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 이렇게 2명의 지원자 중에 한 명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는 누가 봐도 스펙과 경력이 뛰어난 반면, B는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둘 중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A를 뽑는 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이런 상식적 결정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막스 플랑크 경제연구소의 나탈리아 몬티나리(Matalia Montinari)와 동료들은 학력, 경력, 자격 등이 썩 좋지는 않은 평범한 지원자(less qualified)를 뽑아야 유리하다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실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몬티나리가 어떤 실험으로 이와 같이 직관에 반하는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볼까요? 몬티나리는 총 63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여 3명씩 그룹을 이루도록 하고 각자 격리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자에게 고용주, 지원자 A, 지원자 B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죠. 이때 지원자 B는 능력이나 스펙이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시켰습니다. 참가자들이 수행한 과제는 고정 임금 조건으로 채용된 이후 지원자가 회사의 생산성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게임이었습니다.




몬티나리는 크게 2가지의 실험 조건을 설정했는데, 하나는 고용주가 A와 B 중에 한 사람을 채용하기로 결정한 후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합격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조건('소통 조건')이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조건은 합격자에게 합격됐다는 알림 이외에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불통 조건')이었죠. 각 그룹은 무작위로 이 2가지 조건으로 배정됐습니다(사실 다른 조건 2가지가 더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


실험으로 얻은 첫 번째 결과는 제법 많은 고용주들이 평범한 지원자인 B를 합격시켰다는 것입니다. '소통 조건'에서 29.3%, '불통 조건'에서 36.2%의 고용주가 지원자 B를 선택했습니다. 거의 모든 고용주들이 스펙이 우수한(high qualified) 지원자를 선택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입니다. 두 번째 결과는 고용주가 누구를 선택했든 상관없이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이 '불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쏟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원자 본인이 '왜 선발됐는지'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우리의 상식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입니다. 


세 번째 결과는 가장 충격적이었고 이 연구의 핵심이었습니다.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평범한 지원자들은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에 비해 50퍼센트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이 조건에서 고용주가 얻는 이익은 평범한 지원자를 뽑을 경우가 뛰어난 지원자를 뽑을 경우보다 40퍼센트나 많았습니다. 반면, '불통 조건'에서는 지원자들이 내놓는 노력의 차이와 고용주가 얻는 이득의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몬티나리는 이런 결과를 '유도된 상호성(Induced Reciprocity)'란 말로 정리합니다. 선발되기에 조금 모자란 능력과 스펙을 지닌 자들이 스스로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다고 느끼는 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고용주의 채용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불통 조건'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는 평범한 지원자에게 '능력과 스펙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뽑았다.'란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든 전달할 때 지원자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에 따라 고용주가 얻는 이득도 높아짐을 뜻합니다. 일종의 부채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몬티나리도 밝혔듯이 이 연구는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효과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 2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뽑는 가장 단순한 상황을 가정했다는 점, 임금을 고정으로 설정했다는 점, 평범한 지원자의 보답이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지 의심스럽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적어도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을 뽑는다고 해서 손해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시사합니다. 고용주가 적절하게 의사소통하면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들을 통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난 자격이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고(高) 스펙의 직원들은 그런 스펙을 얻기까지 소요된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을 덜 기여하려는 동기를 갖습니다. 그래서 잘난 직원들로 조직을 채워도 드림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예전 글 '잘난 직원들을 모으면 드림팀이 될까' 참조). 몬티나리 실험에서 평범한 지원자를 선택한 고용주들은 이런 점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스펙은 회사에서의 노력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높은 성과는 더더욱 담보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수많은 예비지원자들, 그리고 이왕이면 스펙이 뛰어난 자를 뽑으면 회사에 좋지 않겠냐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영자와 인사 담당자들에게 몬티나리의 연구가 따끔한 일침이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Natalia Montinari, Antonio Nicolò, Regine Oexl(2012), Mediocrity and Induced Reciprocity, Jena Economic Research Papers 20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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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마르시아노(Paul L. Marciano)의 'Carrots and Sticks Don't Work'을 읽다가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바로 차등보상(Reward Program)이 오히려 직원들의 동기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르시아노는 직원들을 탑퍼포머(우수성과자), 저성과자, 중간성과자(탑퍼포머와 저성과자 사이의 직원)으로 구분한 후에 각각에게 차등보상이 효과가 없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르시아노의 논리가 수긍할 만한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1 


[질문] 어떤 직원들이 차등보상 프로그램에 의해 '인정'받는가?

