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잠을 덜 잔 실험 참가자가 돈이 걸린 게임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이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었는데, 그만큼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야근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그리고 야근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근이 이렇게 직원들의 비윤리적인 동기를 은연 중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도 높아지고 성과도 높아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는 긍정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 등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보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서머타임이 시작되기 전 날에 사람들이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설정하고 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때문에 예전보다 평균 40분 정도 잠을 덜 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영리하게도 이때를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시점으로 삼았죠.



연구진은 2003년에서 2009년 사이 미국의 203개 도시에서 일어난 인터넷 트래픽 정보를 확보하여 연예 오락과 관련된 접속건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서머타임이 시작되고나서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가 직전 월요일에 비해 평균 3.1% 정도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서머타임 시작 후 두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와 비교하면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는 6.4%가 더 많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서머타임에 적응한 다음에는 연예 오락 사이트에 접속하는 양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허나 이것만 가지고는 낮에 사람들이 업무에 집중하지 않은 채 인터넷을 보면서 빈둥거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서머타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퇴근 후의 여가시간이 1시간 늘어난 것인양 느끼고 그 덕에 밤에 인터넷 서핑을 더 많이 하는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와그너 등은 실험실 내의 통제된 조건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96명의 학부생들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찬 채 잠을 자도록 요청한 연구진은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교수직을 희망하는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본 후 컴퓨터 상에서 강의능력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평가에 사용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면서 슬쩍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죠. 수면 팔찌로부터 얻은 정보와 학생들의 인터넷 접속 시간을 따져 보니, 전날 밤에 잠을 덜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딴짓을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수면 부족은 두뇌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회피하게 만들고 인지적 부담이 덜 가는 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업무량이 많이 야근이 잦고 그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저하되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좀더 추론의 깊이를 더하면, 어제 야근한 사람은 특별히 일이 많지 않아도 오늘 야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젯밤 야근으로 의지력이 저하되는 바람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여 오전 내내 인터넷 가십 기사나 SNS에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서서히 업무를 챙기기 시작하면 오늘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근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맙니다. 

물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근하고나서도 다음날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야근으로 인해 저하된 생산성을 야근을 통해 메우려는,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양상은 조직 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근이 '생활화'된 사람들은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가열차게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겁니다(물론 예외는 있겠죠). 이는 야근이 습관화된 개인은 나태하고 비난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지력은 유한하고 한번 고갈되면 휴식과 영양소 공급을 통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관리자와 직원들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근이 잦은 직원들이 낮에 딴짓을 하는 이유는 의지력을 회복하기 전까지 인지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야근하면 당장의 생산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그 후에 발생하는 비생산성으로 인한 비용은 엄청납니다. 야근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얻은 생산성은 그 다음날 낮에 고스란히 빠져나갑니다. 업무가 많더라도 직원들에게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한 다음 저녁 6시에 칼같이 퇴근하여 잠을 푹 자게 해주는 것이 생산성에 훨씬 득이 됩니다.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꼬깝게 보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라 낙인 찍는 것은 어리석은 관리자의 단적인 모습이겠죠.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조치와 이를 통해 생산성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 몇백 억원 짜리 시스템을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합니까?


(*참고 논문)
Lost Sleep and Cyberloafing: Evidence From the Laboratory and a Daylight Saving Time Quasi-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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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앞으로 예상되는 2가지 사건의 위험 수준을 수치로 근사하게 측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두 사건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이 정해져 있을 때, 두 사건에 각각 얼마씩 예산을 배분해야 할까요? A사건의 위험도가 10점 만점에 8점이고 B사건의 위험도는 4점이라면, 당연히 A사건에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가령 예산이 1억 원이면 A사건에 6,600만원을, B사건에는 3,300만원 가량을 배분하면 됩니다. 예산 배분의 정도가 각 사건의 특성이나 그 사건으로 느껴지는 '감정'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최대한 계량적으로 측정된 위험도에 근거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로빈 윌슨(Robyn S. Wilson)과 죠셉 알베이(Joseph L. Arvai)의 실험 결과는 우리가 감정과 인상에 크게 좌우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자연공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공원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나 상해와 같은 범죄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슴 수의 급격한 증가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이 두 사건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기 위해 두 상황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느끼는지와, 각 상황을 관리한다고 할 경우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참가자들에게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은 사슴 수 증가보다는 범죄 사건을 더 부정적이고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사슴 수 증가 상황은 머리에 떠올리기 어려울 뿐더러 그 위험이 가슴에 와닿지 못하는 까닭이겠죠.



