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할 때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지원자가 과연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인지의 여부일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고 객관적으로 지원자의 답변을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과제겠죠. 그러나 실제로 기업에서 행하는 채용 관행을 살펴본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렌 리베라(Lauren A. Rivera)는 지원자의 역량이나 경력 등과 같은 자질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리베라는 법률 자문, 투자은행, 컨설팅사와 같이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했던 임원, 인사 담당자, 중간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모두 120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40~90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리베라는 가상의 지원자들이 쓴 이력서를 보여주고 구두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지원자의 어떤 요소를 중요시하며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리베라는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한 곳에서 채용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면서 채용 담당자들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연구 방법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경영자들은 지원자의 역량 뿐만 아니라 그 지원자가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잘 맞는가', '동료들과 문화적으로 잘 융화될 수 있는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리베라의 연구에서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사람은 40~70퍼센트에 달할 만큼 문화적 동질성 여부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죠. 더욱이 리베라는 '이 지원자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이 채용 결정자와 지원자 간의 개인적인 동질성 여부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여가 활동이나 취미가 얼마나 비슷한가와 관련된 질문도 자주 등장했고 지원자의 말하는 스타일 역시 중요한 변수였죠. 


논문에서 리베라는 채용 기준을 충분히 갖춘 지원자를 라크로스나 스쿼시와 같은 운동에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어느 법률회사의 관리자 이야기를 사례로 듭니다. 또한 18세기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지원자를 지나치게 '지성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떨어뜨린 사례도 있었죠. 리베라는 "여러 측면에서 채용을 결정하는 일이 마치 친구나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능력 있는 동료보다는 '같이 놀기에 좋은 친구'를 뽑으려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채용 결정자들이 문화적 동질성을 지원자의 역량만큼(혹은 그보다 더) 중요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원자가 조직의 일원이 될 때 다른 직원들과 불필요하게 경쟁하지 않고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며 융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조금 부족한 역량은 코칭이나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지만 문화적 동질성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믿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직원일수록 자신의 업무를 즐기고 동료들과 잘 지내며 회사에 오래 근속할 거라는 믿기 때문이죠.


이유야 어떻든 간에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역량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을 중요시할 때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 혹은 '나'와 문화적으로 잘맞는 사람을 뽑으면 신뢰와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슷한 문화적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업무 자체에 몰두하기 어려울뿐더러 집단사고의 위험도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채용 결정자들이 자신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지원자인가를 중요시하는 탓에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외면한다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죠.


여러분의 채용 관행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한다면 그게 과연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문화적 동질성이 더 중요한 직무가 있겠지만, 지원자의 취미가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내가 싫어하는 분야를 지원자가 좋아한다고 해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지원자를 평가절하하지 않는지 경계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Lauren A. Rivera(2012), Hiring as Cultural Matching: The Case of Elite Professional Service Firm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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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주면 '장땡'일까?   

2011. 11. 14. 09:00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난 1년 동안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사장은 직원들에게 그간의 수고를 치하하고 동시에 친목과 단결을 다지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그가 떠올린 방법은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동남아로 4박 5일 간의 워크숍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사장은 이런 결정이 직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비록 사장 앞에서 말은 안 했지만 '그냥 돈으로 주지, 뭐 하러 그런 데를 가느냐?'는 눈치가 역력히 느껴졌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말하던 어느 직원은 '거기까지 가서 지겨운 사장 얼굴을 또 봐야 하느냐?'라고 구시렁거리기도 했다.
 
사장은 아주 섭섭했다. 돈 쓰고도 욕먹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비록 직원들이 30명 남짓인 작은 회사였지만,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는 데 드는 비용이 꽤 많이 소요될 터였기 때문이다. 딴에는 큰 결정이었는데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직원들이 야속했다.  상심한 그는 사석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직원들에겐 이런 거 저런 거 필요 없어요. 돈이면 장땡이에요." 정말 그럴까? 직원들은 돈만 많이 주면 회사에 충성할까?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 생기는 오해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처럼 '직원들은 돈이면 다 좋아한다.'는 생각은 그 중에서 가장 풀기 힘든 오해 중 하나이다. '돈으로 주면 좋겠다.'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수용하면 '직원들은 돈이면 장땡이다'라고 생각할 만하지만, 사실 그렇게 내뱉는 직원들이 마음속에서 진짜로 갈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관심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업무 지시를 수행하느라 밤낮으로 일하면서 삶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 때 그 결핍감을 그나마 메울 생각으로 '돈으로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돈이야말로 배려나 관심을 기대할 수 없는 회사 내에서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그 가치가 쉽게 변치 않는 대용물이니까 말이다. 직원들이 짓는 냉소적인 표정의 이면을 봐야 한다. 
 
