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에 김인식 감독과 관련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해봤는데, 이번에도 재미삼아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을 사용해서 정동영씨의 출마 시나리오를 예상해 봤습니다. 피상적인 상황만을 가지고 그려본 것이므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이해를 목적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하 정동영씨) 이 어제 귀국했다. 전주 덕진 출마를 계획하고 있는 그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만나 담판을 벌였지만, 양측의 입장 차만 재확인만 하고 소득 없이 회담은 결렬됐다. 민주당으로서는 그의 복귀를 막을 만한 카드가 딱히 없어서 고민이고, 정동영씨는 어떻게든 모당(母黨)의 공천을 받아야 정치적 재기가 순탄해지므로 역시 고민이다.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지만, 정동영씨가 앞으로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정치 행보에 나설지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정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의 고심과 입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지만, 외부로 드러난 의중을 통해 그의 출마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하려면 먼저 '핵심이슈'를 정해야 한다. 만일 내가 정동영씨의 입장이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고민이 핵심이슈가 아닐까?

핵심이슈 : 나(정동영)는 민주당이 공천해주지 않는다 해도,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정치 재기를 위해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가?

핵심이슈를 이것으로 정한 이유는 그의 출마 의지가 워낙 강해서 민주당의 공천을 못 받더라도 무소속이나 타당 소속으로라도 출마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릴 거라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치적 재기를 꾀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이니 소속이나 출마 방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추측이 틀릴 수도 있다.)

정동영씨가 이 핵심이슈에 대한 답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찾아야 한다. 이를 핵심변화동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다음의 2가지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불확실한(어떻게 될지 모르는) 요소라고 판단했다.

핵심변화동인 1 : 지역구 민심
      --
>  당 정체성을 선호할 것인가, 아니면 정동영 개인을 선호할 것인가?

핵심변화동인 2 : 지지세력 결집 가능성
     
-->  높을 것인가, 아니면 낮을 것인가?

만일 정동영씨가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민주당 후보와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지역구 주민들은 민주당이라는 타이틀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정동영이라는 브랜드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지난 총선 때 정동영씨가 고향의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 동작구를 선택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민심이 정동영을 이미 떠났는지 모를 일이다. 고향에서 출마하더라도 낙선의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동영씨 입장에서는 지역구 주민들의 민심이 불확실성이 큰 요소로 보인다.

또한 지지세력의 결집 가능성도 중요하고도 불확실한 요소다. 난 국회의원 당선은 정치 재기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라도 생각한다. 그의 최종목표는 당선하든 낙선하든 지지기반을 재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선하면 지지세력 결집이 용이해서 재기의 8부 능선을 쉽사리 오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낙선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낙선 후에 지지세력이 잘 결집만 된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2개의 핵심변화동인으로 4개의 시나리오를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시나리오 No.     시나리오명    지역구 민심 지지세력 결집 가능성 
          1     '당 선호 - 高지지'     민주당 선호         높다
          2     '당 선호 - 低지지'     민주당 선호         낮다
          3     '鄭 선호 - 高지지'     정동영 선호         높다
          4     '鄭 선호 - 低지지'     정동영 선호         낮다

이 4개의 시나리오에 대해 정동영씨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위의 핵심이슈에서 민주당 공천을 못 받는 상황을 전제했으므로, 다음과 같은 2가지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전략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기각했다.

    전략 1 : 불출마 
    전략 2 : 무소속 출마

정동영씨는 이 2개의 전략이 각각 어떤 시나리오일 때 가장 적합한지를 평가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그냥 별 생각없이 결정내릴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시나리오들과 전략들 간의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서 먼저 '적합도 판단기준'를 결정해야 한다. 즉, 어떤 기준으로 전략의 적합성을 평가할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다음의 3가지가 내가 도출한 적합도 판단기준들이다.

적합도 판단기준 1 : 당선 가능성
적합도 판단기준 2 : 당선 후 재기 기반 확보 가능성
적합도 판단기준 3 : 패배 후(또는 불출마시) 재기 기반 확보 가능성

정동영씨는 과연 위에서 정한 2개의 전략 중에 무엇을 택할까?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동영씨가 불출마하길 강력하게 희망하겠지만,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2개의 전략을 적합도 판단기준들로 다음과 같이 평가해 보았다(물론 다른 사람이 평가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적합도 판단기준 1 : '당선 가능성' 으로 평가 내린 결과
        시나리오      전략 1 : 불출마      전략 2 : 무소속 출마
        '당 선호 - 高지지'                1               1
        '당 선호 - 低지지'                1               1
        '鄭 선호 - 高지지'                1               3
        '鄭 선호 - 低지지'                1               3
                      합계                4            8
( 1 : 적합하지 않다/관련 없다    2: 적합한 편이다    3: 아주 적합하다)

적합도 판단기준 2 : '당선 후 재기 기반 확보 가능성' 으로 평가 내린 결과
        시나리오      전략 1 : 불출마      전략 2 : 무소속 출마
        '당 선호 - 高지지'                1               2
        '당 선호 - 低지지'                1               2
        '鄭 선호 - 高지지'                1               3
        '鄭 선호 - 低지지'                1               3
                      합계                4            10
( 1 : 적합하지 않다/관련 없다    2: 적합한 편이다    3: 아주 적합하다)