공원 관리의 역할이 주어진 참가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예산은 10만 달러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에게 공원에서의 범죄 사건이 관광객들에게 상해를 입힐 정도가 3점, 재산상의 피해를 줄 위험 4점, 자연환경을 훼손할 위험이 4점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사슴 수의 증가는 각각 4점, 5점, 5점이라는 정보를 전달했죠. 물론 수치가 나오게 된 근거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수치를 보면 범죄 사건보다 사슴 수의 증가가 더 큰 위험을 지녔기에 사슴 수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범죄 사건만을, 두 번째 그룹에게는 사슴 수 증가 상황만을 알려준 후에 10만 달러의 돈을 얼마나 각 사건의 관리에 지출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각 그룹의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 관리에는 43,469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41,828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두 가지 상황을 서로 비교하지 않고 둘 중 하나만을 인식한 채 내린 의사결정이기에 이 정도의 금액 결정은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상황을 비교하여 평가를 내리게 한 세 번째 경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에는 43,567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30,380달러를 배분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슴 수 증가라는 상황이 수치 상으로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 수치로 전달됐음에도 말입니다. 객관적인 위험 수준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와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용이함이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렇다면 두 상황의 위험도 차이를 더 크게 벌려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윌슨과 알베이는 후속 실험에서 범죄 사건의 위험도를 원래대로 3점, 4점, 4점으로 유지한 반면, 사슴 수 증가의 위험은 9점, 10점, 10점으로 크게 설정한 다음 동일한 방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상황 중에서 범죄 사건 관리의 경우만 예산을 배정하도록 요청 받은 참가자들은 43,222달러를, 사슴 수 통제 상황만을 본 참가자들은 41,080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두 상황을 모두 알지 않고 한 가지 상황만 접했기에 위험도를 비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두 상황을 함께 놓고 비교 평가하여 예산을 배분하라고 하면 사슴 수 통제에 월등하게 많은 돈을 배정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비록 참가자들은 31,464달러 대 36,213달러로 사슴 수 통제에 더 많은 돈을 배정했지만,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위험도와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양쪽 상황에 배분했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은 기업에서 여러 가지 전략과제의 우선순위나 예산을 결정할 때 각 전략과제의 효과와 비용(혹은 예상되는 리스크)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이 훼손될 가능성이 큼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매출 하락의 대처와 선행기술 투자라는 두 가지 전략과제 중 무엇을 더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지, 무엇에 더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참석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쉬울까요? 

각 전략과제를 따로 평가해서 선행기술 투자가가 더 중요하고 회사의 존립에 더 시급하다고 판단됐다 하더라도, 여기에 매출 하락이란 상황이 나란히 놓이면 참석자들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매출이 하락 추세에 있다는 그래프가 눈에 들어오고 그로 인한 위험이 곧바로 회사의 재무제표와 참석자 자신의 연봉에 영향을 끼치리란 상황이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반면 선행기술 투자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해도 초기 투자의 시점에서는 그 기술의 이미지가 모호하고 성공 여부도 불안하기 마련이라 매출 하락과 같은 단기적이고 '생생한' 상황 대처보다 후순위로 밀리고 적정 투자액을 얻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맙니다. 여러 회사에서 장기전략은 그저 문서로만 존재하는 근사한 말 뿐이고 실제 실행은 발등에 떨어진 단기전략에 집중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전략과 관련된 상황이 더 쉽게 떠올려지고 그 위험이 더 빨리 감정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사결정이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모든 참여자들이 의사결정 순간에 떠올릴 수만 있다면, 즉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객관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효과가 큰 사안을 옆으로 치운 채 단기적인 사안(대개 눈에 잘 그릴 수 있는 사안)에 필요 이상의 비중을 두는 오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조직에서 이런 오류에 빠진 적은 없는지, 그리고 앞으로 없을 것 같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When Less is More: How Affect Influences Preferences When Comparing Low and High-risk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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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의 개념이 옅어지면서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 이상 이직을 하는 추세입니다. 동료들과의 갈등 탈피, 경력개발의 기회, 높은 연봉, 자아실현 등 이직을 하는 이유야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직의 가장 큰 동기나 계기는 결국 기존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존 직무에서 금전적으로나 비금전적으로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면 굳이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서는 힘겨운 여정을 감내할 이유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 때문에 이직율이 직원들의 직무만족도를 가늠하는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러 날 동안 어려운 절차를 거쳐 드디어 새 직장에 첫출근하는 날 아침,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찾아오는 설레임은 새로운 직무에 대한 만족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런 기대를 갖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이직자의 직무 만족도는 입사 초기에 상승하곤 합니다. 설사 새로 들어온 회사가 예전의 회사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힘든 근무 조건일지라 해도 새출발한다는 감정이 직무 만족도를 끌어올립니다. 텍사스 A&M 대학의 웬디 보스웰(Wendy R. Boswell)은 이런 현상을 깨가 쏟아질 정도로 각별한 신혼부부의 모습에 빗대어 '신혼 효과(Honeymoon Effect)'라 부릅니다. 

