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Vision)이 있어야 하는 이유   

2008. 4. 18. 13:59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 전쟁 중에 하노이 힐턴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미국의 장교 짐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을 딴 말이다. 그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돼 있으면서 4년간의 독방 생활과 수십 차례의 모진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전쟁포로를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그곳에서 무의미한 선언에 불과했다. 포로로서의 권리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정해진 석방 날짜 없이 끝도 모를 전쟁을 이겨내야 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포로 생활 중에 숨을 거뒀지만, 그는 미국의 장성으로서는 유일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생환의 비밀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믿음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풀려날 희망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으며, 결국에는 빠져나와서 나중에 그 끔찍한 경험을 내 생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낙관주의자들은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가 오면 나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리면 부활절이 오면 나갈 수 있겠지, 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상심하다가 차례차례 죽어갔습니다.”

비전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우리는 보통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좋은 것을 상상하면서 지금의 고난을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 잘 될 거야. 좋은 날이 올 거야.” 라며 위로하지만 결국 이러한 말은 오히려 현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변치 않을 운명으로 굳어 버리게 만들고 현실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영원히 꺾게 만들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 좋은 날은 오지 않는다. 스톡데일이 참담한 상황을 이기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근거 없는 희망을 버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단기적인 목표를 끊임없이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 낸 것에 있다. 

이처럼 비전이란 멋들어진 몇 마디의 문구로 꾸민 장밋빛 미래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낙관주의로 비전을 치장해서는 안 된다. 스톡데일의 사례처럼, 올바른 비전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으로 달성이 가능한 미래를 설정하도록 한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비전은 원칙을 제시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애 동안 무수한 난관에 접한다. 비전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그러한 난관에 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난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기 위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경기 추락으로 매출과 이익이 급감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우리 회사의 비전 선언서를 들춰보라. 가격을 낮춰라, 공급업체를 바꿔라, 등등 당장에 실행할 묘책은 분명 그곳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에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준수해 가야 할 원칙이 명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델타 항공의 비전은 ‘세계인의 항공사로 선택 받는다.’ 라는 아주 짧은 말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함의되어 있다. ‘세계인의...’ 라는 문구에는 적극적인 신규노선의 개척과 타 항공사와의 제휴 영업이라는 사업의 방향이, ‘항공사로...’ 에는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항공 수송이라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는 의지가, ‘선택 받는다...’ 에는 고객, 주주, 사원들에게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탁월한 서비스, 높은 투자수익, 성과지향의 근무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숨어 있는 것이다.

비전은 행동에 몰입하도록 한다. ‘쇼생크 탈출’ 이란 영화에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 가석방되어 나올 감방 동료에게 돌 밑에 숨겨 둔 쪽지로 말했듯, 물론 ‘희망이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희망이 감동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탈출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매일 실천에 옮겼다는 것에 있다. 그의 희망은 본인의 억울함이 알려져 언젠가는 풀려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결코 아니었다.

영화의 압권은 속임수를 당한 교도소장이 반쯤 닳아 없어진 숟가락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부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희망이란 매일매일 조금씩 숟가락으로 벽을 파내는 것이었다. 비전의 힘은 우리를 경쟁자로부터 구별 짓게 하는 맨 밑바닥의 동력, 바로 숟가락으로 벽을 파도록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때때로 비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길을 갈 때 가장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손에 들고 있는 랜턴일까? 아니다. 그것은 겨우 발밑만 비춰줄 뿐이다. 가장 반갑고 고마운 것은 바로 저 멀리 보이는 민가의 불빛이다. 비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절실한 것이다. 절망을 추스르고 어둠 속을 헤쳐가게 하여, 결국은 우리를 살리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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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책이 한동안 서점가를 장악했었다. 책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칭찬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기업과 단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칭찬의 긍정적인 효과에 기업들이 눈을 떴다는 신호이다. 펜텍계열은 칭찬릴레이를 통해 선정된 직원들을 사보나 인트라넷에 소개하고 포상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몇 년 전 방영됐던 TV프로그램인 ‘칭찬합시다’를 연상시킨다.