적합도 판단기준 3 : '패배(또는 불출마)후 재기 기반 확보 가능성' 으로 평가 내린 결과
        시나리오      전략 1 : 불출마      전략 2 : 무소속 출마
        '당 선호 - 高지지'                3               2
        '당 선호 - 低지지'                2               1
        '鄭 선호 - 高지지'                3               3
        '鄭 선호 - 低지지'                2               2
                      합계                10            8
( 1 : 적합하지 않다/관련 없다    2: 적합한 편이다    3: 아주 적합하다)


각 표의 합계 점수를 합산해 보면, '무소속 출마'가 가장 최고의 전략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서 판단했을 때, 정동영씨는 공천을 못 받았을 경우에 불출마하기보다는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소속 출마가 절대적으로 '좋은 전략'은 아니다. 위의 표를 보면 몇몇 시나리오에 대해서 무소속 출마가 적합하지 않은 것(1점)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적합도 판단기준 3의 표를 보면 불출마가 무소속 출마보다 '안전'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재기 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위험(2번째 시나리에오 대해 1점인 부분)이 있으니 포기하라는 민주당의 논리를 설명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적합도 판단기준들 중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적합도 판단기준이 등장하면 역시 의사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정동영씨가 이 표를 들여다 본다면, 당선 여부에 관심이 더 클 것이므로 아마도 적합도 판단기준 1과 2의 표에만 관심을 둘 것 같다(누구나 이기는 걸 좋아하니까). 민주당은 적합도 판단기준 3을 강조하며 정동영씨의 소매자락을 붙잡겠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시나리오 플래닝이 지양해야 할 부분이지만, (재미삼아) 정동영씨의 선택을 예측해 본다. 그는 민주당을 설득해서 공천을 받아내려고 노력할 것이고, 만일 그게 실패하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디까지나 재미삼아 시나리오 플래닝의 결과로 예측해 본 것이고, 예측이란 항상 빗나갈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너무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 정치와 정치인들은 워낙에 매우 불확실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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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재미삼아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을 사용해서 일본과의 경기 전략을 예상한 사례입니다. 예상 시점은 경기 시작 전인데, 저의 야구지식이 일천하니 이 글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이해를 목적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알다시피 지난 3월 20일(금),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제2라운드 순위 결정전이 있었다. 일본과 벌써 4번째 격돌하는 거라서 '또 일본이야?'라는 식상함 때문에, 또 이미 4강 진출이 확정됐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흥미가 이전 경기 만큼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져도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일본의 코를 한번 더 납작하게 해 놓고 준결승전에 나가기를 많은 국민들이 은근히 바랬을 거다. 이왕이면 이기는 게 좋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진행되는 모 회사의 워크샵(시나리오 플래닝) 때문에 중계방송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장소라서 휴식 시간마다 인터넷으로 득점 상황을 체크하면서 경기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워크샵 참여자들도 각자 요령껏 접속해보는 모양이었으나, 내가 그들에게 힘든(?) 워크샵 과제를 부여한 터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날 내가 진행해야 했던 워크샵 주제가 시나리오 플래닝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워크샵 장소로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김인식 감독이 고민했을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다. '과연 그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전략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지는 전략을 취할 것인가? 이기면 조1위가 되어 미국과, 지면 조2위가 되어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을 치러야 한다. 두 팀 모두 메이저 리거가 주축이라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진 팀이다. 김인식 감독은 둘 중 어떤 팀을 선택할 것인가?'... 라고 말이다.

4강 진출이 확정된 터라 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순위결정전에서 패해도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일본과의 경기인데다가,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일부러 지는 전략'을 구사하다가 자칫 콜드게임으로 대패하는 상황이 또 연출될 경우에 국민들로부터 사정없는 지탄을 받아야 하고 준결승전을 임하는 선수들의 사기도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더라도 '잘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김인식 감독이라면 어떻게 풀어갈까?

나는 자연스레 시나리오 플래닝의 맨 처음 단계인 '핵심이슈 선정'으로 생각을 전개했다. '그래, 맨 먼저 핵심이슈를 찾아야 해. 다시 말해, 이 시점(일본과 경기를 치르기 전)에 김 감독의 머리 속을 가장 고민스럽게 만드는 질문은 무엇일까? 맞아! 핵심이슈는 바로 이거야!'

핵심이슈 : 준결승전을 승리하기 위해 일본과의 2라운드 순위결정전을 이겨야 할까, 져야 할까?