 


하지만 신혼부부의 열렬한 사랑이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듯이 이직자의 직무 만족도는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맙니다. 신혼 효과는 어느새 '숙취 효과(Hangover Effect)'로 바뀌어 입사한지 1년이 지나면 입사 초기에 가졌던 직무 만족도보다 떨어져 버립니다.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어느 공공기관의 신규 입사자 132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연구를 수행한 보스웰은 이런 통념이 옳고 일반적일지 모른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보스웰은 신규 입사자들에게 입사 시점, 3개월 후, 6개월 후, 1년 후, 이렇게 총 4번의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입사자들은 여러 직무에 분포돼 있었는데 대부분 전문직무이거나 행정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었죠. 설문조사 항목은 크게 4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항목은 새 직무와 옛 직장에서의 직무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 수준을 1점부터 5점까지의 척도로 각각 평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항목은 이직이 자발적인 이유 때문이었는지 해고 등의 비자발적인 이유였는지를 묻기 위한 것이었죠. 

보스웰은 경력개발의 기회 부여, 안정적인 급여와 복리후생 혜택 제공 등 세 번째 설문 항목에 포함된 18개의 세부항목을 통해 사용자(employer)가 입사자에 한 약속(commitment)를 잘 이행한다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를 측정했습니다. 네 번째 항목은 회사의 여러 제도, 직무의 내용, 업무 프로세스 등에 관하여 입사자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얼마나 새로운 회사에 잘 적응했는지 보기 위한 항목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입사 후 3개월~1년 사이의 직무 만족도가 입사 시점의 값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헌데 흥미로운 점은 입사 시점부터 3개월까지는 만족도가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하다가 그 이후(6개월 후, 1년 후)에는 하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스웰은 사용자의 약속 이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회사 제도 등에 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기초하여 직무 만족도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흥미롭게도 '숙취 효과'는 사용자의 약속 이행과 회사 제도에 관한 이해 정도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평균보다 1표준편차만큼 더 높게 평가한 사람들)에게서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1년 간의 직무 만족도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보니 포물선 모양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입사 후 3개월까지는 만족도가 상승하다가 그 이후로 뚝 떨어지기 시작하여 1년 시점의 만족도는 입사 시점의 만족도에도 미치지 못했죠. 초기에는 회사 측에서 제시한 좋은 조건들,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정도가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그 효과는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빛이 바래진다는 의미입니다.

사용자의 약속 이행과 회사 제도에 관한 이해 정도를 낮게 평가한 사람들(평균보다 1표준편차만큼 낮게 평가한 사람들)의 직무 만족도는 입사 시점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였고 그 후에 거의 변화가 없거나 변화폭이 작았습니다. 입사 후 1년이 지나면, 사용자가 약속을 잘 이행한다고 보든, 또 입사자가 회사에 잘 적응하든 간에 느끼는 직무 만족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입사 후 3개월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허니문 기간이 종료되고 그 이후에는 직무 만족도가 하락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일지 모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러한 직무 만족도 하락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보스웰은 신혼 효과가 숙취 효과로 진행하는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입사자에게 제시한 조건들과 약속 이행 여부, 입사자의 회사 적응 등에 특별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직무 만족도가 오르다가 저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죠. 마치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면 처음에는 누가 흠집이라도 낼까 애지중지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세차하기도 귀찮아지는 마음과 비슷한 일입니다.

