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이 다른, 경영의 현장   

2012. 9. 21. 15:04


그냥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여러분도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면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잡을 수 없는 경영의 본질?)



장기적인 미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적어도 3~5년 먼 미래만 하루종일 생각하는 직원을 두지 않는다.

==> 그러면서 평가는 단기적으로(1년 단위로) 한다.


일하는 데에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그러나 우수인재를 데리고 오려면 돈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1시간 더 근무하자고 제안한다.


인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미 회사에 있는 인재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우수인재는 항상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팀장으로 승진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나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해야 승진시킨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보고체계는 그대로 유지한다.

==> 보고체계를 뛰어넘는 소통은 제재를 받는다.


일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버려야 할 사업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 늘 '결정 장애'다.


틀을 깨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틀을 깨는 사고가 제시되면 비난할 준비를 한다.


독창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다른 회사가 하지 않은 전략이라면 성공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타파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사장실과 임원실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휴가를 다 소진하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 소진하기 위해 휴가를 자주 쓰면 일 안 한다고 뭐라 한다.


우수한 여성인재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출산휴가 가면 싫어한다.


괴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평가할 때는 괴짜에게 낮은 점수를 준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음날 아침'까지 완성해서 보고하라고 말한다.


사회에 기여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정작 직원들의 삶의 질은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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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회사를 다니다가 컨설턴트 일을 한 지 이제 14년 가량이 됐습니다(아니 벌써!). 그 동안 여러 기업을 보면서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경영상의 오류들이 많습니다. 제가 발견한 오류가 경영의 모든 오류를 포괄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래의 내용들은 직장을 다니는 분들이라면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겁니다. 간혹 아프게 꼬집는 오류가 있더라도 '잘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추가하고 싶은 오류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나중에 혹시 이 글을 책에 싣게 되면 출처를 밝히고 여러분이 제시한 오류를 넣겠습니다. 저도 더 생각나면 계속 추가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인력의 오류' : 사장님 눈에는 인력이 남고, 직원들 눈에는 인력이 모자르다. 항상.


'경쟁의 오류' : 경쟁사와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내부경쟁이 외부경쟁력을 높인다고 착각한다.


'운영전략의 오류' : 그저 운영인데 거창하게 '전략'이란 말을 갖다 붙인다. 누구와 운영을 놓고 싸우는데?


'가격 협상의 오류' : 한번 거래를 트면 계속 이어지니 가격을 깎아 달라고 말한다. 물론 그 다음 거래는 없다.


'업무공유의 오류' : 공유할 마음이나 필요도 없으면서, 문제만 생기면 업무공유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회식의 오류' : 윗사람만 좋아한다.


'등산의 오류' : (특히 사장님) 자신이 등산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줄 안다.


'핵심인재의 오류' : 우리 회사에서 핵심인재라고 뽑힌 자들은 업계 최고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최고가 아니다.


'예산의 오류' :예산을 아끼면 욕 먹는다. 그리고 다음엔 깎인다.


'위기 관리의 오류' :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한 사람은 보상 받지 못한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보상은 나쁜 일이 일어난 후에 수습한 사람이 받는다.


'확판의 오류' : 고객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판다. 직원들에게 팔아오라고 할당한다.


'비전의 오류' : 어느 날 갑자기 선포된다. 액자로 걸리고 홈페이지에 오른다. 직원들은 바로 잊는다.


'사장님 비서의 오류' : 많이 논다. 하지만 자를 수 없다. 그들은 '신성한 소'이므로.


'회의록의 오류' : 문제가 생길 때만 찾아본다. 회의록을 항상 말단이 쓰는 이유가 있다.


'신년사의 오류' : '금년'이 위기가 아닌 때가 없다.


'보고서의 오류' : 보고서의 생존기간은 보고서가 처음 만들어진 후부터 보고가 완료되기까지이다.


'이면지의 오류' :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이면지를 찾는다. 그러면서 왜 꼭 종이로 봐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리모콘의 오류' : 빈 자리가 있으면 버튼을 추가하려 한다. 1년에 한 번 쓸까말까한 기능으로.


'혁신의 오류' : 그저 개선을 혁신이라 부른다. 아니, 개선이든 개악이든 새로 만들었다 해서 혁신이라 부른다.