LG전자는 동료에 대한 칭찬의 말을 쪽지에 적어 ‘칭찬나무’에 걸어 두면 한 달에 한 번 수확하여 칭찬받은 직원에게 사내 매점 이용권을 준다. 또한 칭찬하고 싶은 사람에게 즉석에서 ‘칭찬쿠폰’을 발행하도록 하여 가장 많이 쿠폰을 모은 직원에게 포상을 하기도 한다. 이 기업들은 이와 같은 노력들이 회사의 성과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칭찬문화를 뿌리 내리려는 노력이 여러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으나, 공통적인 특징은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고 칭찬 받는 것에 어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 때문인 것으로, 기업으로서는 칭찬문화를 북돋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칭찬릴레이는 한계가 분명 있다. 기존의 우수사원 포상과 같은 아니냐며 오해될 수 있다.

직원들로서는 그것과 칭찬이벤트와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칭찬이벤트에 의해 선정된 자야 좋겠지만 해당되지 않은 다수의 직원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껴 이벤트에 열을 올리는 회사 측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볼 위험이 있다.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도 인트라넷 상에서 칭찬릴레이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칭찬릴레이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특정부문에 몰려 있었다. 알고 보니 칭찬릴레이를 처음 고안해 운영한 부서가 속한 부문이었다. 좋아보자고 한 일이 주최측의 농간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등의 냉소만 증폭시키는 꼴이 됐다.

칭찬이벤트는 칭찬문화의 씨를 퍼뜨리는 데 일조할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이처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칭찬문화를 뿌리내리고 그것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기업 운영의 튼튼한 허리인 관리자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

관리자들이 칭찬을 자주 하도록 유도하려면 칭찬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칭찬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작은 목표’를 수시로 던져줌으로써 가능하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걸어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몸을 뒤집었을 때, 무언가를 잡고 일어설 때, 드디어 제 힘으로 한 발씩 걸음을 뗄 때 부모들은 환호하고 격려한다.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직원이 1년 동안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1년 내내 두고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잘게 나누어 직원에게 올바르게 인지시키고 작은 목표 하나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칭찬의 말로 격려해주고 수시로 피드백해야 한다.

보통 MBO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목표관리제도를 연말이 가서야 직원의 서열을 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이처럼 칭찬의 도구로 수시 활용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 목표를 상세하고 잘게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관리자의 주요역할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채용한 뒤 무작정 목표를 부여한 다음에 방치하곤 한다. 그리고는 일을 잘 마무리 짓지 못하면 질책부터 해대기 일쑤다. 어쩌다 일을 잘 수행한다 해도 칭찬은 미룬 채 잘못은 없는지 먼저 살핀다. 켄 블랜차드는 이를 ‘놔뒀다 공격하기’라는 말로 부르며 관리자가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항목으로 이야기한다.

칭찬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하라. 정보통신업체의 P부장은 평소 칭찬을 잘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칭찬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이 문제였다. 누구나 봐도 일을 못하는 직원도 그에게서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칭찬을 듣는 사람은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칭찬하는 걸까?’ 의심을 하게 되고 입에 발린 소리라며 그를 비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평범한 일은 칭찬은 물론 용납해서도 안 된다.’ 라고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칭찬은 진정성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빛을 발한다.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무관심이 아닐까? 잘한 점은 북돋아주고 잘못한 점이 있다면 따끔하게 질책하는 것이 진정한 칭찬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칭찬이었다. 햇병아리 시절,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내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상사는 나를 믿고 칭찬해 주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당장 컨설팅을 그만뒀을지도 몰랐다. 칭찬 한마디에 개인의 삶이 바뀌고 결국은 회사의 성쇠가 좌우될 수 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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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또 시작이다!   

2008. 2. 21. 21:09
요새는 경영 이론이 너무나 많아서 컨설턴트인 나조차도 무슨 이론이 업계를 떠돌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너무나 많은 탓인지, 경영 이론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다르게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다. 기업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치되고 통합된 하나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경영자들은 수많은 경영 이론들이 자기모순에 빠져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무척 헷갈린다. 귀가 얇은, 그래서 나름의 경영철학이 없는 경영자는 유행에 휩쓸리기 쉽다. 언제는 속도를 강조하더니만, 이제는 내실을 기하라며 소리친다.