관리자들은 입사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시점에 적절하게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금 직무를 명료하게 인식시켜 준다든지,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도전적 과제를 제시한다든지,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든지 등의 노력을 통해 입사자들이 직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대처해야 하겠죠. 또한 초기부터 입사자들에게 1년 내에 그러한 만족도의 변화가 있으리란 것을 솔직하게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입사자의 급격한 직무 만족도 저하를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스웰은 옛 직장에서의 직무 만족도가 새 직장에서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또한 지적합니다. 옛 직무에 부정적일수록 새 직무에 대한 만족도 저하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고, 옛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입사자일수록 새 직무에 대한 태도 변화가 별로 없으리란 점입니다. 따라서 경력 입사자의 경우 현 직무에 대한 만족도 뿐만 아니라 입사 전의 직무 만족도를 함께 평가해야 직무 만족도 조사로부터 올바른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보스웰의 연구는 이직을 계획하는 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느끼는 '새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으니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경력개발이나 자아실현의 동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현 직장에서의 무료함과 낮은 만족도를 견디지 못해 이직할 경우에 또다시 그런 덫에 걸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직자들이 처음엔 높은 열의를 보이다가 1년이 지나면 타성에 젖은 듯한 모습을 보입니까? 이를 이직자 개인 혹은 회사의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보다 입사자가 조직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할 때 올바른 해법이 나타납니다. '군기'가 빠지는 게 당연한 현상입니다.

여러분 조직에 방금 입사한 직원들은 어떨 것 같습니까?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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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IT회사에서 KY라고 불리는 가상의 컴퓨터 언어를 능숙하게 다를 줄 아는 프로그래머 1명을 채용하려고 합니다. 동일한 대학교의 전산학과 학사 학위를 가진 두 명의 지원자가 서류를 제출했는데, 그들의 이력서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정보가 씌여 있습니다.

지원자 A : 최근 2년간 KY 프로그램 70개 작성,  대학교 평점 3.0 (5.0만점)
지원자 B : 최근 2년간 KY 프로그램 10개 작성,  대학교 평점 4.9 (5.0만점)

여러분이 지원자의 연봉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면, 그리고 서류에 적힌 이 정보만을 가지고 A와 B에게 적당한 연봉을 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도 여러분 대부분은 지원자 A가 B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충원하려는 직무가 요구하는 조건이 KY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이겠죠. 대학교 때의 평점이 얼마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제 올린 포스팅에서 소개한 크리스토퍼 흐시가 112명의 실험참가자에게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에서 지원자 각각에게 얼마씩의 연봉을 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가자들은 지원자 A에게는 33,200 달러를 주겠다고 했으나 지원자 B에게는 31,200달러의 연봉을 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 A와 B를 비교 평가하도록 하지 않고, 지원자 각각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도록 하자 지급하고 싶은 연봉 수준이 뒤바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원자 A의 연봉만을 가늠하도록 요청 받은 참가자들은 겨우 26,800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지원자 B의 연봉만을 산정한 참가자들은 32,7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지원자끼리 서로 비교하지 못하게 하고 각각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도록 하자 지원자에게 느끼는 가치(즉 연봉)가 역전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흐시는 연봉에 대해 묻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KY언어 프로그래밍 경력과 대학교 평점 중에서 무엇이 더 평가하기 쉬운 요소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은  연봉을 결정하는 데에 평점이 더 쉽게 인지된다는 의견을 뚜렷하게 밝혔습니다. 평점은 0.0에서 5.0점 사이의 범위가 주어지는 반면, KY언어는 실체가 불문명한 프로그래밍 언어인데가 어느 범위의 경력이 적절한지 쉽게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겠죠.

취할 수 있는 두 개의 대안을 따로 평가할 때 '선호'가 역전됐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척도에 가중치를 더 많이 부여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두 가지의 평가 요소 중 분명히 KY언어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여기서는 다른 지원자)이 비교 대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쉽게 인지되는 요소(여기서는 평점)를 더 중요시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서로 비교하지 않고 모든 직원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경우(한 사람의 평가자가 오직 한 사람의 피평가자를 평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평가 요소를 가지고 모든 직원들을 완벽하게 비교 평가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평가는 두 극단 사이에 어딘가에 위치하죠. 상대적으로 중요한 평가 요소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중치를 가진 채 평가될 우려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오직 1명이거나, 그 직무에 둘 이상이 존재해도 서로를 비교 대상으로 삼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 실험에서 나타난 '가중치 절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어제 올린 포스팅에서는 상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직원의 성과가 비록 절대적으로 볼 때 더 우수하더라도 자신의 역량 이상의 성과를 내는 직원의 성과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더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직원에게 결점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직원의 성과를 평가절하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오늘의 글은 직무 수행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머리 속에 '박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중치 절하'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이것 역시 객관적인 평가가 얼마나 요원하고 불가능한 일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평가하기 어려운 요소(실력, 경력, 잠재력 등)로 올바로 평가 받지 못한 채 평가가 쉬운 요소(출신 학교나 학점, 외모, 소문, 사적인 의견 등)에 의해 나쁘게 평가 받는 일, 여러분의 조직에는 과연 없습니까?