[답변] 탑퍼포머(우수성과자)들이다.

[이유] 그렇다면, 이미 동기가 충만하고 성과가 높은 직원들이 보상 프로그램에 의해 혜택 받고 인정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 직원들이 얼마나 '더' 동기가 충만해지고 얼마나 성과를 '더' 높일 수 있을까? 탑퍼포머들은 이미 98점을 받은 학생에 비유할 수 있다. 성과를 더 높일 만한 여지가 없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탑퍼포머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2 


[질문] 저성과자에게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유] 탑퍼포머들만 인정 받을 뿐 저성과자들은 제외된다. 저성과자들의 입장에서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얼마나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줄 뿐이다. 저성과자들의 동기는 더 떨어질 뿐이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저성과자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3 


[질문] 중간성과자들에게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유] 차등보상 프로그램이 실시되는 동안에는 중간성과자들 중 많은 이들이 '당근'을 받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당근의 대부분은 탑퍼포머들에게 돌아간다. 심리학적으로, 당근을 못 받은 중간성과자들은 '왜 받지도 못할 당근을 위해 애를 써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태도를 바꾼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려 하지 않고 차등보상 프로그램 실시 전에 비해 동기가 더 떨어진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중간성과자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최종결론] 차등보상은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고도서)

Paul L. Marciano, <Carrots and Sticks Don't Work: Build a Culture of Employee Engagement with the Principles of RESPECT>, McGraw-Hil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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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읽다 만 책이 많은 이유는?   

2012. 9. 28. 11:34


지난 번 글('살이 빠지면 다시 찌는 또 하나의 이유')에서 목표 달성도가 높아질수록 목표 달성에 방해되는 행동에 관심을 많이 가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언뜻 보면 그 글의 내용과 반대된 것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결과를 얻은 연구 결과를 살펴볼까 합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안드레아 보네찌(Andrea Bonezzi)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최초 시작점을 기준으로 삼느냐 최종 도달점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변해간다는 점을 실험으로 밝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에는 '지금까지 얼마를 이루었느냐(To-Date 프레임)'란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하지만, 중간을 지나면서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느냐(To-Go 프레임)'이란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U자형 그래프 모양으로 과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동기가 충만하다가 서서히 감소하고, 목표 달성도가 50% 정도되면 동기가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며, 차차 목표에 가까이 갈수록 다시 동기가 살아난다는 것이 보네찌의 연구 결과입니다. 따라서 목표 달성도가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목표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음을 지적하고 있죠. 





250페이지짜리 책을 완독해야 하는 과제로 예를 들어볼까요?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금까지 얼마나 읽었나'란 관점으로 목표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0페이지를 읽었다면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10분의 1로 인식되지만, 50페이지까지 읽었다면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50분의 1로 느껴집니다. 1페이지의 '상대적인 기여'가 책읽기가 진행될수록 작게 느껴지기에 점점 동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책의 중간 쯤을 읽을 때 가장 힘겹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보네찌의 표현대로 '꼼짝없이 중간에 끼이는(Stuck in the middle)'는 상태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책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에 한눈 팔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책읽기의 고통을 이겨내어 중간 지점을 넘어 읽기 시작하면 목표를 인식하는 기준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로 바뀝니다. 앞으로 읽을 분량이 50페이지 남았을 때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50분의 1에 해당되지만, 10페이지가 남았을 때는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10분의 1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수록 동기가 충만해집니다.


