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2008년 3월에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실렸습니다. 그 시점에서 쓰여진 글이므로 세부 상황이 현재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AIG의 구제금융 요청 등과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에 발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세계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G7 재무장관회의에서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손실이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었고,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문차우는 한술 더떠 그 피해액이 1조 달러를 훨씬 상회할 거라는 비관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여러 경제예측기관들은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각종 전망을 내리고 있지만 의견이 서로 다르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으킨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은 복잡한 자산 유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연쇄적인 파생금융상품들과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잠재적 리스크가 매우 큰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마치 북경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멕시코만에 허리케인을 일으키듯이, 서브프라임 사태에 의해 촉발된 경제 위기의 연쇄반응은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만으로 세계의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거나 반대로 별 일 없었던 듯이 모든 문제를 깨끗이 일소할 수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해, 세계의 경제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 있는, 상당히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 봉착해 있다.

상황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항상 정확한 예측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예측은 항상 틀리며, 그것은 언제나 진리다. 따라서 우리는 예측하려는 만용을 버리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 서브프라임이 미래의 경제의 어떤 부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는가? 둘째, 불확실한 요소들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셋째, 그렇다면 불확실한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일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 프로세스를 ‘시나리오 플래닝’이라 한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야기할 세계 경제의 불확실한 요인를 찾아낸 이후(첫번째 질문)에, 각 요인들이 취하게 될 미래 사건의 조합인 시나리오를 규명하고(두번째 질문), 기업이 각 시나리오별로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는(세번째 질문)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다음과 같이 5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원래는 7단계이나, 여기서는 축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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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서는 외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한 다음 미국과 유럽에 내다 파는 전형적인 수출기업 A사를 가정하여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전개해 보려한다.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 대안을 결정하고 이와 동시에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숙지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바란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첫 번째 단계는 ‘핵심이슈’를 정의하는 일이다. 핵심이슈 파악이란, 시나리오 플래닝에 의해서 우리 회사의 어떠한 문제를 의사결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막연하게 그려보는 것은 경제예측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행위일는지 모르지만 기업의 경영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해 놓은 다음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우리 회사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는 것이 실용적 접근이다.

여러분의 기업이 수출기업인 A사의 상황과 같다면, 서브프라임 사태 하에서 전략적으로 의사결정 해야 할 핵심이슈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커버리지를 확산해야 하는지, 기존사업을 축소하고 신규사업으로 진출하는 전략이 옳은 것인지, 혹은 경쟁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야 하는지 등이 모두 만만치 않은 핵심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본 칼럼에서는 수출기업에 있어 비교적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의사결정 사안인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의 문제를 핵심이슈로 선정하고자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두 번째 단계는 변화동인(Change Driver)을 찾는 과정이다. 변화 동인이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가정할 수 있는 변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자재 가격’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안을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변화동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막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미국의 FRB는 급격하게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매력을 잃어 금, 곡물, 철강 등의 실물시장으로 이탈하도록 촉진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 때문에 원자재 사재기 등의 투기 수요가 몰려들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화의 약세와 바이오원료 생산의 확대도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값 급등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에 비해 투기적 성격이 강한 실물시장의 리스크가 만만치 않고 수익률 또한 매력적이지 않다면 실물시장으로의 ‘골드 러쉬’는 단지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의 향후 추이는 시나리오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화동인이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민간소비가 위축될 것인지, 아니면 견고하게 유지될지의 여부도 중요한 변화 동인 중 하나다. 상식적으로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소비 수준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FRB의 금리 인하 정책으로 인한 효과, 미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가구당 평균 1000~1500 달러 정도의 세금 환급 효과 등이 가처분소득의 하락분을 상쇄한다면, 민간소비 수준은 견고하게 유지될 거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 12월 말 대비 2008년 1월의 민간부문 고용이 3만 7천명에서 13만명으로 크게 증가함으로써 서브프라임 사태가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 끼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 민간소비 수준이 둔화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인 상태, 즉 불확실성이 큰 변화 동인을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여러 경제전망기관에서 서로 반대로 내놓은 의견을 종합한 6가지 변화동인들이다.