'칭찬의 오류' : "잘했어. 하지만....", "훌륭한 보고서야.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야. 하지만..." 칭찬 듣는 사람의 마음엔 '하지만'만 남는다.


'윤리경영의 오류' : 오직 직원들만 지켜야 한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예외다.


'근태관리의 오류' : 지각 출근만 뭐라한다. 야근은 뭐라하지 않는다.


'사업타당성 분석의 오류' : 그 사업을 '하는 방향'으로 분석한다. 사장님이 알아보라고 했기에.


'대안의 오류' : 2안은 항상 1안보다 못하다.


'IT의 오류' : IT시스템이 많아질수록 업무량이 많아진다. 기대와 반대다.


'임원회의의 오류' : 임원회의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한다. 정기 임원회의는 이메일로 대체해도 별 문제 없다.


'교육의 오류 1' : 교육을 안 시켜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 갔다 와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교육의 오류 2 : 일 잘해서 바쁜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이 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


'팀장 선임의 오류' : 한번 팀장이면 계속 팀장이다. 팀장이 팀원이 되는 법이 없다.


'컨설팅의 오류' : 종종 컨설턴트를 교육시켜 준다.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동기부여의 오류' : 팀장이 팀원에게 동기부여하라고 한다. 팀장은 누가 동기부여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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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수행할 때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당연히 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겁니다. 특히 도와주는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에게서 느끼는 고마움의 감정은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을 마치고 난 후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를 일을 수행하는 도중에 느끼던 고마움의 정도와 비교한다면 무엇이 더 클까요? 아마 여러분은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일을 잘 마쳤기에 일이 완료된 이후에 느끼는 감사의 정도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대학의 벤자민 콘버스(Benjamin A. Converse)와 시카고 대학의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의 실험은 그 반대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즉 도움을 받는 도중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가 일을 마치고 난 후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보다 더 크다는 것이죠. 콘버스와 피시바흐는 시카고 시민 42명을 모집하여 수고료로 2달러를 지급한 후에 4개의 객관식 퀴즈를 모두 맞히면 12달러를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처음 두 문제는 쉬웠지만 나머지 문제는 어렵게 출제하여 세 번째 퀴즈는 '지우개 찬스'를 쓰도록 하고 네 번째 문제는 '친구에게 전화 찬스'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친구가 문제를 듣고 고민하는 동안, 그리고 게임이 종료된 이후에(하지만 결과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 각각 얼마나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지 평가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참가자들은 문제를 푸는 동안 친구에게 고마움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5.72점 대 4.84점). 친구에게서 도움을 얼마나 받았느냐와 상관없이 참가자들은 게임이 끝난 후에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덜 느꼈던 겁니다.

그렇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가 일이 완료된 이후에 줄어들 거라는 점을 알고 있을까요? 도움을 주는 사람은 일이 진행되는 도중보다 일이 완료된 이후에 더 많은 감사를 기대한다는 점이 후속실험을 통해 규명됐습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는 40명의 시카고 시민을 실험에 참가시켜서 데이터를 입력하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입력자'들은 '도우미'가 큰 소리로 값을 불러주면 그걸 입력해야 했죠. 입력자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도중과 과제를 완료한 이후에 도우미의 도움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지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우미들도 입력자들이 자신들의 도움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은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죠. 