이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보네찌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영어 단어에 들어있는 철자를 사용하여 다른 단어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manager란 단어를 가지고 gear, range 등의 단어를 만들면 되는 게임이었죠. 모두 9개의 단어를 차례로 참가자에게 제시했는데, 특정 단어를 두 번째, 다섯 번째, 여덟 번째에 위치시켜서 참가자들의 성과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이 특정 단어가 두 번째와 여덟번 째로 제시될 때보다 중간 순서인 다섯 번째에 제시될 때 가장 성적이 나빴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과제 수행 과정의 중간지점에서 동기가 가장 떨어진다는 사실이 나타났던 것이죠. 하지만 과제 수행의 초기와 말기에 성적이 좋은 이유는 아직 불분명했습니다.


보네찌는 다른 주제의 실험을 끝낸 후에 수고료로 15달러가 든 봉투를 주면서 총 300달러를 모금하기로 한 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모금 목표액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245달러, 145달러, 55달러가 남았다고 각각 설명할 경우(To-Go 프레임)와, 지금까지 모인 모금액이 55달러, 155달러, 245달러라고 알려줄 경우(To-Date 프레임)에 참가자들이 자기의 수고료에서 얼마나 돈을 기부할 의사가 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목표 모금액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들은 참가자(To-Go 프레임)들은 245달러나 155달러가 남았다는 말을 들을 때보다 '앞으로 55달러가 남았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많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반면, 지금까지 이미 모금한 금액을 들은 참가자(To-Date 프레임)들은 245달러나 155달러를 모금했다는 말을 접할 때보다 '지금까지 55달러를 모금했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많은 돈을 기부했죠. 목표 달성도를 '지금까지 얼마를 이루었느냐(To-Date 프레임)'로 인식했을 때는 과제 수행의 초기에 동기가 높았지만, 목표 달성도를 '앞으로 얼마나 남았느냐(To-Go 프레임)'를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했을 때는 과제 수행의 말기에 동기가 높았던 것입니다. 결국 어떤 프레임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하든 간에 중간 지점에서의 동기가 가장 낮았습니다.


9개의 에세이를 읽고서 오타를 잡아내도록 한 세 번째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단, 아무런 프레임을 제시하지 않는 조건을 이번에는 포함시켰죠. 프레임 없는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에세이의 오타는 비교적 잘 잡아냈지만, 다섯 번째 에세이를 읽을 때는 성적이 가장 저조했습니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과제를 수행해 가면서 처음과 마지막에는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크지만 중간 지점에서는 동기가 가장 낮다는, "U자형 가설"이 규명되었습니다.  즉, 처음에는 시작점으 목표 달성도의 기준을 삼지만 중간 지점을 지나면서는 도달점을 목표 달성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죠.


지난 번 글('살이 빠지면 다시 찌는 또 하나의 이유')에서 설명한 피쉬바흐의 실험(목표에 가까이 갈수록 목표 달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한다는 결과)와 보네찌의 연구가 서로 배치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피쉬바흐의 연구 내용을 곰곰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얼마나 이루었냐'는 To-Date 프레임에서 사람들의 동기가 얼마나 저하되는지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실험은 서로 맥이 통합니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중간 지점에 끼여서(Stuck in the middle)'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 한다는 점이 보네찌 연구의 가장 큰 시사점입니다. 과제 수행의 초기에는 목표 달성 과정에 새로 돌입한다는 신선감에, 말기에는 목표 달성을 곧 이루어낸다는 기대감에 높은 동기를 갖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뭐든 간에 중기가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어떻게 해야 동기가 과도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방지할 것인지가 목표 달성을 담당한 직원과 그의 상사가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과제 수행의 초기나 말기가 아니라 중기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겠죠. 중기에 이르면 원래의 목표를 몇 개의 세부 목표로 나눠 제시함으로써 목표 달성에 임하는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250페이지 책의 125페이지 부근에서 책읽기가 힘들어지면 '앞으로 20페이지만 더 읽자. 다 읽으면 미련없이 책을 덮고 나중에 또 보자.'라는 작은 목표들을 세우면 좋겠죠. 제가 주로 쓰는 방법인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탄력을 받아 20페이지 이상을 읽게 됩니다.