핵심이슈에 대한 답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나리오 플래닝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찾아내서 시나리오들을 도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미래에 펼쳐질 여러 상황들을 감안함으로써 전략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김인식 감독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불확실성'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미국과 베네수엘라, 두 팀의 전력을 불확실성이 큰 요인들로 판단했다. 물론 두 팀은 메이저 리거가 즐비한 팀이라서 객관적인 전력이 막강한 것이 확실하나, 단기전의 특성상 투수력과 수비력으로 경기 결과가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 팀에 대한 '그들의 상대적인 전력'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전력은 '붙어봐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서 다음과 같이 두 팀의 전력을 핵심변화동인(불확실성이 매우 큰 요소)으로 선정한 후에, 4개의 시나리오를 머리 속으로 그려봤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만원 지하철의 고통을 덜 수 있었다. 여기서 '전력'이란 우리나라 팀과의 상대적인 '그날의 전력'을 의미하니 오해 없기 바란다.

    시나리오 No.     시나리오명    베네수엘라 전력    미국 전력 
          1     '강베 강미'     강하다     강하다
          2     '강베 약미'     강하다     약하다
          3     '약베 강미'     약하다     강하다
          4     '역베 약미'     약하다     약하다

이 4개의 시나리오에 대해 김인식 감독이 택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은 무수히 많겠지만, 결국 2가지로 귀결된다. 즉, 일본에 '이기는 전략'과 '지는 전략'이다.

전략 1 : 일본에 '이기기' = 즉, '미국과 준결승을 치르기'
전략 2 : 일본에 '지기'    =  즉,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을 치르기'

시나리오 플래닝에서는 시나리오들과 전략들과의 적합성을 판단해서 '최고의 전략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 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적합도 판단기준'를 결정해야 한다. 즉, 어떤 기준으로 전략의 적합성을 평가할 것이냐를 정해놔야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나는 가까스로(?) 다음과 같은 적합도 판단기준 2개를 생각해 냈다. 김인식 감독이 명감독이라면, 일본과의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 임하면서 준결승전 뿐만 아니라 결승전도 염두에 둔 전략을 구사할 거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한, 투수력을 판단기준으로 본 이유는 WBC의 이상한 '투구수 규정' 때문에 팀의 투수력을 얼마나 알뜰하게 관리하느냐가 승리요소이기 때문이다.

적합도 판단기준 1 : '준결승전을 위한 투수력 비축'
적합도 판단기준 2 : '결승전을 위한 투수력 비축'

이제 위에서 정한 2개의 전략 중에 어떤 것이 최고의 전략인지 평가 내릴 시간이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이라 필기를 할 수 없었던 탓에, (죄송하지만) 앞사람의 뒷통수를 가상의 엑셀 시트라 생각하고 암산하기 시작했다. 암산이 젬병이라서 상상 속에서 그 분의 뒷통수를 지우고 또 지워야 했다. 평가 점수는 평가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적합도 판단기준 1 : '준결승전을 위한 투수력 비축' 으로 평가 내린 결과
        시나리오      전략 1 : 일본에 이기기
     (미국과 준결승)
     전략 2 : 일본에 지기
     (베네수엘라와 준결승)
        '강베 강미'                1               2
        '강베 약미'                2               1
        '약베 강미'                1               2
        '역베 약미'                1               2
                      합계                5               7
( 1 : 적합하지 않다   2: 그저 그렇다    3: 적합하다)

적합도 판단기준 2 : '결승전을 위한 투수력 비축' 으로 평가 내린 결과
        시나리오      전략 1 : 일본에 이기기
     (미국과 준결승)
     전략 2 : 일본에 지기
     (베네수엘라와 준결승)
       '강베 강미'                1               3
       '강베 약미'                3               1
       '약베 강미'                1               3
       '약베 약미'                1               3
                      합계                6               10
( 1 : 적합하지 않다   2: 그저 그렇다    3: 적합하다)

가까스로 계산을 마치고 나니 위의 표처럼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서 '지는' 전략이 가장 최적의 전략으로 나타났다(합계 점수가 높은 쪽이 최적 전략임).

'정말로 지는 전략을 구사할까?' 워크샵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리고 일본과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김인식 감독이 어떤 전략을 택할지 확인하고 싶어서 사실 좀이 쑤셨다.

내 예상대로 김인식 감독은 정말로 '지는 전략'을 초반부터 구사했다. 선발투수로 장원삼 선수를 기용하고 경기경험을 쌓도록 그동안 뛰지 못했던 타자들을 기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심타자들만은 기존 멤버를 유지함으로써 허무하게 지지 않고 '잘 지도록' 타순을 짰다.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으로 볼 때,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이 대단히 빛나는 대목이다.

과연 김인식 감독과 코치진이 이런 과정(시나리오 플래닝)을 거쳐 일본과의 경기에서 '잘 지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준결승 상대로 베네수엘라를 '선택'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인식 감독이니, 이렇게 계량적이고 좀 복잡한 과정보다는 직감(Gut Feeling)으로 전략을 구사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을 고려하면 전략의 실패가능성을 줄이고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교훈을 김인식 감독이 (본인이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 추신 : 실수로 '올블로그' 추천 버튼을 제가 누르고 말았군요. 고의는 아니니,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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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도구로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럽다

"앞으로 우리 회사나 산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OO에 집을 사려는데, 괜찮을 거 같아?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당황스럽지만 자주 듣는 질문이긴 하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학(未來學)과 동일시하기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결코 미래학(Futurology)이 아니다.

엘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이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열광했던가!