입력자들이 느끼는 '부채감'과 도우미들이 입력자들에게서 기대하는 감사의 정도를 분석하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입력자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72.0점의 감사를 느꼈지만 과제가 끝난 후에는 65.4점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도우미들은 과제가 진행 중일 때는 40.8점의 감사를 기대했고 과제가 완료된 후에는 48.1점으로 높아졌습니다. 과제가 끝나면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에 대한 부채감이 경감되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가 실시한 세 번째 실험에서도 이러한 기대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튜터가 학생의 시험 준비를 도와줄 때 학생은 튜터에게 4.40점(7점 만점)의 고마움을 느끼지만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3.17점으로 떨어졌습니다. 튜터는 시험 준비 기간 동안 학생이 자신에게 3.17점의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이 끝난 후에는 그 정도가 3.39점으로 높아졌습니다. 학생들이 시험 결과에 만족하느냐의 여부는 튜터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와 관계가 없었습니다. 튜터가 주는 도움의 유용성(instrumentality)을 평가하라고 하자 학생들은 시험 준비 기간 동안의 값이 시험 종료 후의 값보다 컸습니다. 학생들이 튜터에게 느끼는 유용성의 정도와 튜터에게 가지는 고마움의 정도가 상관성을 갖는다는 의미였죠.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느끼고 기대하는 고마움의 정도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조직으로 투영시키면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팀의 성과 달성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부하직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을 상사라고 가정하면, 부하직원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을 때보다 그것을 완료한 후에 상사로부터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기대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상사의 입장에서는 부하직원이 목표를 완수한 후에는 그 전보다 부하직원의 공로를 덜 인정하고 당연시할지도 모름을 위의 실험이 일러줍니다. 어려운 목표라 해도 일단 달성한 후에는 그 목표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상호 간의 인식 차이는 평가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부하직원은 자신의 목표 달성 결과에 100 정도의 인정 혹은 평가를 기대하는데 상사는 그것을 80 정도로 절하하여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의 실험은 평가 시즌에만 부하직원들의 목표 달성 결과를 평가할 경우 상호 간의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평가 측정의 왜곡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상사는 연말에 가서 한번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이 목표 달성 과정에 있을 때 중간중간 보여주는 노력의 결과나 중간산출물을 바로바로 평가하고 축적해 둬야 한다는 시사점도 이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부하직원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피드백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또한 부하직원들도 자신의 목표 달성 과정을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어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어려운 목표를 잘 완수했더니 상사가 당연시하거나 평가절하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생각보다 덜 인정해 주던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 심리가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지 상사가 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참고논문)
Instrumentality Boosts Appreciation: Helpers Are More Appreciated While They Are Us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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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가끔식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비주류 경영'이라는 꼬릿말을 붙여 제가 주장하거나 동의하는 경영의 방향, 관점, 방식을 적어 보았습니다. 여기에 모두 모아 올려 봅니다. '비주류'라는 말은 기존에 통용되는 경영의 방식과 반대되거나 현재의 경영 관점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간혹 급진적인 주장도 몇 개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기존의 경영 관점이 얼마나 굳어져 있고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뜻하는 반증일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비주류적'인 경영 관점,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영의 방식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조직문화에 대하여]
- 직원들을 자기 앞가림할 줄 아는 성인(成人)으로만 간주해도 대부분의 제도, 지침, 규정, 시스템은 필요가 없다.

- 가계부 쓴다고 수입이 느는 건 아니다. 직원들에 대해 통제를 강화한다고 매출이 느는 건 아니다. 위기일수록 통제를 풀라.

- 경영자들이 자신들이 채용한 직원들에게 각종 통제 시스템(평가, 지침, 상벌 규정 등)을 강화시켜 적용하는 것은 직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신뢰하지 않겠다는 신호이며,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직원들을 뽑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예산을 절감한 관리자에게는 내년도에 적은 예산이, 예산을 다 소진한 관리자에게는 많은 예산이 배정된다. 그러니 예산을 다 소진하려고 한다. 예산을 절감한 관리자에게는 더 많은 예산을, 예산을 다 써버린 관리자에게는 적은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 직원들이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따지고 보면 '직원들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칭찬은 질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된다.

-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행해지는 외부 활동(위크숍 등)들은 그 인위적 의도 때문에 오히려 사기를 저하시키고 만다.

- 회의 도중에 누구나 회의실을 떠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관심 없는 사람들을 붙잡아 둘 이유가 없으니까. 

- 회사에서 행해지는 모든 회의 시간을 선택사항(optional)으로 하라. 회의가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참석한다. 



[평가에 대하여]
- 조직의 구성원들은 모두 평가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 평가자도, 피평가자도 그렇다. 그러면서 평가를 없애려고는 하지 않는다. 평가를 왜 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생각하지 않는다.

- 직원들의 성과를 바로바로 피드백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인사평가 따위는 필요 없다. 

- 직원들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직원을 보기 전에 그 직원을 둘러싼 업무 환경을 먼저 살펴라. 