동기 저하의 U자형 패턴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힘든 중간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중간에 끼어있지 않습니까? 중간쯤에서 읽기를 중단한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고논문)

Andrea Bonezzi, C. Miguel Brendl, Matteo De Angelis(2011), Stuck in the Middle: The Psychophysics of Goal Pursuit, Psychological Science, Vol.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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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경영대학원의 에일렛 피쉬바흐(Ayelet Fishbach)는 45명의 여대생들에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무게와 현재의 몸무게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물으면서 수직선을 제시했습니다. 수직선 가운데에 위치한 빈칸에 현재의 몸무게를 쓰게 하고 이상적인 몸무게를 수직선 상에 표시하게 하고 두 점 사이를 색칠하도록 했죠. 그런데 피쉬바흐는 여대생의 절반에게는 양 끝점이 각각 -5파운드와 +5파운드인 수직선(좁은 수직선)을 주고, 나머지 여대생들에게는 -25파운드와 +25파운드인 수직선(넓은 수직선)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몸무게가 125파운드(약 57킬로그램)이고 이상적으로 여기는 몸무게가 120파운드(약 54킬로그램)이라고 가정하면, 좁은 수직선을 받은 학생은 넓은 수직선을 받은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더 넓은 범위를 색칠해야 합니다. 색칠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하는구나. 아직 멀었네.'란 생각을 갖게 되는 반면, 색칠을 적게 하면 '목표 체중과 현재 체중이 그리 차이 나지 않네? 내가 살을 많이 뺀 모양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피쉬바흐는 목표 달성도를 인식하는 차이가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여대생들에게 실험과 관계 없는 설문에 응답하게 하고는 고마움의 의미로 초콜릿바와 사과를 주겠다고 했죠. 단, 초콜릿바와 사과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게 실험의 핵심이었죠. 넓은 수직선을 받은 여대생들 중 85퍼센트가 초콜릿바를 선택한 반면, 좁은 수직선 조건의 여대생들은 58퍼센트만 초콜릿바를 골랐습니다. '목표와 차이가 크지 않다.'라고 느낄수록 초콜릿바처럼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는 음식을 선택하는 등 '체중 감량'이라는 목표에 반(反)하는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결과였죠. '나는 충분히 살을 뺐으니 이제 좀 즐겨도 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목표 몸무게처럼 자신이 정한 목표가 아니라 사회적인 기준에 얼마나 도달했는가를 인식하는 차이도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피쉬바흐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지난 주에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했는지 적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적어야 할 종이에는 이미 다른 학생의 공부시간이 고의로 적혀져 있었습니다. 피쉬바흐는 그 값이 30분인 경우(낮은 사회적 기준)와 5시간인 경우(높은 사회적 기준)로 나누어 참가자들에게 제시해 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공부시간을 적은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외출하기', 'TV 시청하기', '재미있게 놀기'와 같이 비학업적 활동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지 물었습니다. 통계를 내보니 낮은 사회적 기준 조건의 학생들이 비학업적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싶어했습니다. 다른 학생이 적게(30분) 공부한다는 것을 본 참가자들이 '나는 충분히 공부했어.'라는 생각으로 인해 공부에 반하는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된 것입니다. 이 실험 역시 목표와 현재 상태 사이의 차이를 적게 인식할수록 목표와 일치하지 않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보여줍니다.