No.

변화 동인

변화 옵션

1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

성공

실패

2

원자재 가격 상승

안정

급등

3

중국/인도의 경제 성장

성장

둔화 또는 하락

4

중국의 긴축정책 고수

고수

폐지

5

민간소비 수준 유지

유지

둔화 또는 하락

6

민간기업의 투자수준 유지

유지 또는 확대

둔화


어느 단계보다도 변화동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위주로 내놓는 기관이 있는 반면,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해소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건전성 제고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양립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곳의 전망과 예측에 경도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원(source)으로부터 정보를 탐색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동인 중에서 영향도가 큰 것들을 '핵심변화동인(Key Change Driver)'이라 한다. 아래의 Cross Impact 분석을 활용하면 핵심변화동인을 가려낼 수 있다. 변화동인을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배열한 다음, 가로축의 변화동인이 세로축에 변화동인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그 영향은 강화시키는 방향인지 약화시키는 방향인지를 평가하여 숫자를 기입한다. 행과 열의 ‘절대값 합’을 구해 높은 값을 얻는 것이 핵심변화동인이다. (영향도 평가 결과는 필자의 판단에 따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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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축이 세로축을  2: 매우 강화  1:강화  0:관련없음   -1:약화   -2:매우 약화)

하나만 예를 든다면,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민간기업의 투자를 매우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그 기업이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면 재료비의 상승 부담 때문에 투자확대 전략보다는 비용 절감 전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 영향도는 ‘-2’가 된다.

위 표에서 가장 영향도가 큰 동인은 1번과 2번이고, 의존도가 큰 동인은 6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다시 아래의 매트릭스로 나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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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우하단에 1번과 2번이 매핑되었는데, 이 두 개의 변화동인이 바로 핵심변화동인이며 시나리오의 주축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좌상단의 변화동인은 핵심변화동인에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좌하단의 변화동인인 4번과 5번은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에서 무시해도 좋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세 번째 단계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시나리오의 개수는 핵심변화동인의 개수에 의해 결정된다. 만일 핵심변화동인이 4개라면, 2의 4제곱인 16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우리의 예시에서 핵심변화동인이 2개가 도출되었으므로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4가지가 된다.


시나리오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한다

실패한다

원자재 가격

안정된다

scenario 1

scenario 2

급등한다

scenario 3

scenario 4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의 양상을 단 4가지의 시나리오로 압축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시나리오는 오히려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혼동만을 가중시킨다. 미래학자들의 경험법칙(Rule of Thumb)에 의하면 효과적인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4~8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적절하다고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4번째 단계는 ‘시나리오 쓰기(Scenario Writing)이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과정에서 습득한 여러 재료들을 가지고 일종의 소설을 써보는 단계다. 이렇게 가상의 ’드라마‘를 써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좀더 정교화시킬 수 있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시나리오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이 단계의 예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시나리오 플래닝의 마지막 과정으로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단계다. 앞에서 수출회사 A사의 핵심이슈가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로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전략 대안은 바로 신규설비를 구축하는 ‘방법’에 관련된 것들이 된다. 신규설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련된 전략대안은 여러 관점들의 조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관점의 숫자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무수히 많을 수 있으나, 전략의 초점을 명확히 하려면 A사가 전략을 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적용하는 관점이나 앞으로 중요하게 적용해야 할 관점을 추려내어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실제로 신규설비 구축의 전략대안 도출은 매우 집중적인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과정이지만, 본 예시에서는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하여, ‘구축 시점’과 ‘구축 규모’만을 고려하기로 한다. 아래는 이 두 가지 관점에 의해 전략대안을 도출한 결과이다. 신규설비를 구축하지 않는 것도 대안이기 때문에 전략대안은 모두 5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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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나리오와 각 전략대안 간의 적합성을 판단해야 한다. 먼저 아래와 같은 표를 사용하여 적합성을 평가해 보라.(평가 점수는 필자의 의견임) 이때 적합성은 시나리오별로 예상되는 리스크와 성과의 크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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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Scenario 4(미국 금리인하책 실패 & 원자재 가격 급등) 하에서는 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로 생산설비를 즉시 확충한다는 대안은 자금조달과 운용에 있어 리스크가 큰 전략 대안이며 증산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기존 생산라인을 활용해 탄력적으로 증산할 것을 검토하거나, 아니면 아예 증설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 대안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각 시나리오별로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이 무엇인지 밝혀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A사가 채택해야 할 '오직 하나의' 전략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각 시나리오 중 가장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 시나리오에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을 최적대안으로 채택하면 된다. 만일 현시점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모든 시나리오에서 언제나 높은 적합성(3점)을 보이는 대안을 찾는다. 이런 대안을 절대우위전략이라고 부르는데, 위의 예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대안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세번째 질문을 던져본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예시에서는 미국의 금리인하책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손실 회복에 실패하고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여 일명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상황이 전개되는 Scenario 4가 최악의 시나리오다. Scenario 4에 3점을 기록한 전략대안은 대안4와 대안5인데, 나머지 시나리오에서도 동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경영진은 이 두 개의 대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만일 A사가 위험을 감수하며 높은 성과를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지녔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우리의 예시에서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Scenario 1이 최상의 시나리오이며 이 시나리오에서 최적의 전략대안은 바로 대안1이 된다.