미래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 
(출처 : 두산백과사전)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학문이다.

미래학이 이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작은 요소, 즉 '트렌드'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헌 연구, 전문가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의 스킬을 동원해서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낸다. 미래엔 지식노동자들이 대접 받을 거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될 거라든지 등이 미래학의 아웃풋들이다.

이와는 달리,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둔다. 왜냐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매우 작은 요소(즉, 트렌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즉,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관심의 대상이다. 애당초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기법이 아니다.

대신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의 미래가 여러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 수 있음을 제시한다. 미래학자들은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만 상정하지만(실제로 현실화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은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미래학자들의 저작에서처럼 확언하듯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에 대비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이고 가치다.

정리하면, 미래학은 트렌드에 집중하고,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에 집중한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래학과 통하는 면이 있지만 결코 동일한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로 소개되는 피터 슈워츠가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의 예견이 딱 들어맞은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여러 시나리오들 중에 하나가 적중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래 예측의 대가로 여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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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여기저기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경영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겠다' 라든지,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라는 글을 종종 접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전문으로 하는 나로서는 그와 같은 기사가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이제 예측 관행을 버리고 드디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회사들이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전략을 수립했는지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보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금시초문인데' 라든가, '그냥 선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고 말이다. CEO 혼자만의 아이디어이거나,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 넣으려고 시나리오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애석한 일이다.

그 중 더욱 애석한 대답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별도로 마련하여 대응하는 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본래 의미다. 헌데, 비용을 감축하고 인력을 줄이며 계획했던 투자안을 일단 보류부터 하고 난 다음에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는 뜻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을 언급한다.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찬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움추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컨틴전시 플래닝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매우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하는 과정이다.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환경변수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를 '그리는' 과정이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법이라서 언뜻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사고의 전개가 매우 다르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위급한 상황(이를 와일드 카드라고 한다)이 발생하고 난 후의 처리/대처방안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정인데 반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질 여러가지 상황(이를 시나리오라고 한다)을 그려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데,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정이 컨틴전시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공장의 화재도 불확실성을 내포한 하나의 변수로 간주될 뿐이다.

삼성전자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지만, 이 또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과는 무관하다. 그런 것은 그냥 '단기 롤링 플랜'이라고 이름 지어도 된다. 거창하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년 정도의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른다. 짧게 잡아도 2~3년 후의 미래를 상정한다. 3~6개월의 단기적인 이슈는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매순간 변하는 주가 그래프에 불과하다.

그처럼 단기적인 이슈에 매몰되면 미국식 성과주의의 폐해인 단기적 마인드의 경영 관행이 해소되지 못하고 고질병으로 고착됨을 주의해야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발을 휘젓다가 불똥이 초가 삼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는데,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들이 허겁지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할 때,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에게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 단기적인 위험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리해 보자.

시나리오 플래닝 ≠ 긴축경영
시나리오 플래닝 ≠ 컨틴전시 플래닝
시나리오 플래닝 ≠ 단기 롤링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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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중간에 '북한'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언급되었습니다.


KBS 제1 라디오 (FM 97.3 MHz) '성공예감, 김방희 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2009년 2월 2일 08:40).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회자 멘트 : 오바마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구제금융과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좀 안정되나 싶었던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이런 불확실한 금융과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좀 안정됐다 싶으면 다시 불안정해지는 걸 반복하는 건데요. 여기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오히려 큰 흐름을 놓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 큰 그림을 보고, 각각의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제언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할까요? 최근과 같은 금융과 경제 상황에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대응 방안은 어때야 하는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인퓨처컨설팅의 유정식 대표를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1. 요즘 경제와 관련해서는 불확실하다는 얘기밖에 안 하게 되는데요. 경영에서는 불확실성이나 위험, 확실성 같은 것을 구분한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제가 볼 때 불확실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가 언제 위태해질지 불확실하다’라는 말처럼 불확실성이란 말을 보통 불안하다, 위험하다, 이런 의미로 쓰는데요, 사실 불확실성이란 말은 그런 뜻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2분의 1 이죠? 이처럼 확실하게 어떤 면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 이런 것이 불확실성의 의미거든요.

따라서 불확실성은 좋게 될 수 있고 나쁘게 될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일 때가 가장 큰 것이죠. 불확실성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을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위험이나 리스크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큰 요소를 지나쳐버렸을 때 받게 되는 잠재적인 손실로 봐야 합니다.

신문을 보면 불확실성이 증폭된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요, 그것은 불안감의 표현이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확실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확실하기 때문에 잘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이 커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2. 현재의 금융과 경제 상황의 경우는 얼마나 불확실하고, 또 위험한 상황입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를 좀 분석해보자면요. 어떤 분들은 바닥을 쳤다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다. 바닥이 온다는 분도 계신데.