(*참고 논문)
The Evaluability Hypothesis: An Explanation for Preference Reversalsbetween Joint and Separate Evaluations of Altern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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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는 오랫동안 복사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며 복사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제록스는 복사기로 창출한 막대한 여유자금을 가지고 IBM이 장악하고 있던 대형 컴퓨터 업계로의 진출을 모색하면서 IBM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으며 공세를 펼쳤지만  IBM의 강력한 반격에 타격을 받아 큰 손실을 떠안은 채 대형 컴퓨터 시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더 큰 손실이 제록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록스가 대형 컴퓨터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분투하는 동안, 제록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캐논이 잠시 비어있던 복사기 시장을 치고 들어와 업계의 1인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제록스가 입은 손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록스는 원래 퍼스널 컴퓨터 기술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산하의 팔로알토 연구소를 견학하며 마우스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기술 등을 베껴 갈 정도였다. 하지만 IBM이 장악한 대형 컴퓨터 시장에 마음을 빼앗긴 탓에 퍼스널 컴퓨터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했고 그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로 대거 이직해 버렸다. 한 번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대형 컴퓨터 시장의 진입 실패, 복사기 시장의 지배력 상실, 차세대 컴퓨터 시장의 기회 상실 등 무려 3가지의 커다란 손실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책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는 제록스의 패착이 병법 중의 가장 저급한 책략인 공성(攻城)을 채택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엄청난 여유자금만을 믿고 무턱대고 덤볐다가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은 제록스를 ‘손자병법’을 쓴 손무가 평가 내린다면 “어쩔 수 없을 때 써야 할 공성 전략을 쓴 제록스는 하수 중의 하수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이 아니라 전략을 통해 전과를 올렸다”라고 말하며 자원을 소모하면서까지 승리를 도모하려 했던 제록스 경영자의 무지를 꼬집을 것이다.
 
우리는 기업 간이 경쟁을 전쟁으로 곧잘 묘사한다. 군사학에서 쓰는 말인 전략(strategy)이나 전술(tactics)이란 말이 경영에서 오히려 더 많이 쓰이고 수많은 비즈니스 전략들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군사전략가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헌데  비즈니스계의 경쟁은 곧 전쟁과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경쟁사를 향해 격렬하게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경쟁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손자병법은 개별 전투에 관한 ‘필드 매뉴얼’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잘 이기기 위한 방책, 즉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혜의 결정체이다. 

손무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불확실성을 헤쳐 가는 경영자들에게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리 모델이다”라고 조언한다. 손자병법의 철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기업 간의 경쟁에 적용하려면 이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가치를 손자병법의 최상의 지향점으로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 방도로 지승(知勝), 전승(戰勝), 선승(先勝)으로 구체화하여 설명한다. 지승은 경쟁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이긴다는 것이며, 전승은 전쟁에서 싸워 이긴다는 것이며, 선승은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이긴다는 뜻이다.
 
제록스가 IBM을 상대로 무모한 공성전을 벌이느라 무주공산이 된 복사기 시장을 점령한 캐논은 손자병법이 제시한 전승의 방책 중 출기(出奇) 전략을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제록스의 기본전략은 방대한 직판 체제와 대형 복사기 임대 센터를 갖추고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캐논은 가격이 비싸고 사용하기 복잡한 대형 복사기 부문에 집중하던 제록스의 전략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캐논은 복사기 부품을 표준화하여 복사기 가격을 낮추었고, 임대 방식이 아니라 중개상을 통한 판매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직영점과 임대 센터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운영비용을 제거해 버렸다. 또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를 제작함으로써 고객층을 복사기 담당부서가 아니라 회사 경영진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캐논은 제록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출기 전략을 경영의 용어로 풀면 ‘차별화 전략’이다. 캐논은 차별화를 통해 제록스가 지배하던 시장의 경쟁 규칙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바꿈으로써 제록스의 강점을 약점으로 만든 출기 전략의 전형을 보여준다. 강력한 경쟁자를 상대하려는 도전자는 관례를 깨뜨리는 방법으로 돌파 기회를 잡아야 하며 그러한 사고를 가져야만 현재의 경쟁 구도와 경쟁자의 우위를 뒤집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공법의 올바른 의미는 경쟁자가 지닌 A라는 강점에 A라는 전략으로 상대한다는 것(제록스의 IBM 공격 사례)이 아니라, A'이라는 변형되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기습한다는 것(캐논의 사례)이라 말할 수 있다.
 