사장이 직원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돈으로만 보상한다면, '그냥 돈으로 달라'는 직원들의 냉소와 '직원들은 돈이면 장땡이다'란 사장의 편견이 악순환하면서 두 계층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앙금으로 남는다. 또한 다음의 사례처럼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의 '사회 규범'이 '시장 규범'으로 변질되고 말지도 모른다. 세바스티안 쿠베라는 실험경제학자는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그는 사람들이 높은 보수를 받으면 그만큼 열심히 일할 거라는 통념이 과연 옳은지 따져보고 싶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3시간 동안 도서 목록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광고를 내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쿠베가 광고에서 학생들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시간당 12유로였다. 그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학생들을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광고에서 약속한 금액대로 급여를 지급(3시간 동안 일하니 모두 36유로를 지급)하겠다고 말한 반면,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바로 학생들에게 7유로를 더 주기로 한 것이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일이 끝나면 7유로를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왜 당초 약속한 금액보다 20%나 더 많은 돈을 주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알렸다.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도 일을 수행하던 도중에 '뜻밖의 선물'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돈이 아니었다. 7유로에 해당하는 보온병을 역시 "감사의 표시로" 주기로 했다. 이 세 그룹의 학생들 중 어느 그룹이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을까? 뜻밖의 선물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7유로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두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성과를 보였다. 처음에만 반짝하다가 결국 생산성이 비슷해졌다. 20%나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생산성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 셈이다. 반면, 보온병이라는 선물을 받기로 한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다른 그룹보다 30%나 높은 생산성을 나타냈다. 게다가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3시간 내내 계속됐다고 한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쿠베의 실험이 주는 시사점은 비금전적인 보상이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뜻밖의 선물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7유로의 돈과 7유로짜리 보온병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활용가치가 클까? 당연히 7유로의 돈이 크다. 보온병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물이다.

하지만 보온병이란 선물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나를 고용하는 사람이 내게 선물을 하는 의도'를 선(善)하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가 현금보다는 훨씬 크다. 선물을 하기 위해 뭔가 고심을 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즉 보온병이 현금보다는 '왜 나에게 좋은 보상을 해주는가?'란 의문에 더 충분한 답을 주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연구 사례는 너무나 많다.
 
직원들의 성과를 인정할 때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회사로부터 배려 받고 있다', '내 성과가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다'란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주기에 돈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효과가 있어도 처음에만 '반짝'하고 만다. 그런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하려면 비금전적 보상을 함께 구사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복리후생제도는 '직원들은 돈이면 장땡이다'라는 경영진의 편견과 '그냥 돈으로 달라'는 직원들의 냉소가 악순환의 고리로 심화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비금전적 보상의 장치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성과 창출에 지친 직원들의 노고를 사심 없이 인정하고 그들의 고충과 관심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사회 규범'이 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좋은 복리후생제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복리후생제도가 정말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하려면 먼저 직원들이 이 제도를 충분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열쇠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메뉴의 가짓수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심리학자 쉬나 아이엔가는 시식코너에서 24가지의 잼을 보여줄 때와 6가지 잼을 보여줄 때 고객들이 실제로 얼마나 잼을 구입할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적은 가짓수를 본 고객들의 30퍼센트가 잼을 사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반면에 많은 종류의 잼을 본 고객들은 겨우 3퍼센트만이 구매했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선택되지 않는 것들이 함께 많아지기 마련이라서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이다. 메뉴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직원들에게 꼭 필요하고 나아가 업무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메뉴를 알차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직원들의 유형별로 '메뉴판'을 다르게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연령대에 따라 필요로 하는 메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미혼인 직원들은 주로 자기계발이나 오락 활동을 선호하고,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고참 직원들은 교육비 지원 등과 같이 자녀를 위한 메뉴를 많이 고른다. 따라서 동일한 메뉴판을 제시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연령대별로 맞춤 설계된 메뉴판을 제공한다면 "저는 혜택 받을 게 별로 없네요."라는 말이 덜 나올 것이고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또한, 연령대별로 메뉴판을 달리하는 조치는 너무나 많은 메뉴를 쳐다보면서 무엇을 고를지 막막해 하는 직원들을 도와주는 역할도 할 것이다.
 
