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사주는 상사는 싫어요!   

2008. 6. 4. 14:41

상사가 부하직원들을 깊이 신뢰한다면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햇병아리 컨설턴트 시절, 뭣도 모르고 바쁘게만 뛰어다닐 줄만 알았던 나를 이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을 만큼으로 성장시킨 것도 바로 상사가 나에게 보여 준 신뢰의 힘 때문이다.

어느 날 까다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고객의 의뢰란 것이 뭐든 까다로웠지만, 그 의뢰건은 수수료도 기간도 터무니없었음에도 원하는 주제가 거의 1~2년은 좋이 연구해야 할 박사 논문 감이었다.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난제중의 난제였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란 끝에 결국 그간의 고객관계를 고려해 수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과연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고 고생만 하고 말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뒷걸음질쳤다. 여러 사람의 손사래에 표류하던 그 일은 마침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고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누구는 동정의 눈빛으로 띠면서 ‘대충 하는 척만 하라’며 위로주(酒)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누구는 고소한 듯 묘한 미소를 보였다. 마음 속에서 ‘거부의 악마’와 ‘도전의 천사’가 싸웠다. ‘해? 말아? 난 아직 경험도 실력도 보잘것없어. 섣불리 했다가 욕만 먹는 건 아냐?’ 라고 우울해지다가도 ‘아니지, 이번에 뭔가 보여줘야지. 그래, 비웃어라. 정말 멋진 걸 만들어 보겠어.’ 라는 용기가 불끈 솟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까라면 까야지’, 애송이 컨설턴트로서 거부는 용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상사가 나를 불렀다. 그 후 몇 분이 흐르고 상사의 방을 나올 때, 나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로 “이 일은 아주 중요하고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자네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훌륭히 끝낼 것이라고 확신해. 같이 해 보자.” 라며 신뢰의 굳은 악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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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용기백배된 나는 결국 해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그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일으켜야 했다. 시나리오플래닝은 바로 신뢰가 빚어낸 조그마한 결정체였다. 맨땅에 숱하게 헤딩하며 2개월 밤낮을 매달린 결과였기에 아직까지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멋진 1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나를 믿어 준 상사 덕이다.

만약 그가 초조하고 의심에 찬 얼굴로 “할 말이 없군.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기간 안에 내놔 봐.” 라고 말했더라면? 프로젝트는 엉망이 될 게 뻔했고, 확신컨대 이렇게 컨설팅으로 밥 벌어 먹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컨설팅 때문에 고객사의 직원들과 인터뷰할 때가 많은데, '술' 이야기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관리자들에게 직원들의 '감성 관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시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고 자랑스레 말하거나, 혹은 자기가 너무 바빠서 얘들 술도 못 사준다면서 직원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인사불성 될 때까지 술 마시면서 '으쌰으쌰'하면 팀의 화합이 강화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어떤 상사와 일하고 싶으냐.’ 란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하를 믿고 맡기는 상사’를 첫째로 꼽았다. 술 잘 사주고 잘 놀아주는(?) 상사는 아예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술 많이 사주고(실은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서) 토닥거려 주면 부하직원들이 충성할 거라 기대한다면, 당장 사표를 쓰는 것이 어떠한가? 일일이 끼고 앉아서 모든 걸 챙겨주는 것이 부하직원을 위하는 일이라 믿고 있다면, 말리지 않을 테니 계속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라.

부하는 자신을 믿어 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법이다. 재활의 명장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해도 참는다. 속이 썩고 또 썩어도 참는다. 그 선수가 제 몫을 해줄 때 비로소 소처럼 웃는다고 한다. 부하를 믿지 못하는 상사들이여, 믿고 맡겨라! 그러면 그들이 반드시 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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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 필수 호르몬   

2008. 2. 2. 21:56

신뢰게임!
철수와 만수가 각각 투자자와 수탁자가 되어 게임을 벌이고 있다. 철수가 자신의 자금 중 일부를 투자하기로 결정하면, 게임을 주관하는 자가 투자금액의 4배를 만수에게 전달한다. 돈을 전달 받은 만수는 그 중의 얼마를 철수에게 돌려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예를 들어 철수가 10만원을 투자하기로 하면, 게임주관자가 40만원을 만수에게 전달한다. 만수는 철수에게 원금과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데, 얼마를 돌려줄지는 전적으로 만수의 마음에 달려 있다. 최악의 경우, 철수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철수가 만수로부터 돈을 떼이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돌려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경경제학자인 작크(P. J. Zak)는 ‘신뢰’가 그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 명의 ‘철수와 만수’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측정한 다음, 그들에게 투자게임을 시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철수로부터 신뢰를 많이 받는 만수일수록 더 큰 금액을 되돌려 준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작크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철수가 투자금액을 결정한 직후에 수탁자인 만수의 혈액을 채취하여 호르몬 수치를 분석해 보았다. 그랬더니, 많은 금액을 돌려준 만수일수록 혈중 옥시토신(Oxytocin)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신뢰의 호르몬 옥시토신!
옥시토신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유대와 협력행동을 강화하는 호르몬이다. 또한 옥시토신은 흔히 천연마약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인 도파민(Dopamine)의 분비를 자극하기도 한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도전 의지를 불태우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옥시토신은 신뢰 구축을 위한 직원들의 동기를 고취함으로써 회사 전체의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호르몬이다.

위 실험이 증명하듯이 상대방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옥시토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 많은 보답과 헌신으로 이어진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나 직장 내에서나 신뢰는 서로의 연대를 보다 탄탄히 함은 물론이요, 회사가 목표로 삼은 성과를 달성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뢰는 옥시토신을 분비하고 옥시토신은 성과를 창출하며 높아진 성과는 다시 신뢰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신의 호르몬, 코르티솔
반면에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 가슴 한편이 답답해져 옴을 느낄 것이다. 신뢰의 상실은 양자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스트레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코르티솔에 장기간 노출되면 오히려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늘 긴장상태가 되며 집중력도 떨어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타인으로부터 불신을 자주 받는 사람에게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과학적 이유일 것이다.

조직의 필수 호르몬, 신뢰
폭주족과 문제아를 받아들여 능력 있는 기술자로 양성해 내는 주켄공업의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은 “서로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무조건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의무이다.”라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마음이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신뢰는 동료들끼리 나눌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이다. 그 사랑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지금 바로 소원했거나 탐탁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가가 신뢰가 담긴 말 한마디를 던져보라. 장담컨대, 만수가 그러했듯이 준 것보다 더 많은 성과로 보답해올 것이다. 신뢰는 관계를 강화하고 고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조직의 필수 호르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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