지금까지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사용하여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전략대안을 각 시나리오에 대응시키는 과정과 방법을 알아보았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수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예측은 항상 틀린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초점에 맞추고 여러 시나리오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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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각각 100개의 구슬이 담긴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첫 번째 항아리에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각각 50개씩 들어있고, 두 번째 항아리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몇 개씩 섞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자. 만일 검은 구슬을 뽑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어떤 사람이 제안해 온다면, 당신은 두 개의 항아리 중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대니얼 엘스버그가 수행한 이 실험에서 참가자의 대부분은 검은 구슬이 뽑힐 확률이 50%로 정해져 있는 첫 번째 항아리를 선택했다. 두 번째 항아리가 검은 구술이 붉은 구슬보다 더 많이 들어 있을 가능성을 있음에도 확률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은 한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검은 구슬이 몇 개 들어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두 번째 항아리를 배제하고 확률이 확실하게 제시된 첫 번째 항아리를 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진화의 오랜 기간 동안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실성을 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체득했고 그런 학습 결과가 유전자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요즘 유가와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를 깨뜨리고 영변의 핵 봉인을 해체하는 등 기업을 둘러싼 거시환경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매순간 방향타를 바꾸는 불확실성 하에 놓여 있고, 경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환경의 예측 불가능성을 구성원들에게 인지시키고 그것을 잘 다루지 못했을 때 온전히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조직의 변화 대열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허리끈 졸라매고 열심히 뛰어보자’라는 캠페인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써먹은 탓에 더 이상 구성원들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조직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강압적인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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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가득 메운 변화동인들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활용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 어떤 대학에서 B형 간염이 유행했을 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검진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검진을 받고 나온 학생들에게 B형 간염의 증상이 어떤지 설명해 주었는데,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간이 충혈되고 신경체계가 왜곡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설명한 반면, b그룹에게는 근육통, 무기력, 악성 두통처럼 쉽게 증상을 상상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3주 후에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하자, 머리 속에 증상이 쉽게 그려지는 설명을 들었던 b그룹의 학생들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을 높게 추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은 위기를 확실하게 머리 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구성원들을 변화로 이끌려면 중후장대한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발화시키는 힘은 9.11 테러 같은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이면서 생생한 이야기로부터 나온다.