위의 두 실험 결과는 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는가를 확인하는 행동이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활동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추론케 합니다. 피쉬바흐는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학업, 저축, 건강 유지라는 목표 각각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있는지를 묻었고(몰입도 조건), 두 번째 그룹에게는 동일한 목표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달성도 조건). 그런 다음, 밤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도록 했죠. 달성도 조건의 참가자들은 목표에 부적절한 행동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반면, 몰입도 조건의 참가자들은 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목표 도달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점검하기보다는 얼마나 노력하고 몰입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피쉬바흐는 체육관에 운동하러 들어가는 학생들과 운동을 끝내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각각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의 효과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 다음 저녁식사로 맛있지만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얼마나 먹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운동을 끝낸 후의 학생들보다 운동하기 전의 학생들이 운동의 효과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운동하기 전의 학생들이 운동 후의 학생들에 비해 느끼한 음식을 더 많은 관심을 보였죠. 따라서 운동 효과를 높게 인식할수록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에 더 많이 끌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목표에 더 많이 다가갔다고 느낄수록 목표에 반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실험에서도 드러난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목표에 많이 도달했다고 생각할수록 그 목표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저울에 체중을 달아보고 '2킬로그램이나 빠졌네. 목표까지 5킬로그램 밖에 안 남았어.'라고 기뻐하면 무의식은 우리에게 기름기 많고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면허증'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빠졌던 2킬로그램이 다시 불어버린 몸무게를 보고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죠. 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느냐를 확인하는 행동이 오히려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피쉬바흐의 실험을 조직에서의 MBO 목표 달성에 바로 대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치를 정해두고 목표 달성도를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하는 방식이 오히려 목표에 반하는 행동, 목표 도달을 유보하려는 행동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직원들을 코칭하는 관리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입니다. 타겟을 정해두는 MBO가 과연 옳은지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피쉬바흐의 세 번째 실험이 시사하듯이, 목표 달성도보다는 목표에 얼마나 몰입하는지를 점검해 나가는 방식이 목표에 일치하도록 직원들의 행동을 유지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MBO에서 정해놓은 타겟이 절대적으로 '옳은' 값일까요? 100이란 타겟을 달성한 직원에게 '이제 할 만큼은 다 했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타겟을 정해둠으로써 목표 달성도에 관심을 두도록 만들면 100을 넘어선 성과가 진짜로 도달해야 할 수치인데도 불구하고 100 언저리에서 멈춰 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타겟을 정해놓은 관행이 이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겠습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목표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를 자주 확인하는 것보다 목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집중할 때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피쉬바흐의 연구가 주는 시사점입니다. 타겟에 근접했다 해도 목표 달성에 몰입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목표에 반하는 행동에 면허증을 발부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제어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Ayelet Fishbach, Ravi Dhar(2005), Goals as Excuses or Guides: The Liberating Effect of Perceived Goal Progress on Choic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Vol.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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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이 다른, 경영의 현장   

2012. 9. 21. 15:04


그냥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여러분도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면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잡을 수 없는 경영의 본질?)



장기적인 미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적어도 3~5년 먼 미래만 하루종일 생각하는 직원을 두지 않는다.

==> 그러면서 평가는 단기적으로(1년 단위로) 한다.


일하는 데에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그러나 우수인재를 데리고 오려면 돈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1시간 더 근무하자고 제안한다.


인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미 회사에 있는 인재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우수인재는 항상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팀장으로 승진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나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해야 승진시킨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보고체계는 그대로 유지한다.

==> 보고체계를 뛰어넘는 소통은 제재를 받는다.


일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버려야 할 사업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 늘 '결정 장애'다.


틀을 깨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틀을 깨는 사고가 제시되면 비난할 준비를 한다.


독창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다른 회사가 하지 않은 전략이라면 성공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타파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사장실과 임원실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휴가를 다 소진하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 소진하기 위해 휴가를 자주 쓰면 일 안 한다고 뭐라 한다.


우수한 여성인재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출산휴가 가면 싫어한다.


괴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평가할 때는 괴짜에게 낮은 점수를 준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음날 아침'까지 완성해서 보고하라고 말한다.