차별화 전략인 출기는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공략하라는 ‘격허(擊虛)’ 전략과 종종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손무는 “깃발이 정렬된 군대와 싸우지 말고, 기세가 당당한 진영을 공격하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경쟁자가 우세를 점한 부분에 저돌적으로 공격하지 말고 취약한 점을 탐색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캐논이 그리 했듯이 차별화의 초점을 경쟁자의 ‘강점 뒤에 숨은 약점’에 두라는 의미이다. PC제조업체인 컴팩(Compaq)의 최대 강점은 촘촘한 유통망이었다. 컴팩은 이 강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제품을 확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강점은 필연적으로 약점을 담고 있었다. 델(Dell)은 촘촘한 유통망 때문에 최종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기 어렵다는 강점 속의 약점을 간파했다. 델은 중간 판매망 없이 최종 소비자에게 맞춤화된 PC를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최대의 PC판매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강점의 배후에는 항상 숨기고 싶은 약점이 존재함을 간파하는 것이 격허 전략이고, 그런 약점에 기반하여 우리의 제품 가치를 차별화하는 것이 출기 전략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손자병법은 ‘집중(集中)’의 가치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고전이다.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간단한 준칙은 병력 집중이다. 우리는 이 원칙을 엄격히 따르고, 믿을 만한 행동 지핌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쟁에서 그만큼 집중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병력을 분산시키면 전선이 길게 형성되고 상대방이 공격하기 좋은 허점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여러 분야에 문어발을 뻗치거나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에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P&G의 구원투수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가 핵심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식품업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P&G를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으로 이끌었고 위기로부터 구한 사례는 손자병법이 제시하는 집중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래플리는 “CEO가 어느 분야를 포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M&A만큼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힘든 과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라고 조언한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경영자들은 “전략의 본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 전략은 곧 버림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마이클 포터의 충고를 유념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출기, 격허, 집중 이외에 궤도(詭道), 임세(任勢), 주동(主動), 선지(先知), 오사(五事)라는 승리의 핵심 원칙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원칙을 따르고 승리한 전쟁의 사례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의 사례를 함께 이야기하며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경쟁자를 맞이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바람직한 경쟁 전략이라는 나침반을 건네준다.
 
저자는 손자병법은 경쟁이 존재하는 영역이면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가치라고 말한다. 또한 손자병법은 심오한 철학적 이치를 보여주고 풍부한 경험과 지력, 민첩한 임기응변 능력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방도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손자병법이 담아낸 ‘이기는 방법’을 수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고 손자병법은 경쟁 자체를 최고의 목적에 두지 않는다. 손무는 경쟁을 질질 끌지 말 것, 전쟁의 폐해를 항상 염두에 둘 것, 모든 결정은 이성적으로 판단한 후 내릴 것, 늘 차가운 머리를 유지할 것, 목숨 걸고 싸우려 들지 말 것을 충고한다. 손자병법의 가치는 탁월한 리더가 되려면 이렇게 승산 없는 경쟁을 피하고 승산 있는 경쟁에만 나서야 함을 역설하는 데에 있다. 손자병법의 지혜를 경영의 관점으로 정리한 이 책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은 힘이나 돈이 아니라 지혜와 전략으로 경쟁자와 대결하려는 자에게 전승(全勝)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글쓴이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이 글은 2012년 2월 29일자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실린 서평임)
(*참고도서 :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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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보(Kathleen Vohs)등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모두 4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첫번째 실험 조건에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모노폴리 게임을 하도록 했는데, 게임 머니를 많이 주는(4000달러) 경우, 적게 주는 경우(200달러), 주지 않는 경우로 조건을 세분했습니다.