불확실성이 커가는 요즘,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 은 전략기법이라기보다 변화에 불을 댕기고 변화 과정을 관리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먹구름 속에 감춰진 미래를 펼쳐 보이고 미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고 대응을 위해 조직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위기 대응을 위해 조직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주문하고 싶다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전통적 방식의 조직관리는 곤란하다. 미래의 위험과 기회가 확실하게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듦으로써 변화가 아래에서 위로 번지도록 유도할 때 성장의 엔진이 활활 타오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 논문)
Imagining Can Heighten or Lower the Perceived Likelihood of Contracting a Diseas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9월 12일자로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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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5. 시나리오 쓰기
이제 여러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가 됐다. 그림 2의 시나리오 골격과 트렌드에 여러분의 상상력을 더하여 미래를 묘사하는 한 편의 소설을 써야 한다. 연말이 되면 내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류의 책들 중 하나만 펼치면 다음과 같은 형식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전자 경리팀의 중견사원 김네오 대리. 행여 지각할까 택시를 탔다. 출근길 교통체증 때문에 요금이 많이 나왔다. 김씨는 글로브박스쪽에 설치된 판독기에 휴대폰을 대고 “결제”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통해 신원확인과 결제가 이루어졌다. … (중략)
S백화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디스플레이가 김대리를 맞는다. 이어 김대리가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소개해 준다. 그는 바로 휴대폰을 통해 자신의 약혼녀에게 예쁜 코트를 하나 선물했다. (Source : ‘2010 대한민국 트렌드’, LG경제연구원)

위의 글처럼 가상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드라마를 쓰듯 미래를 묘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2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시나리오가 의미한 바를 구성원들에게 효과적이면서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상당히 위협이 되는 시나리오라면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한 곳으로 역량을 집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때 이와 같은 ‘가상의 소설’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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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미래를 드라마로 그려보는 과정 중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 가져다 주는 이득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회사가 만든 최초의 시나리오에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은 김치냉장고를 사게 될 것인가에 관련된 핵심변화요인만 담겨 있다고 해 보자.

그런데, 시나리오 재료를 가지고 미래를 묘사하다 보면 김치냉장고의 판매량 증가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상상을 통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로 자연스레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김치냉장고가 김치 저장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든지, 김치냉장고의 특정 기능과 디자인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라든지 등에 대해 힌트를 얻게 된다.

만약 회사 내부에 많이 쓰이는 보고서 형식에 익숙하거나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시나리오 쓰기’는 꽤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시나리오플래닝을 실시하려면 회사 내부의 여러 부문으로부터 핵심 브레인을 참여시키되, 개인별 강점역량이 다양하게 포함되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나리오플래닝팀에는 정보수집이 뛰어난 사람, 수집된 정보의 해석에 능한 사람, 논리적인 사고가 강한 사람은 물론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글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도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권한다.