- 80%의 직원들은 자신이 상위 20%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다. 그래서 평가의 불만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데도 평가를 해야 할까?

- 키(신장)의 분포는 대략 정규분포를 따른다. 하지만 직원들의 성과는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규분포처럼 상대배분율(예를 들어, S:A:B:C:D=10:20:40:20:10)을 정하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엄청난 오류다. 

- CEO나 HR담당자들은 팀장들이 직원들에게 S등급이나 A등급을 많이 준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팀장(평가자) 잘못이 아니다. 채용하면서 좋은 사람을 뽑아서 그런 것이다.

- 직원들을 뽑을 때 잘하는 직원과 못하는 직원을 정규분포처럼 뽑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규분포인 양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경영진의 채용 능력이 빵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 직원들의 역량을 5점 척도로 측정하는 평가제도는 직원들을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런 측정 없이도 얼마든지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보상에 대하여]
-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 임금을 인상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을 올려 주면 회사 욕을 더 많이 할 뿐이다. 


- 유급휴가나 유연시간제 등은 보상이 아니다. 직원들이 자기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보상이다. 

- 일 잘하는 사람을 보상해주는 도구로서 승진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가 자기 일을 계속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먼저다. 

- 차등보상은 내부 경쟁을 야기하고 협력을 저하시킨다. 내부경쟁은 절대로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


[우수인재에 대하여]
우수인재보다 일반인재가 먼저다. 우수인재를 관리하겠다는 조치는 일반인재를 참담케 한다. 일반인재 없이는 우수인재도 없다. 

- 우수인재가 우리 회사에 없어서 문제일까? 왜 평가 관행은 우수인재가 회사 내에 극소수라고 간주하는 걸까? 지금까지 잘 굴러왔다면 이미 우리 회사에는 우수인재가 많다는 증거 아닌가? 


[리더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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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보다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이 우선이다. 현실에서는 이 우선순위가 거꾸로여서 문제다. 

- 직원들을 평등하게 대할 수 없으며 평등하게 대해서도 안 된다.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선호하는 방법, 팀장에 대한 요구 사항 등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불평등하게 대하라.

- 팀 내에는 일 잘하는 직원과 일 못하는 직원이 있다. 팀장은 누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할까? 평범한 팀장은 일 못하는 직원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 일 잘하는 직원들은 말 안 해도 잘 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우수한 팀장은 일 잘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 형편없는 상사와 같이 일한다면 당장 그곳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 상사나 부하직원이 서로를 신뢰할 수 없으면, 외부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그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 반드시 당사자가 풀어야 할 문제다.

- 소질을 가르칠 수는 없다. 교육으로 소질이 생기지 않는다. 뽑아서 소질을 갖추도록 만들 것이 아니라, 소질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한다.

- '능력이 뛰어나지만 성질이 못된 자'와 '능력은 그저 그렇지만 인덕이 있는 자'가 있다면, 후자를 관리자로 승진시켜야 한다. 하지만 전자가 더 많이 승진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 경영자는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터프하게 다루길 바라는 반면, 직원들은 관리자들이 자신들을 부드럽게 배려해 주길 원한다. 그래서인지 위기에 처하면 덕장들은 짤리고 용장들이 득세한다.


[경영의 민주화에 대하여]
이사회는 주주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외이사보다는 직원 대표가 이사회 멤버가 되어야 한다. 

-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의사결정을 한 경영자가 제일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려움을 타개하겠다고 의사결정권이 없는 직원들을 감축하는 일은 가장 졸렬한 짓이다. 

- 많은 기업에서 행해지는 혁신활동은 직원의 변화만을 요구할 뿐 경영자의 변화는 요구하지 않는다. 경영자의 변화가 필요한 혁신은 애초부터 시도되지 않는다. 

- 누군가를 채용할 때 어떤 방식이든 그 사람과 같이 일할 팀원 모두가 참여하여 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신입사원이든 경력사원이든 마찬가지이다. 새로 들어온 직원은 인사팀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므로. 

- 직원이 맡은 임무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몇시에 출근하든 몇시에 퇴근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얼굴 보여주는 시간'으로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지 말라. 

- 하루의 일을 일찍 끝내면 일이 더 주어진다. 그래서 일 속도를 늦추거나 필요 없는 일을 중요한 일인 양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일 끝나면 집에 가게 하라.