저는 현재가 바닥일 수도 있고, 바닥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인데요, 2007년과 2008년에 하락을 했으니 2009년에 바닥을 찍고 올라갈 거란 의견이 힘을 얻는 것 같구요, 반대로 지금의 경제 위기가 전무후무하게 전 세계적이라서 과거와 패턴 자체가 다를 거란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라기보다는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미국 중심의 경제가 다극화되는 현상을 보일 거구요, 지구온난화와 자원 고갈에 따라 지속가능 경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겁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기존의 경제지표로 보면 바닥이냐 아니냐가 중요할지 모르지만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경제의 지속가능성, 환경의 질, 소득의 평등,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반드시 위험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투자를 생각한다면,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변화를 주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바닥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너무나 단기적인 마인드죠.



3.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나 위험과 관련해, 유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변수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첫 번째는, 좀 거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기류 변화가 가장 큰 변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30일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한 합의를 파기한다는 통보를 해왔는데요, 향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 권력 세습 과정 상의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질 겁니다.

만약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특히 중국이 깊숙하게 관여할 가능성이 있구요, 그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얼마나 확고하게 유지될 건가 하는 점이 되겠습니다. 많은 국가가 공조를 여러 차례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보호주의 무역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에 대해서 미국 정부가 지원에 나서는 사례가 그런 것이거든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세계화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만약 그 때문에 공조가 약화되면 경제 위기의 회복이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거나 경제 지표가 악화될 때마다 불안해졌다가 다시 안도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 정부가 대응하는 자세는 어때야 합니까?

무엇보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도 앞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요, 사람들이 점집에 몰려드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서 하나의 정확한 수치를 얻어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거죠.

여러 기관들이 경제성장률과 같은 예측치를 쏟아내는 데요, 저는 그런 예측치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한국은행이 2008년 경제성장률을 4.7%로 예측했고, KDI도 5%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2.5% 였거든요. 만일 그런 예측을 믿고 대비했다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예를 들어 KIKO(키코) 사태도, 정부의 환율 예측을 믿어서 생긴 결과 아닙니까?

따라서 저는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5%니 6%니 하는 숫자 놀음보다, 차분하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고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게 먼접니다.



5. 큰 그림을 보면서 전반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야 된다. 유 대표께서는 그런 주장을 하고 계시고, 최근에 <시나리오 플래닝>이라는 책도 내셨는데요.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면 뭐가 도움이 됩니까?

많은 분들이 시나리오를 미래 예측 기법의 하나로 생각하시는데요, 시나리오는 예측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측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다, 3%다, 라고 말할 때처럼 한 가지 숫자로 미래를 표현하는 것이지만요, 시나리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경제 상황의 여러 가지 경우를 이야기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요,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케이스를 두루 살펴보게 해서 전략의 실패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수립했다면 오직 한 가지 케이스만 가정을 했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각각의 시나리오 하에서 개인의 투자계획 하고, 기업의 전략,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과연 적합한지 검토할 수 있구요,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을 때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전략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미래는 속도가 중요한데,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남들보다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6. 시나리오를 통해 크게 성공을 거둔 예들이 있습니까? 기업들이나 혹은 개인, 나라 차원에서요.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석유회사인 쉘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요, 원래 5위권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잘 세워서, 단숨에 업계 2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OPEC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산유국이 아니라, 석유회사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OPEC가 설립되면서 힘의 균형이 산유국 쪽으로 넘어가고, 시장 판도가 변할 거라는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 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석유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석유회사들은, 유전개발 투자를 무조건 늘려 갔죠. 그런데 산유국이 힘을 갖게 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오일쇼크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쉘은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업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 거죠.

우리나라 기업인 SK에너지도 좋은 사례인데요, 최근에 환율 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적으로 잘 대응을 해서요, 경쟁사는 손해를 봤지만 이익을 더 많이 냈다고 합니다.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실행한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그에 따라 대비했기 때문이죠.



7.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요? 개인과 기업, 정부 차원에서 구분해서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먼저 개인들은요,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할 때 자신이 기대하는 정보만 보려는 습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다면 그 회사가 잘 나갈 거라는 예측기사만 눈에 들어오고 그것 하고 반대되는 정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서 투자 전략이나 인생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상황이 어렵다 보니까, 시나리오 경영을 도입한다고 하는데요,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전략을 갱신하는 것을, 시나리오 경영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경영은 장기적인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지, 전략을 자주 바꾸는 게 아니거든요. 시나리오 경영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까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토목과 건설과 같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몰두하는 것 같은데요, 토목과 건설은 결코 성장동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미래의 성장동력은, 바이오, 환경, 에너지가 근간이 될 겁니다. 정부는 당장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그런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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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다 짜 놓았다. 그리고 시나리오별로 최적의 전략대안도 마련해 놓았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답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미래가 어떠한 모습으로 진행되어갈 것인지를 남들보다 하루라도 먼저 알면 경쟁에서 항상 이기기 마련이다. 마치 어느 지역에 태풍이 강하게 몰아칠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는 태풍예보처럼,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미리 위험을 간파하여 행동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속적으로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현실화될 미래에 관한 실마리를 미리 간파하여 조직 전체가 짜인 전략대안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케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논의해 보자.