사회에 기여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정작 직원들의 삶의 질은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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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집에서 애들이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남성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직업 세계에 여성들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지요? 여성들에게 가장 적당한 직업은 요리사, 간호사, 교사일까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정말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런 성차별적인 질문에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겁니다. 이 블로그의 방문자분들은 훌륭한 양성평등주의자(혹은 페미니스트)일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방금 함정에 걸려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성차별적인 질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한 후에 누군가가 성(gender)과 관련된 판단 과제를 제시하면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인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할수록 나중에 편견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그럴리가!' 부정하고 싶지만 이는 베누이 모닌(Benoît Monin)의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모닌은 200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질문 5개를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시멘트 회사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신규직원을 뽑는다는 가상의 사례를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 사례는 지원자가 고객과의 협상력, 공사 감독과 건설회사와의 친화력, 전문 기술 등이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 직원이 적합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죠. 모닌은 참가자들에 남성과 여성 중 누가 이 포지션에 적합할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5개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임을 강하게 유도 받은 참가자들은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참가자(사전에 질문를 제시 받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시멘트 회사에 근무할 사람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대답을 더 많이 내놓았습니다. 분명히 여성 차별적이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남성성이 강한 직업에서 여성을 더 많이 배제하려 했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닌은 컨설팅 회사에 입사를 원하는 지원자 5명의 이력서를 보여주고 그 중에 한 명을 선택하라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던졌습니다. 지원자들 중에는 유일하게 백인 여성 1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나머지는 모두 백인 남성), 명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기에 누가 봐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매력적으로 보였죠. 이런 조건 하에서 참가자들은 '나는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받았거나 '나는 여성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겁니다.


하지만 모닌이 첫 번째 실험에서 제시했던 시멘트 회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참가자들은 이런 조건에 노출되지 않은 참가자들(지원자 5명 모두가 백인 남성이라는 조건을 접한 참가자들)에 비해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모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에 대한 편견 상황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을 수행했는데,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없음을 사전에 자극 받은 참가자들이 신임 경찰관으로 흑인보다는 백인을 더 선호했습니다.


이렇듯 성, 인종,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자극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보이는 판단과 행동이 편견에 빠지고 마는 현상, 간단히 말해 편견이 없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편견에 의한 행동을 강화시키는 현상, 이를 심리학에서는 '크레덴셜 효과(Credentials Effect)'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직전의 말이나 행동이 편향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거나 느낄수록 그 다음의 말이나 행동이 편향적이어도 된다는, 일종의 자격(credentials)을 부여 받는다는 뜻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나쁜 일을 해도 된다고 여긴다는 '도덕적 허용(Moral licensing)'이란 개념과 크레덴셜 효과를 연결하면 평소에 양성평등을 외치던 사람이 엉뚱하게도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하거나 성희롱를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편견이 없다고 자신하면 오히려 편향된 행동이 강화되는 현상. 인간의 심리는 알면 알수록 오묘합니다. 여성 인력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업일수록 알게 모르게 차차 여성 인재(혹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드러날지 모릅니다. 또한 기업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필수로 진행하곤 하는데 크레덴셜 효과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라지 않는 상황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참고논문)