여담인데, 필자가 워크샵에서 참여자들에게 자신들이 수행하는 직무의 역할과 책임을 2~3줄의 문장으로 써 달라고 요청하면 매우 어려워하거나 ‘단답형’ 또는 ‘명사형’을 고집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른 바 ‘불릿(Bullet)형식의 보고서’는 보기에는 간결해 보일지 모르지만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기엔 무리다. 이 글을 읽는 CEO가 창의력과 상상력 넘치는 조직 분위기를 원한다면 모든 직원들에게 ‘보고서 작성 교육’ 말고 ‘소설쓰기’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시나리오를 도출하여 상상으로 가득 찬 미래를 묘사했다면, 이제 대응전략(Step 6)을 수립할 때이다.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과정 또한 세부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음 회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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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세계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유가와 원자재값이 크게 요동치는 등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많은 기업들은 다가올 미래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대다수의 경영자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할수록 정교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확실성을 보장 받으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시스템이 제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예측은 항상 틀린다’는 진리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의 눈이 그 이유를 비유적으로 일깨운다. 인간의 눈은 빛과 형태를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신체기관이지만, 눈의 모든 영역이 다 그렇지는 않다. 눈의 가운데 부분은 물체의 색과 세부 형태를 잘 인식하는 시력을 지녔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체에만 국한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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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눈의 가장자리는 물체의 색과 형태를 제대로 감별하지 못하지만, 먼 곳에 있는 희미하고 분산된 빛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운전을 할 때 앞을 주시하면서도 양 옆에서 끼어드는 사물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눈이 영역별로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 기술은 고사하고 필름 사진기조차 없었던 과거에 천문학자들은 오로지 눈과 광학망원경만을 통해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해야 했다. 그들은 주로 멀리 떨어진 성운과 혜성을 관측했는데, 그것들이 내는 빛이 매우 희미하기 때문에 잘 보려고 가운데로 초점을 모으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앞에서 말한 눈의 특성 때문이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보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간접 관측법을 쓰면 눈의 가장자리 부분을 통해 그 별의 색깔과 형태를 감지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대상이 희미할수록 초점을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하게 보이는 미래를 복잡한 수치를 써서 예측할수록 미래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예측은 눈의 가운데 부분처럼 1∼2년의 가까운 미래는 잘 맞힐지 몰라도 기업 흥망의 열쇠를 쥐고 있는 먼 미래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예측 기법의 대부분은 과거의 패턴을 미래에 투영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요즘과 같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환경에서 과거와 미래가 구조적으로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앙코르와트로 여행을 갔을 때, 필자는 아직 땅거미가 걷히지 않은 새벽 5시에 사원을 배경으로 떠오를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붉은 해가 희미한 빛을 내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관광객들은 환호하며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팡팡 터졌을 때 필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일출을 찍겠다고 플래시를 터트려봤자 앞사람의 뒤통수만 찍히고 하늘은 까맣게 타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예측은 이와 같다. 플래시의 빛이 강하지만 멀리 가지 못하듯, 예측은 논리적으로 강력하지만 미래를 그려내는 데엔 힘을 못 쓴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미래를 보다 잘 감지하려면, 과거의 천문학자들이 일부러 물체를 똑바로 보지 않는 간접 관측법을 사용했듯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관점의 경영기법을 ‘시나리오 플래닝’이라 한다. 불확실성을 기초로 의미 있는 시나리오들을 도출하고 시나리오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전략 기법인 시나리오 플래닝은 요즘과 같이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점에 비로소 국내 대기업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예측의 한계와 오류를 절감했기 때문이리라.

1970년 후반, 로열더치쉘이 단숨에 업계의 리더로 뛰어오른 이유는 시장을 잘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정유회사가 가진 교섭력이 OPEC 설립을 기점으로 산유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미리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다른 정유사가 과거 데이터로 예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무조건 투자를 늘려갈 때 로열더치쉘은 숨고르기를 하며 힘을 비축했다.

마래가 불확실할수록 불확실함을 인정하라.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미래의 가능성을 관측하라. 그것이 불안하게 반짝이는 희미한 미래를 보다 잘 관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8월 1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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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4. 시나리오 도출
Step 3에서 파악된 핵심환경요인은 앞으로의 미래상을 변화시키는 주요 동인(Driver)라 할 수 있다. 이 핵심변화요인들이 바로 시나리오의 재료가 될 수 있는 후보이다. 시나리오를 도출하기 전에, 파악된 핵심변화요인별로 몇 가지 전략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각 변화동인별 발생가능성은 어떠하며 불확실한 요소는 무엇인가? 둘째, 각 변화동인이 상호간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셋째, 의사결정요소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변화동인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어떤 변화동인이 미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시나리오플래닝 전 단계 중에 가장 중요하고 상상력을 백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다. 각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한 근거와 논리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브레인들의 한 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이 4가지 질문을 통해 미래 시나리오의 골격을 하나씩 짜맞추어 나갈 수 있다. 각 질문의 답을 통해 그림 2와 같은 매트릭스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각 핵심변화요인들이 앞으로의 미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수준(영향도)을 가로축에, 핵심변화요인들의 불확실한 정도를 세로축에 놓으면 그림과 같이 2X2 매트릭스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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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도는 해당 핵심변화요인이 미래를 어느 정도 뒤바꿔 놓을 것인가에 대한 정성적인 척도이므로 이해하기도 쉬울 뿐더러 오해의 소지도 없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개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확실한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 중 가장 불확실한 것이 무엇인지 맞춰보라.
 
1) 내일 비가 올 확률은 90%이다
2) 내일 우리 팀이 경기에서 이길 확률은 50%이다
3) 우리가 인연이 될 확률은 바늘 하나가 떨어져 사방 1cm 의 종이 위로 떨어져 꽂힐 확률이다.