시나리오플래닝 이후는 모니터링
다시 한번의 그 의미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시나리오플래닝이란 미래의 모습과 다가올 위험을 식별하여 미리 대응책을 수립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시나리오플래닝은 적이 침투해올 경로, 무기 및 병력의 운용방법 등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놓고 그에 맞게 아군 병력을 배치하고 훈련시키며 각종 보급을 원활히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미래를 대비하여 가능한 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 놓고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의 회사는 여타 기업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전쟁에서는 시간과 정보를 누가 먼저 지배하는가가 승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레이더를 켜 놓고 모니터의 어느 쪽에서 적의 비행기가 나타날지를 주시하는 것과 같이, 지금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여 특정 시나리오의 발생 징후를 파악해야 시나리오플래닝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붙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해당 대학의 입시전형방식이 어떻게 바뀌든지 상관하지 않거나 수능시험의 출제경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애써 공부한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니터링 지표 도출방법
그렇다면 모니터링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시나리오플래닝 과정을 통해 도출된 시나리오들을 다시 살펴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 특히 시나리오플래닝의 Step 5에서, 시나리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의 살을 붙여 만들어 낸 시나리오별 ‘소설’을 다시 펼쳐 곰곰이 읽어 보면, 거기에서 지표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샴푸와 같은 두발용품을 제조하는 B사는 주로 자사제품을 대형할인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의 첫번째 고민은 고객이 자사제품을 대형할인점에서 사길 원하는지, 아니면 전문판매점에서 구입하길 선호하는지 여부였다. 두번째 고민은 경쟁사가 자사의 텃밭인 대형할인점 마케팅을 강화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요소가 2개이므로, 그림 3과 같이 4개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B사가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지를 모니터링하려면 무슨 지표가 필요할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라. 우선 가장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지표는 대형할인점 또는 전문판매점에서 판매된 두발용품의 총매출액, 경쟁사의 대형할인점 마케팅 비용 증가율 등과 같은 성과지표일 것이다.

이런 성과지표는 모니터링할 가치가 있긴 하나 시나리오의 징후를 파악하는 ‘선행지표’로서는 함량 미달이라 말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전문판매점에서 두발용품을 구입하는 유명인사의 인터뷰, 개인이 자신의 블로그 따위에 두발용품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양, 마케팅 요원을 선발한다는 경쟁사의 모집공고 등 시각을 좀더 넓게 펼쳐야 답이 보인다.

조기경보를 위한 모니터링
모니터링 지표를 도출했다면, 각 지표와 시나리오간의 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 즉 어떤 지표가 어떤 시나리오의 발생 여부를 강화 혹은 약화시킬 것인지를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조기경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림 4와 같이, 모두 5개의 모니터링 지표와 4개의 시나리오가 있다고 가정하자. 각 지표와 각 시나리오를 짝을 맺어 지표와 시나리오의 연관성을 -3부터 3까지의 척도로 판단하면 된다.

먼저 각 지표들이 모두 양의 방향으로 커진다고 간주하자. 예를 들어, ‘애플 매장 방문고객수 증가’ 라는 모니터링 지표가 “애플과의 전쟁’ 시나리오의 발생가능성을 매우 높이는 것이라 판단되면 3, 반대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고 판단되면 -3을 기입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그림 4와 같은 표를 만들어 놓으면, 지표의 변화 방향에 따라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지를 어느 정도 계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야 조직 구성원들에게 “ ‘애플과의 전쟁’ 시나리오니까 빨리 대책을 실행해!” 라는 식의 경보를 날릴 수가 있을 것이다.

조기경보를 날리려면, 모니터링 지표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환경을 감시하는 인력, 즉 ‘모니터링팀’이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시나리오팀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선정된 모니터링 지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매순간 탐지하여 시나리오팀과 경영진에게 ‘행동개시’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링팀은 내부직원들로 구성할 수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내외부인이 밀접히 협력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행동!
시나리오를 세워 대응전략을 마련한 뒤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기회 혹은 위험의 순간을 무엇인지 알아차렸다고 해보자. 여기까지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여전히 1%가 부족하다. 아니, 1%가 아니라 100%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때’가 언제인지 알아도 행동에 옮기지 않아서 결국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앞서 연재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폴라로이드사는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으면서도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네들이 지금껏 쌓아온 즉석카메라 기술이 너무 아까워서 버리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즉석카메라 개발에 애먼 돈을 쏟아 부었다. 경영자들의 잘못된 신념은 위기를 애써 무시하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취하게 만들며 결국은 회사를 망하게 한다.

만약 여러분이 조기경보라는 제목을 보고 뭔가 복잡한 수식들이 얽혀 있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맵 따위를 상상했다면 미안하다. 위기를 먼저 알아 남들보다 한발 빨리 조치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굳이 복잡하고 비싼 시스템은 필요 없다. 조기경보체계는 조직문화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조기경보의 핵심키워드는 ‘먼저 알고 먼저 행동하는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참고도서]


(곧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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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수립하고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론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절차 자체는 까다로울 것이 없으나, 단계 단계별로 합의하고 의사결정해야 하는 과정은 꽤나 힘겹고 어떨 때에는 매우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나리오 하나를 수립하는 데에도 몇 개월을 넘어 몇 년이 소모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결국 유야무야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모두 수립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시나리오플래닝 과정의 속도와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는데, 이번 회에는 조직 내에서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 운영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시나리오플래닝 중요성 인식시키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조직 내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시나리오플래닝의 중요성과 효과를 인식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 전체가 시나리오플래닝에 관해 일관된 하나의 시각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협조를 얻기가 쉬워 진다.

