다.
2) 원인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증거를 찾는다.
3)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인과적 설명을 찾는다.

요약하면, 실증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밝히는 절차입니다. 위에 제시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명확히 인지해야만 참인 가설을 거짓으로, 혹은 그 반대로 증명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문제해결사는 이를 명심해야겠습니다.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의 포스트는 아이폰 App으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눌러서 여러분의 아이폰에 inFuture App(무료)을 설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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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을 사랑하십니까?   

2009. 7. 2. 10:28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문제해결 과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음을 지난 포스트에서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설이 되려면 단순한 상황 이외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가설은 문제해결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임을 이제 알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실증)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설의 실증 과정에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알아보겠습니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불굴의 발명가로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늘 각인돼 있습니다.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한때 영욕에 눈이 멀어 아름답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뉴욕시에서 사용할 직류 방식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발명한 후 사업을 전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교류 방식을 발명하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교류 기술을 기반으로 전력 공급 사업에 뛰어 들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교류는 직류 방식보다 멀리 전기를 보낼 수 있고 전선이 잘 부식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전압을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가정에서 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교류의 장점을 모른 체하며 자신의 직류 방식을 홍보하기 위해 끔찍한 실험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산 채로 개와 고양이를 고압의 교류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해서 교류가 직류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다녔습니다. 또한 사형 집행 도구로 교류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 의자’를 손수 발명함으로써 교류의 위험성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악의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가 전력 공급 사업권을 획득했고, 결국 그는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디슨은 ‘내가 발명한 직류 전기가 교류보다 우수하다’는 가설에 스스로 매몰되어 오로지 교류의 위험성을 규탄하는 데 힘을 모으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단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A로 인해 B가 발생한다’라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에 어떤 힘이 생긴다고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직후에 자갈만한 우박이 떨어지는 이상기후현상이 나타나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실증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이상 현상을 전부 원자력 발전소 탓으로 돌리기 십상입니다.

실증을 통해 가설을 참/거짓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가설의 참을 입증하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설을 반대되는 증거가 나타나면 가설을 기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증거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가설을 반증하기보다는 입증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이를 증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카드 네 장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에는 짝수가 있다는 규칙을 만족하는지 확인하려면 어떤 카드를 뒤집어야 하는가?" 라고 물어 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카드를 선택해야 할까요? 답을 보기 전에 본인의 마음이 가는 카드를 집기 바랍니다.


골랐습니까? 아마 짐작이 맞는다면,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A’나 ‘2’를 집어 들었을 겁니다. 맞습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할 겁니다.

위에서 설정된 가설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엔 짝수가 있다'입니다. 사람들은 이 가설을 입증하려고만 하지 반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A'나 '2'를 집어 듭니다. 만일 여러분이 ‘7’을 집었다면 입증이 아니라 반증을 시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증을 시도하는 사람은 연구 결과 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반증에 굉장히 약합니다. (고급 독자를 위한 설명 : ‘모음이 있으면 짝수가 있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대우(對偶)명제인 ‘홀수가 있으면 자음이 있다’는 명제도 참이 돼야 합니다. 완벽한 증명을 하려면 여러분은 ‘A’와 ‘7’을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반증이 귀찮더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문제해결사여!


가설을 설정할 때는 반드시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반증 가능성이 낮은 가설은 좋은 가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의 향후 매출액은 증가하거나 하락하거나 아니면 유지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을 반증(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매출의 향후 추이를 모두 언급했기 때문에 이 가설은 항상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증의 여지가 전혀 없어서 실증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가설은 세우나 마나한 무가치한 가설입니다.

따라서 지난 글에서 제시한 '좋은 가설의 조건'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1) 문제의 원인을 파고드는 가설
2) 측정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가설
3) 해결책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가설
4) 반증 가능성이 높은 가설

또한, 가설에 대한 실증 방법을 설계할 때도 입증과 반증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오로지 입증만 가능하도록 실증 방법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제멋대로 실증 방법과 결과를 조작하여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황우석 사태'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방법으로 실증을 행했습니다. 비윤리적인 난자 채취는 차치하고서라도 교묘한 사진 조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라면 가설이 휘두르는 힘을 누를 줄 알아야 합니다. 가설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옳다고 가정한 명제'이니까요. 문제해결의 효과를 위해 잠시 눈에 씌운 색안경에 불과합니다. 가설을 설정했다는 말은 가설이 참/거짓을 실증하라는 의미지, 그 가설이 옳음을 증명하라고 숙제를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는 “지적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자기회의(自己懷疑,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달렸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문제해결의 입장에서 다시 써보면 이렇게 됩니다. "가설의 실증을 위한 최소한의 마인드는 가설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회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입증되면 과감히 그것을 폐기하고 다른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인간은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선호가 실증의 기준은 아닙니다. 가설은 실증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 덧붙임 : 이 글은 예전에 제가 쓴 글(http://www.infuture.kr/195)의 내용을 기초로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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