두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돈이 풍족한 삶이나 돈이 부족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고, 세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과 관련된 문장이나 돈과 별 상관없는 문장을 각각 구성하도록 했죠. 마지막 네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나 중립적인 그림을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4가지 실험 조건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조건들이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돈이라는 이미지를 후자에 비해 강하게 주입시키는 조건이었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무언가를 은연 중 주입시키거나 무언가에 대한 관념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을 프라이밍(priming)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돈에 관한 여러 가지 프라이밍 조건을 설정하고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의 차이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피실험자들이 지나갈 때 공모자가 실수를 가장하여 27개의 연필을 떨어뜨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위의 4가지 실험 조건에서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적은 수의 연필을 주워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날말 퍼즐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공모자가 설명을 부탁했더니 돈의 이미지를 주입 받은 자들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120% 정도 오랜 시간을 들여 공모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는 수고료로 2달러를 지불했는데,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그 돈을 대학의 장학 기금에 기부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돈에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은 그 돈의 39%를 기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돈으로 프라이밍되지 않은 대조군의 피실험자들은 67%를 기부하겠다고 말했죠. 돈에 관한 이미지가 주입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해짐을 드러내는 결과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발견된 사실을 좀더 확장하기로 하고,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 앞에 앉아 3가지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화면보호기) 중 하나를 바라보도록 지시했습니다. 각각 물고기들이 노니는 스크린 세이버, 아무것도 없이 까맣게만 보이는 스크린 세이버, 지폐가 흘러다니는 스크린 세이버였습니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참가자가 들어와 대화할 시간을 줄 테니 그 사람이 앉을 의자를 가져다 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피실험자가 다른 참가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가 아니라, 피실험자가 앉은 의자와 다른 참가자를 위해 가져다 놓은 의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다른 스크린 세이버를 본 사람들에 비해 의자를 15인치 정도 멀리 위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다음에 수행하게 될 과제를 혼자 수행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같이 수행할지를 물었을 때,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의 16~17%만 같이 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70~80%나 같이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말했죠. 이 밖에 여러 가지 세부 실험을 진행했는데 하나 같이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타인에게 도움을 덜 청하고 혼자 일하려고 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돈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돈이 이기심을 증폭시킨다는 의미로 자신들의 실험이 해석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이기심을 키운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함으로써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실험 결과에서는 돈에 프라이밍된 사람일수록 혼자 일하길 원하고 도움을 덜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 실험이 돈에 대한 이미지 주입(프라이밍)은 이기심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충족적(self-sufficient)'인 마인드를 강화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이라는 이미지가 공정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와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자극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 충족적 마인드의 강화가 조직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능력에 따른 연봉, 성과에 따른 성과급의 차등 지급 등 조직 구성원들이 돈이라는 이미지에 강하게 노출될수록 자기 충족적(개인주의적)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위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이 필수적인 조직에서 성과급 등 자기 충족적 마인드를 프라이밍시키는 장치가 더해지거나 지속적으로 강조될 경우, 각자 맡은 임무 범위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아 협력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직원들이 돈 때문에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원들로 하여금 돈이 상징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상기시켜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과 차등을 강조하는 것이 '사회 규범(social norm)'보다는 '시장 규범(market norm)'을 자극하는 까닭이죠.

구성원들의 시장 규범이 자극 받으면 다른 이들로부터 협력이나 자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칼 멜스트룀(Carl Mellström)과 마그누스 요하네손(Magnus Johannesson)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된 바입니다. 그들은 고텐부르크에 위치한 지역헌혈센터에서 혈액 기증에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스웨덴에서는 헌혈하려면 그 전에 먼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고 약 한 달이 지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후에야 헌혈할 수 있습니다.

멜스트룀과 요하네손은 사람들에게 헌혈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는데, 질문의 조건을 세 가지로 달리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헌혈은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헌혈자가 되기 위한) 건강검진을 신청한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의 대가로 50크로노르(약 7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 후 50크로노르를 받고나서 그 돈을 스웨덴의 소아암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험 대상자 중 남성(119명)들은 그룹 간에 건강검진 신청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여성(153명)들은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여성들은 52퍼센트나 건강검진을 신청했지만, 보상을 약속 받은 여성들은 겨우 30퍼센트만 검진 의사를 표했습니다. 돈을 받은 후에 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세 번째 그룹의 여성들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53퍼센트의 신청률을 나타냈습니다. 이 실험은 돈이 개입되면 헌혈 지원률이 더욱 늘어날 거라는 주류 경제학의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면서 혈액이 돈으로 거래될 때 선행을 베풀려는 내재적 동기는 밀려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떤 회사는 부서 간의 협력 여부를 KPI로 측정해서 그에 따라 보상하거나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오히려 해악적인지 이 헌혈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을 원한다면, 그리고 협력이 우리 조직의 핵심가치이고 비전 달성의 핵심 추동력이라면, 시장경제라는 공정성과 규칙을 뛰어넘어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회 규범을 강조해야 하며 시장 규범을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혼자 일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일을 분담하지 않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과 공정성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조직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돈이 사람들을 덜 사회적으로 덜 협조적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돈이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Money 
- Merely Activating the Concept of Money Changes Personal and Interpersonal Behavior 
Crowding Out in Blood Donation:Was Titmuss Right? 
-관련된 YouTube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W2SByfHp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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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정말 '전략적 바보'였을까?   