필자가 보기에, 시나리오플래닝을 전략기획부서와 같은 자칭 ‘Brain’에 해당하는 조직 구성원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스스로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자기네들끼리 시나리오를 도출해 수립한 전략은 시각 자체가 편협할뿐더러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지난 회까지 설명한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 절차를 자세히 살펴보면, 프로세스의 성공 포인트 중 하나는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시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참여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팀은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하더라도, 조직 내 모든 구성원들이 시나리오플래닝의 의미와 효과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의 시나리오플래닝 전문가에게 의뢰해 시나리오플래닝의 여러 가지 사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교육 세션을 가능한 한 자주 개최하도록 하라. 그리고, 향후에 발생하게 될 위험요소가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알려줌으로써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라. 전체적으로 환경의 변화 동향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 공통적인 인식을 형성해야 시나리오플래닝을 시작할 수 있다.

시나리오 팀원 구성하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두번째 단계는 바로 시나리오팀의 일원을 뽑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지만, 적절하게 팀원을 구성했느냐의 여부가 시나리오플래닝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중에서도 프로젝트를 이끄는 프로젝트 매니저(PM)의 역할은 누구보다고 중요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PM이 되어야 하는가? 아마 여러분은 시나리오플래닝의 과정이 일종의 전략 수립과정의 수단이므로, 조직 내에서 전략 수립에 책임이 있는 부서의 장이 PM을 맡아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젝트를 이끌 PM은 오히려 전략기획부서 이외의 부서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기획부서는 전통적으로 행해 왔던 전략 수립의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에 대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시나리오플래닝을 이해하는 데 그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SWOT 분석으로 요약되는 전통적인 전략수립 프로세스는 과거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개념 자체가 정적인 분석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다. 반면 시나리오플래닝의 시점은 미래에 맞춰져 있으며 사고 프로세스가 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플래닝을 시도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고가 필요하며 그 과정은 이전 방법보다 고된 정신적 노동을 요구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일보다는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전략기획부서 구성원은 과거로부터 해왔던 전략 수립의 과정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어렵고 낯선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보다는 예전 방법으로 돌아가거나 예전 방법에 시나리오플래닝의 개념을 약간 보태기만 할 공산이 크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도 처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시나리오플래닝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SWOT분석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나리오를 수립하려는 오류를 범했었다. 요약하면, PM을 뽑을 때부터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말이다. 부서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란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PM이 될 수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시나리오플래닝의 의미와 방법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 시나리오플래닝이 전략 수립에 있어 새로운 사고방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 편협함 없이 다양한 시각을 격려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좋지 않는 측면보다는 미래의 밝은 측면에 관심을 두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시나리오플래닝을 조직 내에 도입하고자 하면 조직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PM 후보자들을 선정하여 그들 중 누가 적임자인지를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판단해 보라. PM을 선정하는 과정에 어쩌면 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적임자만 선정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아까운 시간이 아니다. 초기에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팀원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PM을 적임자로 뽑았다면 그에게 팀원 구성의 전권을 일임하라. 어떤 사람들이 시나리오 팀원으로 적절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PM에게 단 한가지의 가이드만 준다면,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팀원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서 단위로 본다면, 소위 M-P-R-S를 골고루 참여시켜라.

즉, 생산(Manufacturing), 기획(Planning), 연구(Research), 지원(Supporting)을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들이 고루 시나리오플래닝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 개개인의 특성으로 본다면, 논리적이면서 상상력도 풍부한 사람,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 흩어져 있는 개별 사안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 정보 수집과 정리를 잘하는 사람 등을 팀원으로 참여시켜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성공 포인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란 점을 잊지 말라.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한 번 수행하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까? 핵심이슈의 경중에 따라 어떨 때에는 2~3개월, 어떨 때에는 1년이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간에 관계없이 따라야 할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이제부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상세 절차를 알아보자.

시나리오 워크숍 준비 단계
실제적으로 시나리오의 도출은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된다. 워크숍을 개최하기 전에 먼저 시나리오팀원을 대상으로 미래에 관한 시각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워크숍에 들어와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모여 브레인스토밍만 하면 저절로 시나리오가 뚝딱하고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려도 해도 사전에 기본 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 어려울뿐더러 의미 없는 시간만 보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팀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시각과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첫째, 트렌드에 관련된 여러 책들을 가능한 한 많이 읽게 해야 한다. 연말이 되면 서점가를 휩쓸 듯 출시되는 각종 예측서를 읽도록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연말에 반짝하고 나오는 그러한 예측서들은 내용이 깊지 않을뿐더러 단기적인 전망에 치우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비교적 검증된 기관에서 나온 예측서를 선정해 주도록 한다.