동시에 여러 개의 경영혁신 프로그램들로 직원들을 괴롭히며 경영자가 줏대 없이 여러 경영 이론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때, 직원들은 이렇게 외친다. "엎드려! 또 시작이다! (Bend over! Here it comes again =  BOHICA)

'권한위임(Empowerment)'이 조직성과 향상의 마술지팡이로 취급 받는 모양인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과 향상의 전부가 아님에도 컨설턴트들은 녹음기처럼 이 말을 떠들고 다닌다.

권한위임은 말은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면 동기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일하고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권한위임은 직원 입장에서 볼 때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경영자(CEO)가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바로 "네가 마음껏 해보라.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각오해야 해!"라는 의미다.

권한위임은 CEO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직원들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성과를 못내는 것이 아니다. 성과를 내는 방법을 몰라서 못내는 것이다.

권한위임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권한을 위임 받을 생각이 없는 직원에게 권한만 떡 하니 안겨준다면, 그 직원은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막중한 압박감에 시달릴 뿐이다. 그래서 "엎드려! 또 시작이다!"라고 외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할 생각만 골몰할지도 모른다.

(조안 시울라의 책 '일의 발견'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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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 속해 있는 개인은 지위 상승의 꿈을 꾼다. 그것은 먼 조상인 원숭이 시절부터 우리에게 이어져 온 본능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리더를 꿈꾼다. 작은 사회건 큰 사회건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가지려고 애쓴다. 어떻게 하면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을까? 카리스마를 기르기 위한 몇가지 원칙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1. 단호하게 결정을 내려라.
최종 결정은 언제나 리더가 내려야 한다. 그래서 외로운 자리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망설이지 않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사람들은 '옳은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는 지도자보다 '그릇된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는 지도자를 더 좋아한다. 결정의 질보다는 결정의 단호함에 끌린다는 말이다. '박정희 향수'가 아직까지 유통기한을 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잘못을 저지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식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2. 권위를 상징하는 자세를 지녀라.
거드름을 피우라는 말이 아니다. 리더는 절대 허리를 구부정하지 않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단호한 자세로 걸어라. 불안하거나 우유부단한 표정은 절대 드러내지 마라. 그것은 부하의 태도이지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항상 느긋한 태도를 지니도록 노력하라. 혼잣말을 하며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면 애초에 카리스마는 기대하지 마라. 자세 잡기가 안 되면 카리스마는 결코 내것이 되지 않는다.

3. 바로 아래 부하에게 힘을 실어주라.
직속부하는 리더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자이다. 그들에게 적절히 보상하고 그들의 힘을 키워라. 그래야 아무도 리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을 감히 갖지 못한다. 직속부하를 못 살게 구는 리더는 얼마 못 가서 그들의 집단 모의에 의해 축출되기 쉽다. 물론 직속부하에게 과도한 권한을 이양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들은 넘버 3로 넘버 2를 견제토록 한다.

4. 약자에게 선을 행하라.
카리스마가 빛이 나려면 약자에게 한없이 약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리더가 그들을 사랑하고 보살핀다는 감정을 갖도록 만들라. 조선의 카리스마, 영조는 중신(강자)들에게는 엄했으나 백성(약자)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웠다. 가장 나쁜 리더는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자다. 그런 자는 머지 않아 쫓겨나거나 물러난 뒤에도 욕을 먹는다.

5. 확신을 보여라.
리더는 집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집을 웬만해서 꺾지 말아야 한다. 강한 확신을 보이라는 말이다. 이명박의 장점(?)은 무식할 정도로 자신의 확신을 끝까지 밀고 나갈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고 그걸 기어이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 방향이 옳은지 틀린지는 2차적인 문제이다(난 그가 싫다. 매우.). 카리스마는 확신과 저돌적인 실천에 의해 뻗어나간다.

6. 주기적으로 집단을 흔들어라.
평화로운 순간에도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집단이 건강한 수준의 긴장감을 갖도록 만들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이걸 잘 한다. 회사가 잘 나간다 싶으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비상경영을 선언한다. 상시 비상경영 체제는 카리스마가 꾸준히 유지되도록 만든다. 물러난다고 선포했지만 막후에서 언제나 영향을 미칠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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