셋째, 수혜자를 직원 개인에게 한정시키지 않는다. 여러 가지 복리후생 프로그램을 직원 자신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할 필요가 있을까? 직원의 직계존속에게 회사의 복리후생 메뉴를 공개하고 같이 즐기면 어떨까? 복리후생제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뿐더러 직원의 가족들까지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는 회사의 진정성을 보다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지출될 복리후생비라면 이런저런 제약을 두기보다는 완전히 써버리되 '잘 써버리는' 전략이 중요하다.
 
이제 서두에서 언급했던 어느 회사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자. 사장은 몇몇 직원들의 노골적인 불만을 무릅쓰고 전 직원 해외 워크숍을 진행하는 용기를 보였다. '그냥 돈으로 주지. 뭐 하러...'란 직원들의 냉소 때문에 괴로워하던 사장은 워크숍을 다녀온 이후에 그 고민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회사가 설립된 이후에 처음으로 직원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직원들도 회사가 자신들의 공을 인정하여 직원 모두와 함께 해외 워크숍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이처럼 태평양만큼이나 넓던 사장과 직원들 사이의 간극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나타내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물론 그 간극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가장 다행스러운 일은 사장이 '직원들은 돈이면 장땡이다'란 편견을 버린 것이었다. 이런 편견을 없애는 일이 복리후생제도가 맨 먼저 넘어야 할 커다란 도전일 것이다.

(* 본 칼럼은 ezwel.com 에 11월 4일자로 실렸습니다. 원문 보러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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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   

2011. 9. 21. 10:37



로체스터 대학이 심리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과 그의 동료들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교사 역할을 할 피실험자들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피실험자들(교사)이 가르쳐야 할 내용은 문제해결 방법이었죠. 데시는 피실험자들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주의사항을 자세히 일러 주고 문제해결 방법도 철저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데시는 교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그러고는 교사들에게 두 그룹 중 하나를 가르치게 했죠. 그런데 두 그룹 중 하나의 그룹을 맡은 교사들에게는 이러한 지시를 별도로 내렸습니다. "가르친 학생들이 나중에 실시할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도록 해 주세요." 성과를 높게 달성하라는 일종의 압박이었습니다. 다른 그룹을 맡은 교사에게는 별다른 지시를 따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수업의 과정은 모두 녹음되어 나중에 자세하게 분석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특이한 사항이 발견되었죠. 높은 점수를 받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교사들이 그렇지 않은 교사들에 비해 수업 중에 말하는 시간이 두 배가 더 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학생들이 발언할 시간을 덜 주고 자신이 더 많이 말함으로써 수업을 끌고 갔다는 뜻이죠.

사용하는 문장의 성격을 살펴보니, 명령어는 세 배 더 많이, 통제적인 문구(have to, should, must 등)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학생들 위에서 군림하며 통제를 가했다는 뜻이겠죠. 학생들의 자율성을 훼손하면서 말입니다.

이 간단한 실험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줍니다. 높은 성적을 달성케 하라는 지시나 강한 바람이 교사들로 하여금 더욱 통제적으로 더욱 독재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행동과 자유로운 사고력을 방해하고 압박해서, 결과적으로(그리고 장기적으로) 기대하는 높은 성적이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교사들이 이렇게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으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가해진다는 데시의 실험 결과를 기업이라는 조직에 투영시키면 어떨까요? 알다시피 관리자(팀장 이상)들에게는 MBO나 BSC 등으로 성과에 대한 압박이 가해집니다. 
성과주의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경영방식은 압박이 있어야 개인의 의지가 발현되고 그에 따라 조직의 성과가 높아지리란 기대감 위에 존재합니다. 데시의 실험은 관리자가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부하직원들을 통제하고 부하직원의 자율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결국 성과주의가 바라는 성과 극대화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또한 크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관리자들이 부하직원들의 성과 창출 과정을 조력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배려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하직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회사에 충성심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도구를 통해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함으로써 통제를 확산시키고 부하직원들의 자율성을 갉아 먹습니다. 결국 부하직원들의 학습능력과 직무역량을 저하시키죠.