필자는 예측서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련된 도서를 권장하고 싶다. 몇 권을 추천해 준다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문명의 충돌’,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세계는 평평하다’, ‘사다리 걷어차기’, ‘미래를 읽는 기술’ 등이다.

또는, 시대의 흐름을 독특한 시각으로 전달하는 잡지를 섭렵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표 1은 ‘미래의 읽는 기술(The Art of the Long View)’를 쓴 피터 슈워츠가 추천하는 잡지로서, 트렌드를 감지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디스커버(Discover)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와이어드(Wired)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퓨처 서베이(Future Survey)
그란타(Granta)
하퍼스(Harpers)
맨체스터 가디언 위클리(Manchester Guardian Weekly)
몬도 2000 (Mondo 2000)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옴니 (Omni)
릴리스 2.0 (Release 2.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사이언스 (Science)
테크놀로지 리뷰 (Technology Review)
유튼 리터 (Utne Reader)
워싱턴 스펙테이터 (Washington Spectator)
홀 어스 리뷰 (Whole Earth Review)

책을 읽은 다음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가 읽은 책의 내용을 발표하고 비판적인 토론을 벌인다. 발표 내용은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되 조직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토론 중에 의견이 서로 상반돼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의견 대립은 미래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권장되어야 한다. 이때의 이를 중재하는 PM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 미래학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초청하여 강연을 실시하라. 이 방법은 독서 토론보다 손쉽고 효과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강연료로 비용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방법은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책보다는 단시간 내에 미래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몇몇 전문가들의 미래를 보는 편협한 시각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위험 또한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강사를 섭외할 때에도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 워크숍을 개최하기 전까지 팀원 전원이 미래에 관한 풍부한 정보와 다양한 시야를 확보토록 해야 하므로 그 기간은 짧게 잡아도 1~2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한다면 이 정도의 사전 준비는 매우 필수적이다. 조급증에 빠져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생각일랑 하지 말라.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야 성공적인 프로세스를 기대할 수 있다.

1차 시나리오 워크숍 실시
시나리오 팀원들이 균일하게 미래의 정보를 익히고 열린 시각을 통해 미래를 바라볼 준비가 됐다면, 1차 시나리오 워크숍을 실시한다. 1차 워크숍에서 지난 회까지 설명했던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에 따라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워크숍에 참여할 시나리오팀원은 보통 15명에서 20명 정도면 적절하다. 토론의 효율성과 효과를 위해서는 전원을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시나리오플래닝 절차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 그룹당 4명 정도가 적정하다. 4명보다 많아지면 반드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생기기 마련이니 주의해야 한다. 각 그룹이 토론을 통해 시나리오를 도출해 보고, 이를 취합하여 참가자 전원이 토론을 통해 최종적으로 시나리오를 결정한다.

워크숍은 보통 1박 2일 정도 집중적으로 실시하도록 한다. 첫째 날은 시나리오의 방향을 설정하고 의사결정요소를 파악하며 핵심환경요인을 정의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즉,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의 Step 3까지를 완료한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Step 5까지를 완료한다. Step 5까지 진행하기에는 하루나 이틀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넘어가면 참가자들이 지치기 시작하여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시간이 부족할 경우 일주일 정도를 쉬었다가 다시 1박 2일 일정으로 속개하는 것이 좋겠다. 워크숍 당일에 생각나지 않았거나 다소 완전치 못했던 아이디어가 쉬는 동안 양생(養生)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나리오 도출 워크숍을 너무 질질 끄지는 말라. 시간을 끈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박 2일짜리 워크숍은 최대한 1번으로 끝내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3번까지만 실시할 것을 권한다.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조직이라면 워크숍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잘 몰라서 말 그대로 헤매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때는 외부의 전문 퍼실리테이터를 초청하여 워크숍 진행을 의뢰하는 것이 프로세스를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부 퍼실리테이터를 활용하려면 워크숍 준비 단계 때부터 동참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야 회사가 요구하는 시나리오플래닝의 목적, 방향 등을 사전에 인지하여 동일한 인식 배경을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시나리오 워크숍 실시
1차 워크숍이 종료되면 도출된 시나리오들을 전 조직 구성원에게 공유시켜라. 아마 시나리오팀원들은  시나리오 도출 결과가 대단한 비밀이나 된 듯 공개하길 꺼려할지 모른다. 물론 경쟁사에게 알려질 위험은 있다. 그러나 필자는 경쟁사가 알게 되어 발생할 위협의 크기보다는 조직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하여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가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사실 시나리오 자체는 비밀이랄 것이 없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수립한 전략이 바로 비밀인 것이다.

2차 시나리오 워크숍은 바로 시나리오를 통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다. 즉, 지난 회에 소개했던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의 Step 6를 실시한다. 2차 워크숍의 참가자는 1차 워크숍 참가했던 시나리오 팀원 전원이 그대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 동일한 인식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경을 몰라서 발생하는 질문과 오해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2차 워크숍도 마찬가지로 1박 2일의 일정으로 실시하되, 시간이 더 필요하면 최대 3번까지만 반복 진행한다.

지금까지 조직 내로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시나리오플래닝 이후에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를 주시하여 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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