Benoît Monin, Dale T. Miller(2001), Moral Credentials and the Expression of Prejudi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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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러분에게 간장과 케첩이 혼합되어 역겨운 액체를 마셔보라고 권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역겨움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하면서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이 액체를 가능한 한 많은 양을 마셔줄 것을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장과 케첩이 섞였다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맛이겠죠. 프린스턴 대학교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동료들은 이런 역겨운 액체를 마셔야 하는 실험에 153명의 학생들을 참여시켰습니다.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이 액체를 곧바로 먹어야 한다면 얼마를 마실지 결정해야 했죠('현재의 나'를 위한 결정). 반면, 두 번째 그룹은 오늘밤으로 계획된 실험이 연기되어 다음 학기에 실행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가 되면 얼마를 마실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이 액체를 자신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 실험에서 마실 양을 결정하라고 요청 받았죠('타인'을 위한 결정). 학생들은 1작은큰술, 1큰술, 1/4컵, 1/2컵, 1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의 발전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선택해 줄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학생들은 '현재의 나'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역겨운 간장-케첩 음료를 더 많이 '먹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당장 음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대략 2큰술 정도 마실 수 있다고 했지만, 다음 학기에 자신이 먹어야 할 경우에는 반 컵 분량에 가까운 음료를 마시겠다고 답했습니다. 타인을 위해 음료의 양을 결정할 경우에도 역시 반 컵 정도의 음료를 할당했습니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간장-케첩 음료는 지금도 역겹고 다음 학기에도 똑같이 역겹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역겨움에 대한 내성이 생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미래의 나'가 그런 역겨움을 더 잘 참아내리라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 비해 무엇이든 잘 참아내고 잘 극복하는 이상적인 대상으로 막연히 떠올린다는 것이죠. 또한 '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과 '타인'을 위한 결정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실험 결과는 우리가 '미래의 나'를 낯선 타인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의 나'를 '나'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확인을 위해 프로닌은 낙제 받을 위험에 처한 동료학생 A를 위해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묻는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이 중간고사 기간에 수행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타적인 결정과 이기적인 결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프로닌은 학생들에게 "바로 A를 도와줘야 하는데 몇 시간이나 도울 수 있는가?('현재의 나')"라고 물었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A를 다음 중간고사 기간에 도와줘야 한다면 몇 시간이 도울 수 있는가?('미래의 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현재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27분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85분이나 도울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학생이 A를 도와야 한다면 몇 시간이나 도와줄까?"라는 '타인' 조건의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120분이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답했죠(하지만 '미래의 나' 조건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음).


"100분의 1의 확률로 50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지금 받을 것인가, 아니면 65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2.5개월 후에 받을 것인가?"를 묻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현재의 나' 조건일 때는 46퍼센트만이 2.5개월 후에 복권을 받겠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와 '타인' 조건일 때는 공히 74퍼센트가 복권을 나중에 받겠다고 답했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 비해 만족을 지연시키며 더 잘 참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었죠. '미래의 나'는 '타인'처럼 먼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미래의 나'를 이상적인 존재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가 하지 못한 일을 '미래의 나'는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고 없던 능력이 생겨나며 열정이 솟아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막연하게 믿어 버리죠. '미래의 나'는 사실 '현재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미루는 습관'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프로닌의 실험은 의미가 있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에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할 때 혹은 중장기 전략을 세울 때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가 되면 '다 이루어지겠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막연한 기대를 겁니다. 사실 '미래의 조직'이 '현재의 조직'보다 더 나아진 상태라고 보장하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지금은 간장-케첩 음료를 2큰술 밖에 못 먹지만 그때가 되면 1/2컵이나 마실 수 있을 거야.'란 생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편향에 빠지면 프로젝트 계획이나 중장기 전략이 허황된 '장미빛'으로 가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정을 아주 빠듯하게 잡는다든지, 기대효과를 부풀린다든지 하겠죠. 돌발변수나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잘 되겠지'란 근거 없는 낙관주의만 난무할 겁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에 비해 더 체계적이고 더 경쟁력 있으며 더 일사불란한 조직일 거라고 믿는 순간, 오늘 여러분이 수립하는 크고 작은 계획들은 태생적인 리스크를 잉태하는 꼴입니다. 그 계획들을 실행할 '미래의 조직'의 실태를 냉철하게 판단할 때 현실성 있는 계획이나 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과 별다를 것이 없으니까요.



(*참고논문)

Emily Pronin, Christopher Y. Olivola, Kathleen A. Kennedy(2008), Doing Unto Future Selves As You Would Do Unto Others: Psychological Distance and Decision Making,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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