2012. 1. 18. 10:57



소니와 마쓰시타 사이에 벌어진 ‘비디오 포맷 전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니는 베타맥스라는 포맷을, 마쓰시타는 VHS란 포맷을 각각 비디오 녹화 방식으로 채택했는데 결국 VHS가 시장을 석권했다. 이 이야기는 경영의 세계에서 전략의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베타맥스가 VHS보다 기술 면에서, 비디오 품질 면에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녹화할 수 있는 분량이 영화 한 편을 다 담기에는 짧아서 영화 보기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외면했다는 이야기, 소비자의 니즈를 사전에 간파하지 못하고 오로지 기술적인 우위에 ‘취해’ 판매자 중심으로 사고했다는 이야기, 개방적인 포맷(VHS)이 폐쇄적인 포맷(베타맥스)보다 여러 VCR 제조업체에 매력적이었다는 이야기 등이 그 내용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소니는 바보였고 마쓰시타는 영리했다’란 식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진짜로 소니는 ‘전략적 바보’였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평가는 소니가 실패했고 마쓰시타는 성공을 거둔 후에 결과론적으로 내린 ‘사후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베타맥스와 VHS가 초기에 시장에 출시될 때는 베타맥스가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VCR로 녹화했다가 나중에 보려는 니즈가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 소니는 그런 니즈를 잘 파악했기에 그에 딱 맞는 베타맥스 포맷을 내놓은 것이었다. TV프로그램 녹화에는 분량이 특별히 길 필요가 없었고 VHS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테이프 가격은 좋은 화질이라는 장점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비싼 테이프 가격, 폐쇄적인 포맷, 필요 이상의 화질 등 전략을 멍청하게 세워서 소니가 실패했다기보다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TV 프로그램 녹화에서 영화 대여를 통한 감상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점을 미리 간파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봐야 정확한 판단이다. 소니는 베타맥스를 출시하기 전에 CTI라는 회사가 영화 대여업에서 크게 실패한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자신들의 전략 방향을 나름대로 옳게 설정했다. CTI 사례를 통해 소비자들이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기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반면 VHS의 성공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인 셈이다. 마쓰시타가 전략을 영리하게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소니가 과거의 사례와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하게 연구해 전략을 세웠는데도 마쓰시타와의 비디오 포맷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CTI가 영화 대여업을 시작하고 실패하는 동안 불붙지 않았던 영화 감상 니즈가 갑작스레 커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 불확실성이 소니의 실패를 옳게 지적하는 단어다.
 
소니는 베타맥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1992년에 새로운 레코딩 기술인 MD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 기술 역시 실패하고 만다. 소니는 최근(2011년 7월)에 80분짜리를 제외한 모든 MD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해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CD보다 작은 크기의 MD는 내구성이 강하고 쉽게 녹음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역시 CD와 후에 나오는 플래시 메모리에 밀리고 말았다.
 
소니가 철저하게 전략을 수립했는데도 MD가 실패한 이유 역시 불확실성이다. 바로 곧이어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MD가 아니라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저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원하는 음악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번거롭게 MD에 따로 저장해 재생할 유인이 작았다. 소니의 전략은 훌륭했지만 인터넷이 야기한 불확실성에 대해서까지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이클 레이너는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잘못된 전략에 있지 않고 훌륭하게 수립된 전략이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훌륭한 전략은 환경의 불확실성에 따라 크게 성공할 수도 있고 크게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과 실패 중 어디로 갈지는 사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사후 가정은 전략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훌륭한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훌륭한 전략이 처하게 될 미래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훌륭한 전략을 수립할 때 “환경이 이러이러할 것이니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했던 가정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다. 훌륭한 전략이 처하게 될 미래의 여러 가지 상황을 몇 개의 시나리오로 구분한 다음에 각 시나리오에 맞게 전략을 따로따로 마련하는 ‘전략 포트폴리오’를 가져야 불확실성에 따른 전략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만 가지고 전략 리스크를 온전하게 헤지(hedge)할 수는 없다. 누가 봐도 훌륭하게 만들어진 전략일수록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고집을 유발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훌륭하게 수립된 전략이 가지게 될 경직성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효과를 가함으로써 불확실성에 크게 휘둘리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소니의 전략은 진짜 멍청했을까? 진짜 멍청한 전략은 무엇일까? 요즘 소니는 상당한 위험에 처했다. 그동안 그들이 세운 전략이 멍청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확실성 때문일까?


글쓴이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jsyu@infuture.co.kr
필자는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퓨처(inFuture)컨설팅 대표를 맡고 있다. 전략 및 HR 분야에서 다수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시나리오 플래닝: 불확실한 미래의 생존전략>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등의 책을 썼다.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7호(2012년 1월 15일자)에 실린 저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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