자, 이 세 개의 문장 중 가장 불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가 시나리오플래닝을 강의할 때 항상 이 문제를 재미 삼아 던져보곤 하는데, 3)번을 지적하는 사람이 70% 정도로 제일 많다. 1)번을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간혹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내놓는 예보는 믿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1)번이 가장 불확실하다고 강변하는 사람이 몇몇 있기는 했다.

이 문제의 답은 바로 2)번이다. 어떤 사안이 발생할 확률과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동일할 때, 즉 각각이 50%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불확실하다. 동전을 던질 때 어떤 면이 나오리라 예상할 수 없는 이유는 각 경우의 확률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3)번을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유는 확률이 작다는 것을 이기기 어렵다는 승률로 간주하여 가장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확실성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확실성을 ‘불안하다’ 혹은 ‘부정적이다’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핵심변화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에서 ‘개인 미디어인 블로그의 성장’이라고 가정하자. 만약 이 요인을 동아일보와 같은 신문사가 접했다면 그 추세가 자사의 신문판매뿐만 아니라 광고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판단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불확실성의 의미를 잘못 쓴 예가 되겠다. 불확실한 상황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가져다 준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원을 따고 뒷면이 나오면 100원을 잃는다고 하자. 각 면이 나올 확률은 동일하므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돈을 딸 확률이 50%나 되므로 부정적인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개인 미디어인 블로그의 성장’의 불확실성을 따져보려면, 성장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확률만 판단하면 된다. 만약 성장할 확률이 50%보다 커지거나 작아지면 50%일 때보다 불확실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불확실성을 ‘무모한 수준’ 혹은 ‘위험수용(Risk Taking) 수준’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만약 국민의 소비를 위축시켜 이제 막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강력한 ‘증세(增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면, 위험한 줄을 뻔히 알면서도 강행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증세 정책 강화’라는 핵심변화요인을 불확실성이 높은 요인이라 간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정부의 증세 강화가 실제로 발생할 지의 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정부의 행동이 얼마나 용감무쌍(?)한 것인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시 그림 2로 돌아가 보자. 우선 매트릭스의 좌상단 또는 좌하단에 핵심변화요인이 매핑된다면(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아주 적다) 파급효과가 미미한 것이므로 불확실성이 어느 수준이건 간에 시나리오 도출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반면, 매트릭스의 우하단에 위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트렌드(Trend)’라고 부를 수 있다. 미래의 파급효과가 크고 동시에 불확실성이 낮아 발생할 확률도 크기 때문이다.

즉, 트렌드에 해당하는 핵심변화요인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항상 등장하므로 미래를 기술하는 밑바탕이 된다. 매트릭스의 우상단에 속하는 핵심변화요인이 바로 시나리오의 골격이 된다. 불확실성이 높다는 말은 발생할지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 반반이라는 뜻이므로 여기서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만약 이 부분에 3개의 핵심변화요인이 매핑됐다면, 2 X 2 X 2 = 8개의 시나리오가 이론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