- 지각했다고 사유서를 쓰라고 하는 회사가 있다. 그렇다면, 늦게 퇴근할 때도 사유서 쓰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왜 지각만 뭐라 하는가?

- 직장인들에게 일요일 밤은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제일 짜증나는 시간이다. 정보통신 시대에 왜 꼭 물리적인 장소로 출근을 해야 하는 걸까?

- 사람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아침 9시까지 출근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며 30분 가량을 그냥 흘려 보낸다. 이럴려면 왜 정시 출근을 요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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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   

2012. 4. 5. 10:25


여러분 앞에 커다란 물건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걸 들어달라고 부탁할 때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나 나갈지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무게가 가벼운데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면 몸짓이 우스꽝스러울 테니 말입니다. 반대로 무게가 무거운 물체를 가벼우리라 예상하고 들어올릴 때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팔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미리 짐작하고 그 짐작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오랜 옛날, 거친 사바나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능력은 인간에게 필수적이었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상 자체를 보면서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짐작할까요? 아니면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먹고, 만지고, 들고...)의 방향을 결정할까요? 깨끗한 접시 위에 담겨진 빵이 모던한 찻집에 있을 때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여져 있을 때, 여러분은 전자의 빵을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빵의 신선도를 빵 자체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평가하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밝은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경우와, 컴컴한 밤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때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합니다.



다시 물건을 들어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여러분 혼자 그것을 들어보라고 할 때와, 동료가 그것을 함께 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물건의 무게에 대한 여러분의 추측 결과는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물건을 들기 전이니 같이 들어 줄 동료가 있든 없든 물건의 무게를 동일하게 추측하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물건의 무게를 실제보다 적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에덤 도어펠트(Adam Doerrfeld) 등은 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골프공 177개가 담긴 총중량 20파운드의 바구니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에 바구니를 들기 전에 무게를 추측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혼자서 들어야 하는 경우와 둘이 함께 드는 경우로 나뉘었죠. 둘이서 바구니를 함께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방의 한쪽 구석에 앉도록 하고 그를 도와줄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는 다른 쪽 구석에 앉게 했습니다. 도어펠트는 바구니의 무게가 15 파운드에서 25파운드 사이라고 일러줌으로써 과도한 추측을 방지했습니다.

실험 결과,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21파운드 정도라고 추측함으로써 실제 무게인 20파운드에 근접한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17.5 파운드라고 예측했습니다. 혼자 들어야 하는 학생들보다 약 3.5파운드를 적게 추측했던 겁니다. 바구니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 무게를 추측하라고 하니, 혼자서 바구니를 들든 동료와 함께 들든 무게를 추측한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실험 방식을 약간 변형한 후속실험(골프공 개수도 추측해 보라는 요청이 추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함께 바구니를 들어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으로도 자신에게 부과된 부담을 적게 느낀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 간의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합니다. 인간이 어떤 대상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판단할 때 주변환경을 유리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은 자신과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상사나 부하직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나 일상업무의 부담을 인식합니다. 이런 측면에 볼 때, 직원들의 업무영역을 자로 잰듯 반듯하게 구분하고 개인성과목표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려고 하는 성과주의 문화는 구성원들 간에 협력하려는 동기 자체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더욱 힘들게 여기게 만들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협력이 권장되고 협력이 문화로 정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의 문턱값이 낮기에 목표 완료의 속도가 빠르고 목표 달성의 질도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 기업에서 구현된 성과주의 제도의 방향은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의 조건과 얼마나 깔끔하게(?) 분리시킬 것인가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합니다. 개인의 성과를 몇 개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KPI)로 깔끔하게 평가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습니다. 구성원 간의 업무흐름이 엄연히 존재하는 조직에서 그런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도어펠트의 실험이 시사합니다.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 환경의 조건 하에서 인식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동료의 존재만으로도 정말 부담이 덜 느껴질까요? 도움이 안 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도어펠트는 후속실험을 통해 그 동료가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동료의 존재로 인한 경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규명했습니다. 목 보호대를 차고 잘 쓰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와 함께 짝을 이루게 한 경우와, 건강한 동료와 짝지은 경우를 비교해 보니, 동료가 부상을 당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라 간주한 학생들은 건강한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에 비해 바구니의 무게를 더 무겁게 추측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오히려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보라고 요청 받은 학생들보다도 무겁게 짐작했습니다. 협력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구성원들의 역량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목표를 강하게 부과하기보다는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자발적인 조직문화를 일구는 일이 진짜 성과주의 문화입니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KPI 도출에 열을 올리고,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을 채찍질하는 문화는 봉건적인 기업문화의 전형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협력적입니까? 여러분의 회사는 직원들 간의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랍니까?