이것 역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물론 관리자의 자율성(그리고 부하직원들의 자율성)과 위에서 아래로 가해지는 성과 압박이 균형을 잘 이루게 하면 좋겠죠. 하지만 균형을 잡기가 과연 쉬울까요?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입니다.

부하직원들의 자율성과 기여심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라 조직의 성과를 높이고 싶다면, 기계적이고 계량적인 도구를 사용한 성과주의 제도는 버려야 합니다. 혹자는 직원들의 자율성과 협력, 충성심 등과 같은 것들도 평가를 통해서 측정하고 독려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이런 생각을 가진 컨설턴트가 많아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직원들의 자율성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쉽지 않은 일이고, '이거다' 하는 확실한 방법도 없습니다. 어쩌면 확실한 방법이 있는 게(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상하죠. 하지만 조직의 자율성을 키우는 데에 성과주의는 답이 절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팀장의 스트레스가 부하직원을 망칩니다. 그리고 조직도 망칩니다.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마세요. ^^ 

(*참고도서 : 'Why we do what we do', Edward L. Deci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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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마라   

2011. 5. 18. 09:20



연봉제를 개선하기를 원하는 고객사를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직원들이 일을 잘하면 더 많은 연봉을 받기를 원한다. 남들보다 일을 잘 했는데도 똑같은 돈을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크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라 일 잘하는 사람에게 차등적으로 보상할 필요가 있다." 라는 말입니다. "어차피 인건비 예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 잘하는 직원을 우대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일 잘 하면 돈을 많이 주는 게 당연하다' 라며 이 말에 동의하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 이유는 '일 잘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기를 원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을 못했는데도 일 잘하는 사람과 같은 연봉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직원들은) 차등 보상이 강화된 연봉제를 좋아하리라고 간주할 겁니다. 연봉제 개선을 요구하는 고객사 담당자들도 이런 가정(assumption)을 가지고 있죠.



여기서 한 가지 따져볼 게 있습니다. 진짜로 일 잘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기를 원할까요? 당연히 그렇죠. 본인이 남들보다 뛰어난 기여를 했는데도 금전적이든 비금전적이든 돌아오는 보상이 같다면 힘이 빠지겠죠.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능력이 평균 이상이고 회사에 기여하는 바도 평균 이상이라고 여깁니다. 90%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상위 10%에 속한다고 믿습니다. 

바로 지난 번에 이야기한 바 있는 '워비곤 호수 효과' 때문이죠. 요즘 화제가 되는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을 잠시 본 적이 있는데, "설마 내가 7위는 아니겠지"란 인터뷰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워비곤 호수 효과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가 남들보다 못하다고 자평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워비곤 호수 효과를 염두에 둔다면 직원들이 "일 잘 하는 사람에게 높은 보상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남들보다 능력과 성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나에게' 높은 연봉을 주는 게 당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차등 보상 강화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보상을 차등화하면 당신이 남들보다 덜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냐?"라고 물어보면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괜찮다"라고 대답합니다. 진짜로 괜찮아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덜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등 보상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차등 보상을 진짜로 시행해보면 오히려 예전보다 '평가지표가 객관적이지 못하다. 평가가 불투명하다'는 식의 불만이 더욱 가중될 뿐입니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고 실패는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부하 직원들로부터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습니다. 자기들에게 나쁜 평가를 내렸기 때문에 자신이 남보다 적게 받는다며 모든 분노의 화살을 관리자들에게 한없이 쏘아댑니다.

관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차등 보상을 위해 부하직원들의 성과를 상대평가하는 일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모두 고생한 직원들인데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 괴롭고 미칠 지경이라는 말도 하죠. 그들 중에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연봉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폐해가 크기 때문에 제도를 객관적으로(대체 객관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고쳐야 한다는 딜레마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관리자들과 직원들 사이의 반목이 커지고 직원들 간의 협력은 깨지고 맙니다. 이러한 폐해는 일정 부분 '나는 능력이 평균 이상이니까 적게 보상 받을 리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차등 보상에 동조했기 때문에 나왔다고 봐야 옳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런 지적이 불편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이 그러함을 직시해야 합니다. 회사나 개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높은 연봉을 받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리고 남들이 '능력 있는' 자신보다 같거나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등 보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닐까요?