A신문사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따른 핵심변화요인을 여러 개 도출했지만 영향도-불확실성 매트릭스의 우상단에 속한 핵심변화요인은 ‘독자들의 디지털 정보 선호 여부’와 ‘타신문사의 인터넷화’로 결정됐다. 이 경우, 그림 3과 같이 2 X 2 = 4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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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시나리오가 다양한 미래를 그려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목적은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 전체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주제(핵심이슈)에 관한 답을 구하는 데 있어 가장 의미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에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2개 내지 3개 정도의 핵심변화요인을 가지고 4개에서 8개 정도의 시나리오를 도출해도 핵심이슈에 대해 충분히 의사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시나리오가 도출됐다면 각 시나리오별 특징을 포괄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명칭을 그림 3에서처럼 부여해야 한다. 명칭을 붙이는 이유는 조직 구성원에게 시나리오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고 특정 시나리오가 실제로 진행될 때 대응전략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행동하기 위해서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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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재배치, 스핀 오프 등을 통한 인력의 감축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이다.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직원들과 솔직한 대화를 기반으로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결코 서두르거나 무리수를 두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인력 감축을 시도하는 여러 기업들이 지극히 단기적인(혹은 재무적인) 관점에 의해 다운사이징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하지 못한 더 큰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인력 감축, 함부로 남용되어서도 안 되지만,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인력 감축을 실행할 때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범하게 되는 실수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미래에 필요한 스킬을 고려하지 않고 인력을 감축한다
많은 기업들은 과거의 성과 기록과 구성원들이 가진 역량과 스킬의 현재 수준을 근거로 인력감축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전략의 변화에 따라 기존과는 다른 역량과 스킬이 요구되면, 현재의 직무에서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던 직원일지라도 성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현재 역량’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평가제도의 결과를 가지고 인력감축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인력감축의 결과, 한물간 역량과 스킬을 보유한 인력만 조직에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미래에 필요하게 될 역량과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해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래 역량’을 보유한 직원들이 주로 해고되는 이유는, ‘현재 역량’을 기준으로 실시되는 평가제도 하에서는 낮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낮은 평가점수를 받은 직원들은 곧바로 인력감축의 표적이 되는데, 미래역량과 잠재력을 지닌 직원들이 대다수 포함되곤 한다. 나중에 가서 그들이 지닌 스킬이 미래의 사업계획을 실행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그들을 해고해 버린 후다.

최근에 채용되어 아직 경력이 짧은 인력들은 미래에 절실하게 필요할지 모를 역량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력의 짧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떠나달라는 통보를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나이 든 직원들은 나중에 조직의 특정 분야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될지 모르는 ‘경험의 깊이에서 우러난 능력’를 가지고 있다 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기퇴직을 강요 받거나 오히려 권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 내림과 동시에 그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핵심인력은 결국 경쟁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돼 나중에 상당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조직 전체에 걸쳐 일괄적으로 인력 감축을 실행한다
많은 기업들이 인력감축을 실행함에 있어, ‘모든 부문에 걸쳐 일괄적으로 15% 씩 감축하라’ 는 말처럼 똑같은 크기로 인력규모를 줄이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현재 적은 수의 직원을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자들에게는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왜냐하면 일 잘하는 부하직원을 내보내도록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력이 남아도는 부문의 관리자들은 일이 별로 없거나 중복되어 있는 분야의 인력을 줄임으로써 인력감축의 목표를 쉽게 달성하면서도 대부분의 필요한 인력들을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업계획과 사업전략 수행에 필요한 인력(인력규모 측면과 인적역량 측면 모두)을 확보할 수 없는 결과가 빚어지게 된다.

기대했던 비용 절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인력감축의 대부분은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인력을 20%만큼 감축한다고 해서 반드시 운영비용의 20%가 절감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인력을 줄이라는 요구를 받으면 많은 관리자들은 보통 낮은 직급이거나 급여수준이 적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인력감축을 실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비용 절감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저직급 직원들을 20% 줄여봤자 인건비는 10%도 절감되지 않는다. 반대로, 고직급인 관리자 인력들의 경우 조금만 감축해도 인건비 절감 수준은 20%보다 높아질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리는 있으나 실제 사람은 없는 자리를 없애면서 인력감축의 목표를 채웠다고 말하는 관리자도 있다. 이럴 경우, 실제로 감축된 인력은 없으므로 절감된 비용은 없는 것이다. 어떤 관리자들은 앞에서는 기존의 인력을 해고하여 인력감축 목표를 맞추고 뒤로는 임시직원(계약직)들을 채용하여 기존인력이 해오던 일을 맡기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그런 임시직원들은 보통 해고된 인력들이 받던 급여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미래에 필요한 스킬을 가진 인력이 회사를 나갔다가 나중에 전략적 필요에 의해 재입사하기도 하는데, 끌어오기 위해 경쟁사보다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하므로 그가 받게 될 급여는 전에 받았던 급여보다 높은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기대했던 만큼의 비용절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업무를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
인력 감축이 실시된다 하더라도 업무의 범위와 양은 재조정되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예전보다 적은 인력을 가지고 똑같은 일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하도록 강요 받게 된다. 일하는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인력이 늘어나게 되어 예전보다 오히려 많은 인력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인력을 감축한 관리자들은 단시일 내에 인력의 규모를 다시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알게 모르게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인력 감축이 장기적인 인력계획의 틀 안에서 실행되어야 현실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전략적 인력계획은 사업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규모와 인적역량을 정의한 것이어야 한다. 전략적 인력계획의 틀 안에서 인력 감축이 실행되어야 오랜 기간이 흘러도 그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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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를 만들지 않으려면   