(*참고논문)
Expecting to lift a box together makes the load look l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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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블로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는 조직의 정보 흐름을 막고 독창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원들에게 수용토록 함으로써 조직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번엔 나르시스트들의 도덕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정의하기를, 나르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르시스트의 특징들은 부정(dishonesty)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라이언 브라운(Ryan P. Brown) 등은 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긴 했지만, 이런 가설이 옳음을 밝혔습니다. 브라운은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는 93명의 학생들에게 연구의 목적이 수학 방정식으로 인지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10개씩 두 세트로 이뤄진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정답을 말할 때까지 문제 풀기를 반복해야 했죠. 브라운은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에게 30달러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알렸습니다.



헌데 이 프로그램에는 연구자들에 의해 의도된 '버그'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니터 상에 정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브라운은 이런 버그가 다른 연구에서 쓰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고 학생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제시된 후에 10초 안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답을 쓸 수 있는 칸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답이 화면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세히 일러줬습니다. 브라운은 학생들이 스페이스바를 누를 수 있는 1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정답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고 정직하게 문제를 푸는지를 보려한 것이었죠.

10개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브라운은 학생들에게 또다른 10개의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번엔 스페이스바를 1초 안에 눌러야 정답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가 나오자마자 순발력 있게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했던 거죠. '10초 조건'과 '1초 조건' 중 어떤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는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를까요? 당연하게도 1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스페이스바를 누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은 것은 고의적인 부정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죠.

학생들은 이 실험에 참여하기 3주 전에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얼마나 되는지 이미 측정 받았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 중 대표적인 것은 '떠벌리기'와 '명예욕(entitlement)'인데, 이 중 학생들의 명예욕과 고의적인 부정행위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들은 이런 부정행위를 계획하거나 고의적으로 저지를 때 죄책감을 느끼긴 할까요? 만일 나르시스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부정행위를 감행하는 것이라면 과연 남들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번엔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 등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브루넬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지를 물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친구가 강의노트를 빌려주기를 거부할 때, 친구가 '컨닝을 하자고' 부추길 때 등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며 답하도록 했죠. 또한 학생들은 최근에 자신이 몇 번이나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앞으로 30일 동안  한 번 이상의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 같은지도 응답해야 했습니다. 

분석 결과, 나르시시즘은 부정행위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나르시스트의 성향 중 과시욕과 권력욕이 부정행위와 관련이 있었고, 특히 과시욕이 클수록 자기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덜 느끼는, 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과시욕이 큰 나르시스트일수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시욕이 큰 사람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정행위를 고의적으로 저지르고 또한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브루넬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일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과시욕의 정도는 부정행위의 빈도와 관련이 없었고 죄책감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스트들은 나르시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나르시스트들이 고의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도덕적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잘못한 줄 잘 알지 못합니다. 나르시스트가 리더이든 아니면 팔로워(부하직원)이든, 권력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 그 부정이 크건 작건 조직의 성과와 건강한 문화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위의 두 연구를 통해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합법적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을 누르고 올라서려 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행위는 나르시스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을 과장해 내보이는 나르시스트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의사결정자에 의해 나르시스트가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가 장악한 조직의 의사결정 성향은 어떨까요?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중요한 위치에 올랐을 때, 그가 내리는 결정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까요? 이 주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논문)
On the Meaning andMeasure of Narcissism
Narcissism and academic dishonesty: The exhibitionism dimension and the lack of g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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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올린 글('스티브 잡스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에서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가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조직 내의 정보 공유를 억제하고 결국 조직의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성공한 리더 중에 나르시스트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이나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시즘은 개인의 성공이나 조직의 발전과는 인과관계는 갖지 못합니다.