차등 보상을 도입한 350개 기업 중 83%가 회사 성과를 향상시키려는 본래의 목적을 매우 부분적으로 달성했거나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는 휴잇의 조사 결과(2004년)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워비곤 호수 효과에 현혹됐거나 남들 따라하다가 벤치마킹의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사부서에서 평가제도와 보상제도를 다시 뜯어 고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차등 보상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재설계되어 상황이 악순환에 빠집니다. 차등 보상이 회사 성과를 견인하는 데에는 미약한 수준이라서 더욱 높여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기 때문이죠.

인사 부서에서는 직원의 표면적인 의견만을 청취하고서 차등 보상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막을 줄도 알아야죠. 차등 보상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업의 특성상 직원들의 능력과 성과를 '개인 단위'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차등 보상이 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장치인지, 나아가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가 회사 성과 향상에 진짜로 기여하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그런 증거를 충분하게 확보한 후에 제도를 변화시켜야 하지, 직원들의 의견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회사가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사제도의 트렌드가 그렇다고 해서 인사제도를 변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제도 도입으로 인한 효과와 비용을 엄밀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차등 보상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피해를 준다는 판단이 든다면 직원들이 (표면적으로) 원해도, 경쟁사가 도입한다고 해도 꿋꿋이 본래의 인사 철학을 고수하는 것이 옳습니다. 

때로는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인사제도의 고객이지만, 고객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차등 보상을 좋아하고 금전적 보상의 차이가 동기를 부여하며 높은 연봉이 인재를 끌어들이고 그에 따라 회사 성과가 높아질 거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가정(assumption)입니다. 이 가정이 옳다는 증거는 매우 미약합니다. 가정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hard fact)에 근거하여 조직을 경영하는 일, 기업마다 업의 특성에 맞게 조직가치나 문화에 맞게 조직을 이끄는 일, 이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경영의 마인드입니다.

(*참고도서 : '증거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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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불만은 없앨 수 없다   

2011. 3. 17. 09:00



사라 솔닉크와 데이비드 헤멘웨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문장을 보여준 다음에 무엇을 선호하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골라 보기 바랍니다.

A : 당신의 신체적인 매력 점수는 6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균 4점이다.

B : 당신의 신체적인 매력 점수는 8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균 10점이다.

아마 여러분은 B보다는 A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을 것 같습니다. 솔닉크와 헤멘웨이의 실험에서도 약 75%의 사람들이 A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이 실험을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보니 무려 93%의 대학생들이 A를 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면 A보다는 B를 더 선호한다고 답해야 합니다. 자신의 매력 점수가 B에서 2점 더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B를 택해야겠죠. 그게 훨씬 유리하니까요. 헌데 왜 사람들은 A를 선호하는 걸까요?

그것은 '불평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동물입니다. '내가 남보다 무엇이 못한가'라는 능력의 비교뿐만 아니라'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죠. 진화적으로 우리의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원숭이(예전 포스팅 클릭!)들도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B보다 A를 선택하는 행동은 인간의 DNA에 뿌리 깊에 박혀있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지위보다 상대적인 지위에 더 신경을 씁니다. 본질적으로 질투가 심하다는 뜻이죠. 이를 간파한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쓰는 "소비의 수요의 많은 부분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증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쳇말로 지름신은 그 물건이 꼭 필요해서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물건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 우쭐대고 싶기 때문에 강림(?)한다는 말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인 트버스키와 위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A : 당신은 3만 5천 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3만 8천 달러를 받는 회사

B : 당신은 3만 3천 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을은 모두 3만 달러를 받는 회사

이 두 개의 회사가 있을 때 어느 쪽에 입사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B를 택했다고 합니다. A회사로 입사하면 2천 달러를 더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인 지위가 더 높은 B회사를 택합니다. 상대적 지위라는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 2천 달러의 돈을 기꺼이 쓰는 것이죠.