2008. 7. 18. 17:07
직원의 역량이 회사의 성과 창출과 경쟁력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러 경영자들이 직원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위해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이유도 결국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회사의 성과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힘들여 키운 직원들이 회사에 안녕을 고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과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 전기 충격을 가했다. A그룹의 쥐들이 모인 우리에는 전기 충격을 차단하는 스위치가 있었으나, B그룹에는 없었다. 여러 날 전기 충격을 가한 결과, A그룹은 전기 충격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양호했다. 반면 B그룹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는지 위궤양에 걸린 놈들이 많았고 어떤 쥐들은 체념한 채 드러누워 충격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두 그룹은 일정한 시간에 똑같은 양의 전기 충격을 받았다. A그룹의 쥐가 스위치를 내리면 동시에 B그룹의 우리에도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실험 장치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강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외부 변화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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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력을 잃으면 머리도 나빠진다. 이번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소음을 틀어 놓은 상황에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는데, A그룹이 앉은 테이블에는 소음 차단 스위치가 있었고, B그룹에는 없었다. 실험 결과, A그룹이 문제를 훨씬 많이 풀었고 또 틀린 개수도 얼마 안 됐다. 반면 B그룹의 사람들이 푼 문제 개수는 A그룹보다 적었고, 오답도 많았다. 소음이 들릴 때마다 스위치를 껐기 때문에 A그룹의 성적이 더 좋았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A그룹은 스위치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단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문제풀이 능력을 유지시킨 것이다. 반면 ‘소음 때문에 문제를 잘 풀 수 없어!’라는 스트레스가 B그룹의 머리를 나쁘게 만든 원인이었다.

직원의 우수한 역량과 활기찬 직장생활의 열쇠는 교육과 복리후생과 같은 대증요법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통제력임을 이 실험은 시사한다. 역량이 뛰어난 직원도 소신껏 일할 수 없다면, 위에서 떨어진 일이나 수동적으로 수행하면서 업무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한때 뛰어났던 지적능력은 금새 빛을 잃고 그저 윗사람의 입만 쳐다 보는 ‘똑똑한 바보’가 된다.

내 후배는 똑똑한 바보의 단적인 예다. 그는 명문대 석사 출신으로서 경영연구소에서 일하다 모 회사의 전략기획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허나 입사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콘도 예약을 관리하고, 유명강사 초청강연회를 뒤치다꺼리하는 복리후생 담당자를 맡았다. 그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강연회 참석자들에게 우유를 데워서 나눠주는 일이었다. ‘잃어버린 2년’을 보내고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굴지의 기업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한때 삼성의 영향을 받아 많은 기업들이 해외 우수인재 확보에 열을 올렸다. 허나 힘들게 뽑아논 이후의 성적표는 별 볼일 없다. 역량에 맞게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뽑아만 놓으면 다 되는 줄 착각한 결과다. 결국 많은 인력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 분위기만 나빠졌다.

‘권한 위임’은 상위자들이 독점한 권한을 밑으로 내려주는 것이다. 헌데 권한 위임이 잘 되는가 싶다가 원상복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원들 개인의 역량과 선호에 맞게 업무를 부여하고 통제력을 가지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은 채, 그저 문서 상으로만 권한을 내려줬기 때문이다.

‘넌 시키는 일이나 하라’며 모든 권한을 통제하면서 개인의 우수한 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직원들을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업무를 통제하도록 만들 때 기업의 경쟁력은 기초가 탄탄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똑똑한 바보’들이 우글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7월 18일(금)자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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