헌데, 정보 공유의 측면에서 나르시스트적 관리자가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아이디어나 해법은 남들보다 참신하고 독창적이진 않을까요?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던 피카소처럼,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들은 나르시시즘에 젖을 만큼 똑똑하고 창의적인 것은 아닐까요? 왜냐하면 나르시스트들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을 창조하려 하는 동기가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충만한 그런 동기는 그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와 창조물의 독창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주위에 나르시스트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창의력과 참신성을 떠올려 본다면,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겠습니까?



잭 곤칼로(Jack A. Goncalo) 등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추론이 옳은지를 검증하고자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곤칼로 등은 244명의 학부생에게 'NPI 16'이라는 평가지를 돌려 나르시시즘의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학생들을 다시 불러서 2가지 과제를 수행하게 했는데, 첫 번째 것은 한 장의 벽돌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여 10분 내에 모두 써내는 과제였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그곳에 사는 거주민의 모습을 7분 이내에 그려보라는 것이었죠.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한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것이 얼마나 창의적인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두 명의 심사자를 고용하여 학생들이 벽돌의 용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는지(양적 측면),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유연한지(질적 측면)를 측정하도록 했습니다. 심사자들은 학생들이 그린 외계인 그림에서 남들과 다른 비전형적인 모습이 얼마나 발견되는지도 심사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학생일수록 자신의 아이디어와 그림이 창의적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지만, 심사자의 심사 결과를 통해 회귀분석을 해보니 나르시시즘의 정도는 아이디어의 질적 양적 측면 모두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벽돌 과제'와 '외계인 그림 과제' 모두 동일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잘났다. 창의적이다. 참신하다'라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를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나르시스트의 창의성이 그저 그렇다면, 나르시스트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창의성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위 실험에서 증명된 바와 마찬가지로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의 아이디어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의 창의력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이 곤칼로의 후속 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곤칼로는 76명의 학생들을 두 명씩 짝을 이루게 하고 한 명에게는 '제안자'의 역할을, 다른 한 명에게는 '평가자'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습니다. '제안자'에게는 영화 제작 아이디어를 구상한 다음 10분 동안의 설명으로 '평가자'를 설득시키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평가자'는 '제안자'의 아이디어를 묵묵히 듣고서 영화 제작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제안자'로부터 받은 인상을 각각 평가해야 했죠.

실험이 끝나고 분석을 해보니, '제안자'의 나르시시즘의 정도와 '평가자'들의 창의성 평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제안자가 나르시스트일수록 평가자들은 제안자의 영화 제작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독창적이라 평가한 겁니다. 이 결과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인간상을 머리에 떠올릴 때 그 모습을 나르시스트의 특징과 등치시킨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두 나르시스트가 아닌데도, 나르시스트이면 창의적일 것이라는 인상을 갖는다는 것이죠. 이 실험에서도 두 명의 심사자를 따로 고용해 학생들 모르게 평가한 결과, 나르시스트가 내놓은 영화 제작 아이디어는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나르시스트가 창의적이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자부하고 또 남들도 그를 창의적으로 여긴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입니다.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리더가 되면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정보의 흐름을 막아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대평가하여 직원들에게 강하게 푸시하고 또한 직원들도 그런 아이디어를 참신한 것인양 수용하는 바람에 역시 조직 성과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사람들이 조직에서 관리자의 위치로 승진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생각한다면, 리더의 나르시시즘은 그저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리더를 선발할 때 나르시스트의 과시 효과(showoff effect)에 영향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진정한 리더를 통해 조직의 성과 향상을 꾀하는 조직관리의 지혜입니다.

워싱턴 대학교의 에리카 칼슨(Erika N. Carlson)이 수행한 연구에서 나르시스트들은 본인이 나르시스트라는 점,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 그래서 남들에게 첫인상을 좋게 남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이 나빠진다는 점을 모두 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해법이나 전략이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자신만만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정보와 지식이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해 '부드러운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습니다. 카리스마는 내면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Are Two Narcissists Better Than One? The Link Between Narcissism, Perceived Creativity, and Creative Performance 
You probably think this paper's about you: narcissists' perceptions of their personality and repu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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