사람들이 절대적인 지위보다는 상대적인 지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지 인사제도를 운영할 때 항상 불만이 나옵니다. 불만이 없는 인사제도는 아마 전 지구를 통틀어 한군데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에 남들보다 승진이 늦고 남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 것을 수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 제도의 부조리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폄훼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낮은 평가를 받고 적은 보상을 받을 때 자신이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인사제도 자체가 허점 투성이라서 능력과 성과가 있는데도 잘못 평가 받는 사람들이 많으면 진짜로 심각한 문제라서 시급하게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만이 많다는 이유로 인사제도를 개선한다면 원칙을 잃고 헤매기 일쑤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합심하여 불만을 강하게 제기할 때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사제도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 회사의 인사제도는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 조각천을 기운 누더기와 같았죠.

상대적인 지위의 차이를 추구함으로써 성과 창출을 자극하는 인사제도는 직원들의 불만은 영원히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 인사제도 하에서는 직원 전체의 임금을 상향한다고 해서 불만이 줄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지위를 올려줘 봤자 상대적인 지위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인사제도 개선에 관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인 지위의 차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보상의 차등폭을 줄이고 직급의 단계를 줄이는 등 상대적인 차별을 도모하는 모든 제도를 약화시키는 거죠.

하지만 '완전 평등'의 개념으로 인사제도를 확립한다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일 못하는 사람과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충 일하거나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곳으로 떠나버리죠. 겉으로 보기엔 평등한 인사제도라 해도 이처럼 'Give에 대한 Take의 비율'을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까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무사안일, 공평무사와 같은 나쁜 문화를 타파하는 조직문화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평등주의 인사제도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하향평준화할 우려도 매우 큽니다.

두 번째 방향은 단순하게 불만의 크기로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판단하기보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불만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개선의 포인트를 잡는 것입니다. 어차피 발생할 불만이라면 Give에 대한 Take의 비율이 작은 사람의 목소리에 기울이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봐도 역량이 딸리고 성과가 저조한 사람들이 목소리는 훨씬 큰 경우를 심심찮게 봅니다. 인사제도는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입을 닫은 사람들의 소리없는 불만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상대적인 지위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라서 인간이 절대적인 지위 선호로 진화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사제도는 불만 제로의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합리적인 불만'을 수용함으로써 '합리적이지 않는 불만'의 최소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최선의 중용입니다.

(*참고논문 :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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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은 인사의 기초   

2011. 3. 11. 09:00



여러분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회사에 근무한다면 업적평가와 함께 역량평가를 받을 겁니다. 역량평가를 실시하려면 먼저 '역량모델'이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역량모델은 조직에서 하나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특성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선발, 교육, 평가, 승계계획(Succession Plan) 등을 위한 관리도구로 활용됩니다.

역량모델을 구축하는 방법, 즉 역량모델링은 많은 기업들이 이미 실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리라(여러분이 인사 담당자라면) 판단됩니다. 헌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역량모델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제기되는 오해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즉, 무엇이 역량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라는 오해
2)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 라는 오해
3)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오해



첫 번째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란 오해는 일반적으로 회사에 오래 근무한 관리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것인데, 직원들이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이미 다 안다는 직감에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그들은 정리되지는 않을 뿐이지 다 아는 것을 돈을 들이고 직원들의 시간을 뺏어가면서까지 ‘멋있게’ 정리하고 증명할 필요가 있냐는 반대 의사를 보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러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해보면, 몇몇 인사 담당자는 역량모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직무기술서를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의 근본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몇몇 소수(일반적으로 경영자나 인사부서)의 직감으로 역량모델을 ‘대충’ 만들어 낸 탓에 담당자 스스로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역량모델을 구축해 놓고도 그것을 선발, 평가, 교육 등 인사제도에 적절하게 반영하거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시용으로 만들어 낸 역량모델이니 인사 운영에 활용될 리 만무할 겁니다. 바로 이런 관행 때문에 역량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우리 조직의 역량모델이 무엇인지 잘 안다. 다만 활용하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오해와 저항에 대하여 인사부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역량모델링은 무엇이 우리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역량인지 밝히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수 차례의 인터뷰와 서베이와 관찰을 통해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을 명확히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역량모델을 선발, 교육, 평가 등에 적용하여 성과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하게 됐다면 역량모델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래 근무한 구성원일수록 과거의 사고방식, 기업환경 등에 기초하여 역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과 같은 구닥다리 신념에 근거한 역량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거의 신념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조직문화 구축을 가속하기 위해서라도 역량모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란 오해는 수시로 변화하는 기업 환경 때문에 어차피 다시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면 뭐하러 비용과 시간을 소요해 역량모델을 설계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업이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체질을 갖추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량모델은 특정한 상황에 일회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밝혀내어 구체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이 고객관계관리시스템(CRM)을 구축했거나 구축 중인데 앞으로 몇 년 후에 다른 종류의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역량모델은 ‘고객관리’를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실행하도록 기업 고유의 ‘철학’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역량모델이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이것은 기업의 경영철학이 매번 환경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세 번째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란 오해는, 조직 내에 운영관리자, 영업관리자, 생산관리자, 연구원 등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이를 역량모델이라는 하나의 공통모델로 묶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는 역량모델의 구성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역량모델은 일단 전사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을 먼저 고려하여 설계됩니다. 즉, 인사팀장이든 영업사원이든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행동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역량모델입니다. GE의 경우 ‘1등 아니면 2등’ 철학은 일부의 역할 및 직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지시봉'입니다.

앞서나가는 기업이라면 경영자에서 말단 사원을 꿰뚫는 서너개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역할 또는 직무별로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오해에서 말하는 역할 및 직무별 다양성은 ‘역량의 개별적 구성’이 아니라 ‘역량개발방안의 차별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한 역량모델은 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이를 공통역량이라 함) 뿐만 아니라, 각 역할과 직무에 따라 특수하게 요구되는 개별역량(이를 직무역량이라 함)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세 번째 오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역량모델을 갖춘다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량모델을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량모델은 인사제도의 기초공사에 해당합니다. 기초공사 없이 그 위에 인사제도를 쌓아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사의 비전에 직원들의 행동과 사고를 정렬시키는 도구인 역량모델을 다시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회사는 이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직원들은 저 산으로 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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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힘들고 불편한 이유   

2011. 1. 4. 09:00



벌써 인사평가가 끝난 회사도 있고 이제 평가를 시작하는 회사도 있을 겁니다. 평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피평가자(부하직원)들의 불만 중 하나는 평가자(상사)가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 없이 주관적인 관점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의를 제기할 겨를 없이 평가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도 불만을 키우는 주범이죠.

이런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평가 결과를 한 자리에 모여 '합의'하는 절차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절차를 진행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가 아주 어색해 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에게 자신의 평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피평가자는 자기평가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죠.



합의하는 자리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이 오갈 수 있고, 피평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가가 관대해질 수 있으며, 합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평가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되어버린다는, 새로운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잘 해보자는 제도가 구성원들의 불화를 야기하는 불씨라고 공격 받기도 하죠. 그래서 평가 합의 절차는 없던 것으로 하고 과거의 '밀실 평가'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평가 결과를 합의하고 타협하는 걸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합의를 어려워하는 걸까요?

에릭 와이너는 "서구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 버리려고 애쓴다"고 말합니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탑승자 각각이 자신에 맞는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실내의 적정온도도 서로 타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각자 알아서 조절하도록 만든 것이죠. 주위를 살펴보면 점차 이런 물건들이 많아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이 강조되면서 하나의 물건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취향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릭 와이너는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놓고 타협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될까?"라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타협은 기술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한다"고 덧붙입니다. 개인화된 편안한 생활 뒤에 숨은 비용이 생각보다 큼을 경고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가 합의 절차가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새로운 불만을 없애려고 '평가지표'를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제도 개선의 방향을 잡는 것, 바로 이것이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내는 평가지표만 잘 구축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나 평가 결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미시적으로 분석해서 '개인화'된 평가지표를 만들면 타협과 합의와 같이 불편한 과정 없이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화된 물건들과 서비스가 넘쳐나면서 평가제도도 그렇게 개인화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된 건 아닐까요?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타협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해서 제도가 개인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타협과 합의의 기술을 잊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개인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타협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절차로서 매우 소중한 기술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해서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용차에 탄 서너 명의 승객이 "조금 더우니 온도를 낮추자"라는 아주 간단한 타협의 필요조차 없도록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설치하는 비용,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클지 모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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